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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 K Mar 30. 2021

유로화 도입과 스페인 경제

유로화 도입은 스페인 경제에 득이 되었을까 실이 되었을까?

1999.1.1. 유럽 경제권 통합의 꿈을 안고 단일 통화 유로화가 탄생하였다. 스페인을 포한한 최초 11개국이 유로화를 도입하였다.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EU가입과 함께 유로화 사용 국가는 총 19개국(2020년말 기준)까지 확대되었다. 


[유로화 사용국가] 오스트리아, 벨기에,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페인(이상 최초 도입 11개국) +그리스(2001), 슬로베니아(2007), 사이프러스(2008), 몰타(2008), 슬로바키아(2009), 에스토니아(2011), 라트비아(2014), 리투아니아(2015) 


유로화 출범은 거래비용 제거 및 교역확대와 같은 경제적 효과와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함께 고려된 결정이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시민들도 유로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출범 20주년을 맞이하여 2019.11월 EU집행위가 실시한 조사에서 유로존 시민의 76%가 유로화를 지지하였다. 유로화는 미국 달러에 이어 세계2위 기축통화로 부상하며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으나 동시에 여러 문제점들도 노출하였다. 경제사정이 다른 여러 국가가 1개의 통화를 사용하게 되면서 여러 이해관계가 충돌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유로화는 낙후지역에 대한 투자, 자유로운 노동이동, EU차원의 소득재분배 등을 통하여 회원국 간 경제적 격차가 축소되는 상황을 전제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19 등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회원국 간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유로화의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유로화는 지난 20년 간 각국에 상이한 영향을 끼쳤고 유로화 도입에 따른 국가별 득실도 달랐다.  스페인은 유로화 창단 멤버로서 1999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다.  유로화가 스페인 경제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유로화 도입 초기,  활용한 빠른 경제성장

유로화를 기반으로 2000년대 초중반 스페인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유로화는 기존 페세타보다 훨씬 안정된 통화였기에 전통적인 고금리 국가 중 하나였던 스페인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단일 통화인 유로화의 금리는 EU를 주도하는 독일, 프랑스의 사정에 맞게 금리 수준이 낮게 책정되었기에 스페인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질 때까지 독일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풍부해진 유동성을 바탕으로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며 외형적 성장을 이어갔다. 유로화 도입 초기 스페인을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은 북유럽보다 빠르게 성장하며 경제적 격차를 좁혀나갔다. 1990년대 후반 이민법이 완화되면서 2000년대 들어 스페인에는 중남미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들을 위한 주택수요가 크게 늘면서 건설 붐이 일어났고 자연히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유로화 도입 초기 물가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크게 올랐다. 기존 화폐였던 페세타(Peseta)와 유로의 공식 교환 비율은 1유로=166.386페세타였으나 실물 시장에서는 100페세타 제품이 1유로로 치환되면서 소비자들의 체감 물가는 상당했다. 물가상승은 임금 상승 - 수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스페인 경제는 호황을 즐기고 있었지만 이러한 성장이 근본적인 경제구조 선진화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저금리로 유입된 자본이 주로 부가가치가 낮은 부동산이나 이전 지출의 성격을 지닌 복지 등 생산성이 낮은 곳으로 몰렸다. 저생산성의 낙후된 경제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페세타보다 강세 통화였던 유로화는 스페인 국민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여 내수 위주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소비 활성화와 함께 대외 경상수지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스페인산 수출품의 가격은 유로화로 바뀌면서 상승했다. 가성비로 승부하던 스페인 제품의 시장경쟁력이 떨어졌다. 반면, 페세타로 사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수입품들의 가격은 스페인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만만해졌다. 그 결과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면서 적자가 확대되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독일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기존 독일 제품은 고품질을 자랑했지만 마르크화가 비싸서 수입국들에게 부담이었는데 마르크화보다 약세 통화였던 유로화는 이러한 가격 장벽을 낮춰주었다. 덕분에 독일은 수출로 회원국들에게 엄청난 돈을 벌어 들이게 되었다.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과 스페인의 경상수지 흐름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물론 독일이 기록한 흑자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기인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 환율이 저평가된 영향이 상당했다. IMF는 2014.7월 마르크화에 비해 유로화는 5~15% 정도 절하되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 이후 유로화가 계속 절하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독일이 환율로 인해 얻은 눈에 보이지 않은 수혜는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독일이 마르크화를 지속적으로 썼다면 독일 수출은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고 유럽 국가들 사이의 무역수지 불균형 정도는 덜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로화 도입 이후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로 연결된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붕괴된 버블, 침체의 시작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곧 이어 유로화 위기로 전이되었다. 스페인도 그리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과 함께 PIIGS*라 불리며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이하였다. 잘 나가던 경제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부동산 버블 붕괴로 고용과 GDP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건설분야에서 대규모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느슨한 대출 관리로 버블 형성을 부추겼던 지방 저축은행들은 연이어 쓰러졌다. 이전의 경제위기 때와는 달리 유로존 위기 당시 스페인은 대응 측면에서 다른 환경에 놓여 있었다. 통상적으로 경제위기가 오면 중앙은행을 통해 금리를 낮춰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과 정부의 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이 사용된다. 그러나 유로화를 쓰게 되면서 통화 주권이 유럽중앙은행(BCE)으로 넘어갔기에 스페인은 더 이상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다. 스페인은 1992~1995년에도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었는데 이 때는 3년간 4차례나 자국 화폐를 평가 절하하여 경제를 회복하였다. 마르크화와 미국 달러대비 스페인의 페세타 가치는 25%나 절하되었다. 스페인의 수출품이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면서  경제도 살아날 수 있었다. 통화정책을 통한 환율 조정은 대외 불균형을  빠르게 조정할 수 있는 완충 장치였다. 통화정책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위기 전까지 상당히 건전한 상태를 자랑했던 스페인의 공공 재정은 경제위기에 따른 세수 감소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GDP대비 재정적자와 공공부채 비율이 급속도로 올라갔고 지금까지도 스페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업률도 크게 올라 내수가 부진에 빠지면서 힘든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통화정책이 불가했던 스페인의 선택은 내적인 환율조정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구조조정이었다.



독립적인 통화정책 구사 불가, 내부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회복 노력   

2011년 집권한 중도보수 성향의 국민당(PP)은 △금융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 △긴축재정 등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단행하였다. 구조조정은 임금조정, 인력조정, 금융개혁, 긴축재정 등의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체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요구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부실은행 통합 및 금융감독강화, 임금삭감 및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은퇴 정년 연장 및 연금 인상 억제, 공공일자리 감축 등의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단행하였다. 스페인은 유럽안정화기구(ESM)로부터 대출 형태로 지원 받은 413억 유로와 구조조정을 기반으로 여타 남유럽 국가들에 비해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2009년부터 2010년을 제외하고 2013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스페인 경제는 2014년부터 반등 하였으며 이후 코로나 이전까지  EU평균 두 배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EU 경제성장을 주도하였다. IMF, OECD등 주요 기관들은 스페인의 구조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내수의 극심한 침체로 스페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찾아나섰다. 임금 및 유로화 가치 하락이라는 우호적인 변수에 힘입어 스페인 기업들의 대외 수출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많은 전문직 인력들은 임금이 낮아진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같은 대도시에 들어와 창업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대내외 불균형 해소 측면에서 고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스페인이 계속해서 자체 화폐를 쓰고 있었다면 자체적인 통화정책을 활용하여 가혹한 구조조정 없이 경제위기를 더 빠르게 벗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중앙은행(BDE)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통화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각종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였다. 환율 조정 정책은 충격을 완화시킬 수는 있었지만 결국에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효과는 일시적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구조 조정은 자원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통해 생산성과 임금 향상으로 이어지는 방법이라며 지지하였다. 2018년 집권한 사회당(PSOE)은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하며, 기존 노동개혁, 연금개혁 등의 정책들을 다시 손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IMF, EU집행위 등은 구조조정의 순기능을 상기시키하며 스페인 정부의 이러한 정책 기조 변경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로화 가입의 득과 실     

유로화는 도입 초기 스페인 경제의 빠른 경제성장을 견인한 촉매제가 되었다. 그러나 부채에 의존한 내수 중심의 성장으로 대외 경상수지는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으며 2000년대 후반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 확산과 함께 스페인 경제의 버블도 붕괴되었다. 과거와 달리 자체적인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던 스페인은 구조조정과 긴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했고, 이러한 노력은 스페인의 경제구조를 일정 부문 개선하는데 기여 하였다. 세상의 모든 일들처럼 유로화는 스페인 경제에 장단점 모두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유로화 자체를 가지고 스페인 득실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2019.2월 독일의 싱크탱크인 유럽정책연구소(CEP)는 ‘유로화 출범 20년, 승자와 패자(20 Years of the Euro: Winners and Losers)’ 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로화 도입에 따른 각국 경제의 득실 관계를 분석하였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유로화 도입이 스페인의 경제적 부에 끼친 영향은 1인당 -5,031유로에 달했다. 독일이 1인당 23,116유로로 가장 유로화의 혜택을 크게 본 것으로 나타났고 이탈리아는 1인당 -73,605유로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연도별 경제적 효과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기존 통화보다 강세 통화를 쓰게 되면 대출이 쉬워져 부채와 소비에 의존하게 되고, 수출경쟁력은 약해져 경상수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했다면 스페인의 경제사정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값싸게 끌어들인 자본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질적인 생산성을 향상시키는데 할애되었다면 지금보다 견고한 경제구조를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로존 내 갈등과 유로화의 미래   

유로존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2010년대 초반 유로존 위기를 계기로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과 독일, 네덜란드 등의 북유럽 사이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유로화에 대한 회의론도 나타났다. 그리스는 한 때 유로화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스페인 일부 매체들도 페세타로 복귀할 시 나타날 경제적 변화에 대해 보도하기도 하였다.  그럴 가능성은 0에 가깝지만 페세타로 돌아가게 된다면 스페인 국민들의 구매력은 지금보다 40~60%가량 떨어질 것이다. 엄청난 자본 유출과  GDP 감소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수출은 늘겠지만, 에너지 수입가격이 올라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가중시킬 것이다. 참고로 스페인은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국가이다. 북유럽 측은 남유럽 국가들의 느슨한 재정관리와 노동관행을 비판하며 경제지원의 선제 조건으로 각종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EU 내 경제지원이 남유럽에 집중되고 있다며 이들의 경제적 의존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남유럽 측은 EU의 경제통합이 북유럽 중심으로만 흘러가며 결국 이들에 이용 당했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 19 사태가 관광산업 비중이 높은 남유럽에 더 큰 피해를 안기면서 남북 경제력 격차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유로화를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유로화가 탄생하게 된 역사적 의미와 배경을 고려할 때 유로화 체제가 와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유로화 체제 하에서 여타 선진국들과의 경제적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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