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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초

시작과 끝은 내가 정한다

by 차돌

어느날 아내가 회사에서 화분 하나를 가지고 왔다.


"왠 화분이야?"

"회사에서 키우던건데, 아무도 신경을 안써서 그런지 죽었더라고.

캣잎이라도 키워 볼까 싶어서 가지고 와봤지"


하지만 회사에서 관심 주지 않았던 화분을 집이라고해서 관심을 줄리 없었다.

그렇게 화분은 꽤 오랜 시간 방치됐고 우리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오빠!! 이리 와봐!!" 라며 날 다급하게 찾았다.


무슨 큰 일이 생겼나 싶어 달려간 곳엔 놀란 눈으로 화분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흙 말곤 아무것도 없던 화분에서 작은 싹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우린 그걸 보며 크게 놀라며 이녀석을 '부활초' 라고 부르기로 했다.


죽어서 생을 다 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녀석이 '부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된 부활초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느새 혼자가 아닌 여럿이 된 부활초

혼자였던 녀석은 어느새 엄청 나게 많은 동생들을 거느릴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쯤 되니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다.

특징을 가지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녀석의 이름은 '카라' 혹은 '칼라' 라고 불리는 꽃 이었다.


카라는 색깔에 따라 꽃말이 달라지는 독특한 꽃이다.

흰색은 '순결'과 '고결함'을 빨간색은 '열정적인 사랑' '강인한 의지' 분홍색은 '우아함' '여성의 아름다움' 노란색은 '기쁨' '성공'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린 빨간색이나 노란색이 자라나길 바라며, 부활초를 꾸준히 돌봤다.

꽃이 폈다.

아쉽게도 우리가 바라던 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녀석의 부활을 보니 가슴 한켠에서 간질 간질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우린 녀석의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녀석에게 그 어떤 기대감도 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혼자 꾸역 꾸역 자라나 꽃을 피워냈다.


우리는 가끔 내 끝을 내가 결정할 때가 있다.


'이건 안될거야'


내 한계를 내가 결정해서 일을 시작하지 않거나 결과를 보기 전에 끝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내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도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때 조금만 더 노력해봤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때 그걸 해봤다면 어땠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난 이 후회의 결과를 알 수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뿐이다.


내가 저 꽃 한 송이 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순 없으니까.

그래서 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늘 했던 후회를 또 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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