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 동료들 자랑 좀 해보겠습니다.
가끔은 투박하게 잔소리할때도 웃으면서 그 순간을 마주해주셔서 고마웠고 더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알아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마지못해 따라와주었던 날도 고마웠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참 고마운 동료들을 만났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제가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고 있죠...(휴)
그래서 계속 조직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점점 여러분에게 미안한게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그만 미안하기 위해 제가 떠나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제가 당신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퇴사하는 동료를 보내는 날에는 잠이 잘 안왔습니다. 모든 이별에 저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어떤 퇴사는 마음이 아팠고, 어떤 퇴사는 미안했고, 어떤 퇴사는 화가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 팀장님께도 물어봤었어요. 어떻게 퇴사에 무덤덤해질 수 있는지 말이에요. 아직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덤덤하게 이별을 마주해야하는지요.
저는 직원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이기도, 이별을 가장 먼저 알게되는 사람이기도 했기에 여러분의 모든 일들이 저에게도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들의 따뜻함에 제가 마음이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OJT를 진행할 때 왜 우리 회사에 왔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요. 그럴 때 당신이 갖고 있던 눈빛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빛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여전히 저는 여러분의 모든 날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래도 저는 회사의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조직을 위한 생각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그럴때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애썼고 때때로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고자 노력도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너무 많이 당신들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마음이 제게는 가끔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이별도 제게는 더 어렵습니다. 다 당신들 때문입니다. 제가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어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은 날들이 있는데요. 혼자 끙끙거리며 행사를 준비해야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슬금슬금 한분 한분 오시더니 손을 보태어 도와주던 날이 기억이 납니다. 웃으며 '이게 주부의 빠른 손이에요.' 라고 하던 말도, '이건 제가 한거라고 꼭 널리 알려주세요.' 라는 귀여운 생색도 말이죠. 제가 재직하며 고생을 많이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돌아보니 힘든건 제 동료들이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손이 좀 많이갔어요..
저를 귀찮게 자주 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히읗님?' 이라며 매일 슬랙을 보내면서 컴플레인을 걸고, 하다가 못한일을 인사팀에 해달라며 연락이 오는 분들도 있었어요. 진짜 가끔은 미웠는데요. 또 미워할 수가 없는 동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촬영은 안 필요해요?' 라고 물어보고 행사 당일에 자신의 카메라 장비를 잔뜩 차에 실고 회사로 가져왔어요. (프리랜서 사진작가였대요..) 덕분에 회사 행사 사진을 고퀄리티로 예쁘게 잘 남길 수 있었고 제가 제일 잘 활용했었습니다. 제가 그만둔다고 하니 '저 그럼 이제 사진 안찍을래요.' 라고 툴툴거리던 마음도 고마웠습니다. 그 날의 사진 속에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퇴사를 두달을 미뤘어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서 떠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가끔 저를 힘들게 했던 분들은 또 밉다가도 미울수가 없었습니다. '히읗님, 뭐먹고 싶어요? 제가 힘들게 자꾸 해드렸는데 밥이라도 살게요.'
매일 아침이면 커피한잔을 챙겨주던 동료도 있었습니다. 제 대나무숲 같은 분이셨는데요. 인생의 어떤 고민도 답을 주기보다 그냥 들어주던 분이었습니다. 가끔 잔뜩 기죽어서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좋은 선배로 '잘하고 있어요. 진심인거 아시죠?' 라는 담백한 한마디가 한주를 또 힘내서 해내게 했습니다. 그 커피한잔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기분은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을 그 분을 통해 배웠습니다.
인생의 친구도 이 곳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동갑이라서, 왈가닥 거리는 덜렁거림이 좋아서 친해졌습니다. 자판기 옆에서 남자친구와 전화하다말고 동갑이라며 반가워하던 그 친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를 좋아해줬던 마음이 고마웠고, 그러다보니 정들었고 그러다보니 그 친구 옆에 자주 앉아있는 저를 보게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드려주는 친구입니다. 그런거 있잖아요. 진짜 아무한테도 말 못할 것 같은 인생 최악의 실수도 이 친구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고, 날 그냥 한명의 사람으로 받아드려주는 느낌이요. 그런 용인됨이 많은 날에 제 좌절을 별것 아닌 일들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고마워 승희야.
여러분이 저와 함께했던 조직의 순간들은 어떠셨나요. 제가 여러분에게 배웠던 것은 '용인됨' 이었습니다. 온전히 받아드려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떤 용기와 힘을 주는지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그 답을 조직문화로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조금은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지만 제 능력이 부족한지라 역부족이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제게 베풀었던 따뜻함, 이해함, 돌봐줌 같은 것들을 새롭게 가는 조직에서 잘 풀어내보고자 합니다. 제 인생의 최고의 선생님이었던 당신들에게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한명한명이 제 마음에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좋은 동료와 함께했었는지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제게 최고의 동료였습니다.
당신들의 모든 날이 상상하는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래요. 이제 다른 곳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