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은 일의 열정 사이클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세번째 직장은 겁쟁이였던 나를 ‘환경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으로 바꿔두었다. 일의 치열함을 되새기게 했고 기회로 나를 던져보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고 마케팅과 기업의 본질이 무엇일까, 내가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한번 해보는 시간이었다.
모두의 이직에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이직은 새로운 ‘기회’로 날 맡겨보는 일로 정의를 내렸고 난 뼛속까지 스타트업 사람이라는 사실을 버릴 수 없었다.
이직의 조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해졌다.
1.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환경
2. 배울 수 있는 동료 또는 상사
3. 시장의 기회가 있는 비즈니스 현장
4. 성장하는 기업
나의 두번째 직장은 4번에 속해져 있었지만, 다소 2%가 아쉬웠고 그 2%를 채울 조직문화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비즈니스의 성패는 어디에 달려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C레벨의 준비됨에 달렸다 생각한다. (50명이 안되는 규모에 대표님이 출근을 안하는건 다소 충격적이었다.) 훌륭한 동료들이 많았지만, 그에 비해 C레벨의 타성에 젖은 모습들은 노력들이 헛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게 그것을 뛰어 넘을 실력과 능력이 없다면 내가 떠나야할 때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지만 조금씩 이직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지인의 이직제안으로 나의 세번째 이직이 시작되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면서 최종합격 안내를 받게 되었고 좋은 조건으로 처우협의가 되었다. 결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안가는 것보다 가는 것의 후회가 덜할 것 같아 많은 이유를 접어두고 새로운 환경으로 날 내보냈다. 그 당시 내게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너무 편하게 일하고 있었고, 스스로 내몰아야할 곳이 필요했는데 정말 적절하지 않았나 회상해본다.
항상 50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일을 해오다 100명이 넘는 규모에 천억 매출을 준비하고 있던 기업, IPO 막바지에 다다랐던 숨가쁜 브랜드의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었다. 브랜드의 최종 디렉터로 일하는 기회는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처절하게 나의 실력을 인정해야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가자마자 숨가쁘게 업무가 시작되었다. 마케팅팀의 빌딩과, 신규 프로덕트 기획, 마케팅 업무를 맡았고 브랜드매니저라는 이름으로 하나 두개의 프로젝트를 빌딩해갔다. 오프라인 프로젝트, 온라인 이벤트 진행, 신제품 기획 및 마케팅 플래닝 등 결과물들은 마음에 들었지만 정작 나는 모든 것들이 씁쓸했다. 동료들과의 관계, 비교의 일상, 칭찬이 누군가와의 비교로 이루어지는 결과, 조직문화, 인정과 칭찬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회색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3개월이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예의를 갖춰 퇴사했다. 퇴사선포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채로 물어봤다. 왜 퇴사하냐고. 그래서 감사인사와 나와 조직문화가 맞지 않아 이곳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재가 아닐 것 같다는 객관적 판단을 말씀 드렸다. 일의 결과를 내는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중요했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순수한 일의 결정체들을 더 좋아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사랑했던 마케팅 일을, 신제품 오픈을 앞두고, 단칼에 커리어를 정리할 수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마케팅을 해야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보다 조직 전체에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을 찾았다. 언제 즐거운가, 언제 나는 기쁜가 생각해볼 때 모두가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때 보다 기뻤다.
퇴사한 이후에 동료가 물었다. ‘히읗님이 출시일까지 그 프로젝트 리딩하셨으면 좋은 커리어가 되었을텐데 왜 마무리 다 해두시고 퇴사하신거에요?’
수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단순하게 이런 질문을 내게 해봤어요.
“연봉을 억대로 준다고 하면, 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을까?”
난 내가 그럴 줄 알았지만, 사실 난 그게 다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퇴사하고 싶더라고요.“
근데 뭐하지..(대책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