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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생리를 경험한 나의 그녀

가을의 초입, 10월 5일. 우리 집에 특별한 날이 찾아왔다. 사춘기의 급성장과 여드름 폭발 시기를 지나온 나의 사춘기 그녀가 드디어 첫 생리를 시작한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나도, 화장실에서 다다다다 뛰어나온 딸이 "엄마, 소변 보고 닦는데 뭔가 갈색 비스무리한 게 묻어났어요"라고 말했을 때,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 내 딸이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진정한 '그녀'가 되었다는 감격이 밀려왔다.

작년 정형외과에서 뼈 나이가 6개월 정도 늦다고 들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미리 준비해둔 팬티형 생리대를 입히고, 생리통과 생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했다. 다행히 딸은 학교에서 이미 생리대 사용법을 배웠고, 친구들 대부분이 생리를 하고 있는 걸 봤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이 어른으로 가는 첫 걸음을 어떻게 축하해줄지 고민에 빠졌다. 서울에 있는 남편은 여전히 딸을 '아가'라고 부르면서도, 이 변화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나 역시 담담한 척했지만, 내 딸이 이제 아기에서 소녀가 되어버린 사실에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지고 뭉클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첫 생리를 한 날 저녁, 딸은 평소와 달리 내 침대에 와서 잠들었다. 아마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든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처음 임신했을 때부터 조기 진통으로 힘들었던 시간들, 그리고 딸이 태어나 주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며, 기꺼이 이 아이의 엄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나를 닮아서 인지 생리통이 시작되었고, 꼼짝 않고 배에 핫팩을 올린 채 이 낯선 통증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쁜 딸은 다음 주 학교 여행 전에 첫 생리를 해서 다행이라며 "럭키비키쟎아~"를 외치고 있었다.

딸은 첫 생리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나를 수족처럼 부렸다. 단 것, 시고 시원한 것을 찾아 아이스크림과 레몬수를 요구하고, 학원에 가지 않겠다며 선생님께 연락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래, 처음이니까. 불편함이 아픔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오늘만큼은 학원도 가지 말고 엄마 곁에 있자고 결심했다.


저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손녀의 첫 생리를 축하하며 꽃게찜과 꽃게라면을 끓여주셨다. 나는 마트에서 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보라색과 빨강색 소국 한 다발을 사와 선물했다.

"너의 첫 생리를 정말 축하해. 이렇게 잘 자라줘서, 그리고 엄마, 아빠의 딸로 선물같이 와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며 꽃다발을 건넸다.


진통제 한 알, 아이스크림 한 개, 시원한 레몬수, 그리고 커다란 황금향 하나에 딸의 기분이 좋아졌고, 첫 생리의 불편함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매달 찾아올 생리 기간에, 우리 딸이 가끔은 이 첫 생리 때의 가족의 지지와 꽃게찜, 가을 국화를 기억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 가을에 소국을 볼 때마다 딸의 첫 생리를 축하했던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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