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심성이 무척이나 착하고 인정이 많다. 어렸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동네 떠돌이 개가 불쌍하고 이쁘다며 지나갈 때마다 쓰다듬어주고 등하굣길을 같이 하는 바람에 한동안 그 개는 내 동생이 집으로 들어가도 현관문 앞에서 한없이 동생을 기다리기도 했다. 또 화단 흙바닥에 누워있는 갓 태어난 쥐의 새끼를 발견하고 아직 눈도 못 떴는데 이대로 두면 죽는다며 집으로 들고 들어온 적도 있다.
이런 마음 씀씀이가 동물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동네의 나쁜 형에게 불려 갔다 와서는 누나는 심부름시키지 말라며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어린 나이에도 자진해서 자신이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주먹질 한 번,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어느 날 동생이 친구와 같이 논다며 집으로 함께 왔다. 그 아이는 빨래도 하지 않고 며칠은 입었던 것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코 아래에는 콧물 자국이 그대로 말라 있는 얼굴로 들어오며 허허 웃는 모습이 TV에서 보던 영락없는 동네 바보 같았다. 그래도 동생 친구라고 하니 그저 알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그 후로도 그 친구를 종종 집으로 데려와 같이 밥도 먹고 놀이도 하며 놀았다. 성격이 좋아 동네에서도 또래와 형, 누나 할 것 없이 두루 친구를 잘 사귀는 동생인데 왜 하필 이런 친구를 계속해서 집에 데려오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사실은 조금 싫었다. 그 아이가 꾀죄죄한 차림으로 동생과 같은 밥상에 앉아서 내가 좋아하는 마른오징어무침 반찬을 먹고 맛있다며 허허거리며 웃을 때도, 어눌한 말투로 동생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그 아이가 바보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엄마께서도 전혀 싫은 내색 없이 그 아이에게 같이 와서 밥도 먹고 재미있게 놀다 가라고 했다. 그 아이가 친구가 없으니 사정은 좀 딱해 보였지만 굳이 왜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지, 내 동생은 왜 저 아이와 자꾸 어울리는지, 나는 그 아이가 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내성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왠지 더 다가가기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서 동생과 그 아이가 후레쉬맨을 보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와 잠시 부엌으로 향하던 나의 눈에 두 아이가 보였다. 둘은 일어서서 후레쉬맨 변신 제스처를 따라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내 동생은 그 아이가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어서, 동정하는 마음으로 우리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내 동생이 착해서도 아니었다. 둘은 진심으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두 아이가 내 눈에 똑같아 보였다. 그저 죽이 잘 맞아 서로 장난도 잘 치고 신나게 웃어대며 즐겁게 놀고 있는 어린아이 둘이 거기에 서 있었다. 재미있는 것을 보고 웃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눈웃음 짓는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그 후로 동생이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일은 별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또 둘이 저러고 신나게 놀고 있네’ 이런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기준이나 편견으로 사람들을 가르고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것을 깨닫기에는 어린 나이였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내 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동생은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설사 측은지심으로 그러했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은 다 피하는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학교에서도 챙겨줄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가지게 된 건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 동생, 그 작은 아이가 존경스럽다.
저 먼 우주에서 바라보는 나와 사람들. 너무나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점 같은 존재들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를까. 모두가 다르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모두 같다는 뜻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