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도둑질과 거짓말

by 엘레니

혹시 무언가를 훔쳐본 적이 있는가? 또는 누군가를 속여본 적이 있는가? 나는 두 가지 경험이 모두 있다.


내가 훔친 것은 돈이었다. 아마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훔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잊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이제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내가 잊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숨겨두고 있던 그 일을 오늘 써보려 한다.




아빠께서 술을 드시고 오신 날이었다. 아빠는 입고 계시던 점퍼를 안방 옷걸이에 걸어두셨고 거실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셨던 아빠는 엄마에게 이런저런 술주정을 하시고 엄마는 얼른 잠이나 자라며 핀잔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안방에 잠시 무언가를 가지러 들어갔는데 아빠 점퍼 안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지폐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택시를 운행하시는 아빠께서는 항상 거스름돈을 충분히 준비하셔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셨었다. 사실 그 돈들은 항상 봐왔던 것인데 그날은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만 원짜리가 정리되어 두둑이 반으로 접혀있는 그 부분이 확대경을 들이댄 듯이 내 눈에 꽂혔다. 그 순간 내가 사고 싶던 샤프펜슬이 생각났다.


그 샤프펜슬의 가격이 7천 원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초등학생에게 7천 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문구점에서 본 그 샤프펜슬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별자리가 예쁘게 그려져 있고, 윗부분을 잡아당기면 샤프의 바깥 부분이 위로 올라가며 안에 별자리 설명이 쓰여 있었다. 손을 놓으면 스프링이 당겨져 샤프의 윗부분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신기한 구조였다. 정말 정말 사고 싶었지만 빠듯한 살림에 알뜰하게 절약하며 살림을 꾸리고 계시는 엄마에게 차마 그 큰돈을 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몇 차례 문구점에서 구경만 했을 뿐 살 수 없다고 체념을 했었다.


그런데 아빠의 돈을 보니 저 중에 하나만 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이어지는지, 안방으로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는지 온 감각을 곤두세우며 아빠의 안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얼른 내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방을 나왔다. 엄마가 왜 안방에 들어갔냐고 묻는 말에 원래 가지러 갔던 물건을 보여주며 대답을 얼버무리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래도 되는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까, 아무도 없을 때 거실 바닥에 그냥 던져놓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지만 내 마음속 악마는 샤프펜슬을 사라고 계속 속삭여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그 샤프펜슬을 샀다. 레몬빛 몸체에 쌍둥이자리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예쁘게 그려진 것으로 골랐다. 그 순간은 정말 기뻐서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학교에서 신기하다며 샤프를 사용해 보고, 그림을 구경하는 친구들을 보며 왠지 우쭐함을 느꼈다. 집에 와서도 그 샤프펜슬을 보며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내가 한 잘못 보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기쁨에 취하려던 순간 거실에서 부모님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빠가 만원이 부족하다고 이상하다며 주머니를 계속 확인하시고 지폐를 몇 차례 세고 계셨다.


그랬다! 아빠는 기억력이 좋고 수에 관하여 정확한 분이셨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샤프펜슬을 얼른 가방 깊숙이 쑤셔 넣었다. 그 후로 집에서는 절대 그 샤프를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마음으로 샤프펜슬을 숨겨가며 사용했다. 1년 정도 사용하며 그 샤프펜슬의 그림들이 희미해지고 금색으로 반짝거리던 코팅도 벗겨져 처음 봤을 때의 그 빛은 바래졌다.


나는 오랫동안 그 샤프를 버릴 수 없었다. 무척이나 사고 싶던 물건이었기도 했고, 부모님께 큰 죄를 짓고 산 물건인데 잠깐 쓰고 함부로 버릴 수도 없었다. 나와 그 샤프펜슬의 인연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이어졌다. 결국 샤프펜슬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장이 나버렸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샤프펜슬을 사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어딘가에서 증정용으로 받은 샤프펜슬만 사용한다.




부모님을 속인 것은 한 가지가 더 있다.

중학교 때 나는 아는 언니를 통해 만화책과 인연이 닿았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용돈이 생길 때마다 만화책을 빌려다 봤고 결국 엄마는 만화책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처음에는 만화책을 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책방을 지날 때마다 그 유혹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결국 만화책을 빌려 침대 밑 깊숙한 곳에 숨겨가며 다시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만화책을 숨겨가며 읽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침대 밑 만화책을 읽을 생각에 신나게 집으로 달려와 가방을 놓고 침대보를 들어 올렸는데... 두둥... 만화책이 없었다. 앗... 뭐지...... 이런... 엄마가 그날은 침대 밑까지 청소를 하셨던 거다. 머리가 댕~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엄마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책방에 만화책을 반납하지 못해서 연체료는 계속 올라갔다. 결국 포기하고 만화책 값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 하교 후에 침대보 한쪽으로 만화책의 모서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른 몸을 숙여 침대 밑을 보니 없어졌던 만화책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엄마는 내내 기다리셨을 거다. 내가 와서 사실대로 말하기를... 하지만 시간이 얼마큼 지나자 나의 소심한 성격을 아는 엄마는 만화책을 그 자리에 되돌려놓으셨을 것이다. 그 후 엄마는 나를 불러 야단치시지도 않았고, 며칠, 몇 주가 지나도 만화책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평소처럼 나를 대하셨다. 나 또한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때 내가 훔쳤던 만원도 혹시 엄마는 알고 계셨던 것 아닐까. 엄마는 모든 것을 아셨지만 딸을 도둑으로, 부모를 속이는 딸로 만들기 싫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반성할 것이라고 나를 믿어주셨던 것일까. 마음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며 눈물이 났다.


그 후로 나는 무엇이든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어렸을 때부터 엄격하셨던 부모님께 내 마음을, 특히나 부모님이 싫어하실 무언가를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는 것은 며칠밤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훔치고, 누군가를 속이며 지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죄책감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교사가 되어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학생 중 한 명이 나를 속이는 일.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그 학생은 결국 부모님께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학생을 불렀다. 그 학생은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고, 나에게 꾸지람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을 혼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혼을 내는 대신 차분히 말했다. “네가 나를 속이고 지금까지 스스로 괴로웠을 거야. 그러니 사실대로 부모님께 말씀드렸겠지. 나는 그동안 네가 보낸 시간이 너에게 이미 주어진 벌이었다고 생각해. 충분히 반성했을 거라고 믿어.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 짧은 말을 마치자 그 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 담긴 죄송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나와 그 학생이 크게 혼이 났더라면 어땠을까. 운이 좋게도 우리는 둘 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뉘우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모든 경우에 그리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어른들의 소리 없는 용서가 필요한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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