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선생님, 선생님과 엄마.
둘 중에 시간적으로 순서를 매기면 선생님이 먼저이고, 우선순위로 순서를 매기면 엄마가 먼저라고 말하겠다. 무엇이 더 앞이건 간에 둘 다 나에게는 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학생 중심으로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아이의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가족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아이가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들거나 외로울지 10대 때의 나를 떠올리며 공감했다.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아이들 사이에 뛰어들어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험 점수에 집착하며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공부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다고 망설임 없이 얘기해 주었다. 그때의 나는 학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교사였다.
그리고 엄마가 되었다. 엄마인 선생님, 선생님인 엄마가 되었다. 출산 후 복직을 하니 아무래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모두의 경험이 다르고, 그 경험을 통해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듯이 나도 출산과 육아를 통해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다른 것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나이에 이 경력을 가질 때쯤 다른 경험을 했더라면 볼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의 나는 보지 못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족해서 꼭 겪어봐야 했던 것이지, 나이를 불문하고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충분히 많은 것을 이해하는 현명한 교사들도 많이 만났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내가 전에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라 말하고 싶다.
이제 아이들이 나에게 풀어내는 고민들의 많은 부분들에서 나는 그들의 부모도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은 "우리 엄마도 그러는데.."라며 불만 같은 투정을 듣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이 아이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욕심이라는 것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할 때가 생긴다. ‘항상 바쁜 부모님들도 너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느라 그렇지 너희를 사랑한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친구관계에 대한 문제도 아이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보호자와의 상담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나에게 신경 쓰이는 범위가 학생에서 부모의 마음까지로 넓혀졌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달라졌다. 예전에는 '너나, 나나 세상 살아가느라 참 힘들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내 아이가 이 자리에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자신과 다른 것들, 처음 해보는 것들에 부딪히며 참 힘들겠구나.'라는 짠한 마음이 든다. 교과를 가르치고 아이들이 지식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겪어내는 이 작은 사회를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자신만이 가진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키워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앞으로의 험난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나를 보며 어쩌면 나는 교사로서 전보다 티끌만큼이라도 발전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아직 미숙한 나에게 가르쳐 줄 것이 너무나 많은 곳이었다.
내가 학부모가 된 것이다. 이제는 학부모인 선생님, 선생님인 학부모가 되었다. 지금 나는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뿐만 아니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생기는 그 마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어렵다. 휴직 기간 동안만큼은 온전한 학부모 입장이 되고 싶은데 또 그럴 수가 없다. 나의 직업이 교사라는 사실을 아는 주변의 엄마들은 내 앞에서 학교와 교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가끔 조언을 얻기 위해 불만스러운 일에 대해 얘기하며 물어보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신랄한 비판을 늘어놓거나 험담을 하지는 않는다. 나 또한 그들 앞에서 학교와 교사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불만이 생길 때도 있지만 구체적인 사실과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아쉽다’는 말로만 표현할 뿐이다.
내가 학부모가 되니 어떤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또 교사로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양가적인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 때 학부모로서의 욕심이 앞서기도 하지만, 교사로서 한 발자국 물러서게 되기도 한다.
이 경험으로 내가 더 좋은 교사가 되는 건지, 더 좋은 학부모가 되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것이 내 아이에게는 득이 될지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부족한 엄마는 아이가 두 가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