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막내와 함께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잤어?"
"응. 막내 재우다가 같이 잠들었네. 밖이야?"
"응. 지금 엄마 너희 집 가고 있으니까 5분 뒤쯤에 사위 좀 잠깐 내려오라고 해~"
"왜? 뭐 가져왔어?"
"응. 밑반찬 몇 가지 했어."
남편이 다녀와서 풀어놓은 짐에는 반찬통 여러 개와 냄비가 있었다. 돌미나리, 어린 시금치, 비름나물, 고추된장무침, 시래기장. 그중에 봄나물이 있다.
엄마의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나 있다. 넓은 집도 아닌데 냉장고가 세 대로 늘어나니 부엌 옆에 있던 방의 미닫이문 두 짝을 모두 떼어내고 그곳까지 부엌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도 엄마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빈 틈이 없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심란한 마음이 들지만 엄마 나름대로는 계속해서 정리하며 사용하고 계시니 나도 별 말을 하지는 않는다. 엄마가 무엇으로 그 냉장고를 그렇게 채워두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봄이면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들로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가곤 하셨다. 그래서 나도 쑥과 돌미나리 정도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나물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특히 새 생명이 돋는 계절에 나오는 봄나물이 사람 몸에 약이 된다며 항상 나물을 양껏 뜯어다가 삶아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신다. 그래서 봄이 지나도 엄마의 식탁에는 봄내음이 가득하다. 동생 내외가 다녀가면 항상 냉동시켜 둔 나물이 필요하냐며 챙겨주시곤 하신다. 가까이 사는 나는 조금 더 엄마 덕을 본다. 아이들을 챙기고 직장에 다니는 나를 위해 엄마는 나물을 아예 무쳐서 가져다주신다. 어제는 작년 가을에 만들어 두었다던 시래기도 아예 끓여서 냄비째 들고 오셨다. 지금은 휴직 중인데도 이렇게 음식을 다 해서 가져오신 걸 보면 식도염으로 계속 약을 먹는 딸내미가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셨나 보다.
엄마 덕에 어제저녁 우리 집 식탁에도 봄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는 시금치와 시래기장을 주었다. 막내는 유독 시금치를 좋아하여 내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잘 먹는다. 첫째와 둘째는 꼭 챙겨서 한 번씩은 맛보라고 하는데 어제는 첫째가 잠시 고민하다가 시래기를 집어 한 입 먹고는 맛있다며 더 달란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맛이라며 할머니는 요리사를 해도 되겠다고 한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맛이라니... 어른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감동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의외의 반응에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눈물이라는 단어에 괜히 울컥했다.
향긋한 봄나물을 여름에 심지어 겨울에도 먹으며 맛있다 말하면서도 나는 엄마의 냉장고 속 사정이 못마땅하다. 그 나물을 굳이 겨울에 안 먹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잔뜩 가져와서는 하루종일 허리도 못 펴고 다듬고, 삶고, 정리해서 냉동실을 채우는지. 두 분 내외가 다 드시지도 못할 만큼의 총각김치, 물김치, 파김치, 갓김치, 오이김치... 왜 그 많은 김치들을 담아서 냉장실을 채우는지. 닭을 키우는 지인에게서 받아왔다며 백숙을 했다고 먹으러 오라고 하셔서 가보면 한 솥 가득 백숙이 있다. 풀어서 먹이는 닭이 낳은 달걀이라며 손주들에게 좋은 것 먹이라고 가져다주시는 것을 받아와 보면 30개짜리 두 판은 족히 될 양이다.
그 다양한 먹거리들의 출처는 가끔 무척 싸게 사 왔다는 재래시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지인 또는 산과 들이다. 그걸 볼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얘기한다. 두 분 드실 만큼만 가져오시라고. 우리도 주고 싶으시면 딱 한 번 먹을 만큼이면 된다고. 며느리는 싫어도 말 못 할 수도 있으니 달라고 하면 주시고, 한 번 사양하면 그냥 두시라고. 그럴 때마다 요즘에는 그렇게 한다는 엄마의 말과는 달리 엄마의 냉장고는 여전히 그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에게 나누기도 하고 우리에게 가져다주시기 위함인 것을 안다. 그러나 아직 아이들이 어리고, 남편도 밑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기에 그 음식들은 우리 집에 와서도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면 나도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남편도 아이들도 그때그때 하는 반찬만 잘 먹고 다음날 다시 올리면 손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말씀드려도 빈 공간이 많은 우리 냉장고가 엄마에게는 채워야 할 공간으로 보이는가 보다.
그래도 요즘에는 작은 통에 반찬을 담아주신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또 요즘 매운 음식을 피하는 나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고추장 없이 나물을 무쳐주셨다. 남편도 역시 나물반찬은 어머님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며 잘 먹는다. 아이가 시래기를 먹으며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며 식탁 가득한 엄마의 음식을 보니 왠지 내 눈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봄에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대신 웅크리고 앉아 땅을 바라보며 나물을 뜯고, 허리를 두드려가며 다듬고 삶아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넣어두던 엄마의 모습, 나물을 다시 꺼내어 해동하고 양념하여 반찬통에 꼭꼭 눌러 담는 엄마의 손길 하나하나가, 그 긴 시간이 내 머릿속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머릿속에서는 가늠하지 못하는 그 시간 속의 마음들을 눈물이 알아준다. 아이의 입에서 ‘눈물'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온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