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전, 시어머니는 시동생에게 싱가포르의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주셨다. 그때 남편의 경제 형편이 시동생보다 훨씬 좋았던 터라, 부모의 마음으로 능력 안 되는 자식을 챙겨주셨으리라 짐작된다. 시동생네 아이들까지 돌봐주며 살림을 꾸리시던 시어머니. 물론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길이 있었지만, 시어머니의 헌신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상하이에서 아이들을 낳고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겨우겨우 버텼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들은 외할머니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자랐다. 시간이 흘러 싱가포르로 돌아온 후, 나는 코로나 시국에도 동남아 가정에서 흔히 쓸 수 있는 도우미조차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왔다. 출장은 아이들 방학에 몰아서 다녀야 했고, 일상은 숨 가빴지만 그래도 견뎠다.
두 달 전,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이 드신 시어머니의 거처 문제 때문이었다. 나는 솔직히 난감했다. 시동생네는 시어머니께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서, 이제 와서는 짐이라도 되는 듯한 눈치였다.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란 그저 사랑뿐, 금전적인 것은 별로 없었다. 요즘은 내 아이들조차 각자의 일과 고민으로 바쁘고, 나 역시도 힘들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효도는 해야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명하게 이 문제를 풀어가고 싶었다. 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을 것이고, 내 아이들은 내가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니 작게라도, 사소한 것부터 시어머니께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작은 안부 전화 하나, 따뜻한 음식 한 접시, 병원 동행 같은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고. 그것이 나의 효도이고, 언젠가 내 아이들이 배우게 될 삶의 본보기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