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스토리 1탄: 싱가포르 남자를 만나다
요즘 나의 브런치 인생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평범한 월요일, 카페 ‘Rose Coffee’에서의 시작은 커피 한 잔과 크로와상, 그리고 아무 기대 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유창한 영어 발음. “Excuse me, is this seat taken?” 올려다보니, 브라운빛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 마치 넷플릭스 아시아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듯한 남자가 웃고 있었다.
"어... 아니요. 앉으세요." 영어를 제대로 쓰기도 전에 내 심장은 이미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캐빈. 싱가포르에서 출장 온 마케팅 디렉터란다. 잠시 빌린 자리에 앉았다가, 어느새 우리는 브런치를 함께 하고 있었다. 영어 반, 한국어 반, 그리고 손짓 발짓 30%. 말이 안 통해도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무슨 마법이 있었는지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이처럼 웃고 떠들었다.
“너무 즐거웠어요. 한국 자주 오세요?” 내가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이번이 마지막 출장이 될 것 같아요. 와이프가 곧 이사 준비를 하거든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와이프? 순간 귀를 의심했다.
"와이프요?" 하고 되묻자, 그는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Yes, I’m married. But I like meeting new people. You’re very interesting."
그 순간, 머리로는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해'라고 외쳤지만, 감정은 멈춰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있었다. 하나는 “그냥 브런치였을 뿐이야. 오해하지 마.” 또 다른 하나는 “그래도 좀 심하지 않니? 유부남이라니!”
그날 이후, 캐빈은 몇 번 더 연락을 해왔다. 물론 나는 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메시지가 계속 쌓여갈수록, 내 안의 자존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 한 끼로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겪을 수 있다니.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야, 너 그거 완전 드라마 소재다. '싱글녀, 유부남과 브런치 하다' 어때?”
사실 그날의 기억은 씁쓸하면서도 묘하게 달콤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두근거렸고, 현실은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해 줬다. 나의 브런치는 끝났지만,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나의 브런치 스토리 2탄: 사랑에 빠지다
캐빈의 메시지는 며칠에 한 번씩 꾸준히 도착했다. 처음엔 무시했다. ‘유부남이잖아.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렇게 내 안의 윤리와 이성은 단호했지만, 그의 이름이 화면에 뜰 때마다 심장은 그걸 배신했다.
“혹시 오늘도 브런치 하실 건가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유난히 다정했고, 그날따라 나도 유난히 외로웠다. 결국, 손가락이 배신을 저질렀다.
“오후 1시, Rose카페에서 봐요.”
캐빈은 여전히 그 미소로 날 맞이했다. 그리고 우린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와 한국의 다른 문화, 그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요즘 꽂힌 책 이야기까지. 어쩌면 나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에 빠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고, 나의 모든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상해요. 왜 자꾸 당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말했다.
나도 이상했다.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마음이 자꾸만 흔들렸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은 비가 왔다. Rose Coffee가 아닌, 캐빈이 추천한 작은 와인 바에서 만났다. 초여름 밤, 촉촉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말이 아닌 침묵으로 대화했다.
“나…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자꾸 널 보고 싶어 져.”
그의 말에 대답 대신 조용히 와인을 마셨다. 손끝이 살짝 닿는 그 짧은 순간이, 너무 길게 남아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빠져들었다. 그와 있을 땐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모든 감각이 선명했고, 감정은 강렬했다.
하지만 동시에 죄책감은 날 갉아먹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비밀은 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니, 털어놓기조차 창피했다. ‘나답지 않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수십 번 타이르며, 그러나 다시 캐빈의 연락을 기다리는 내가 싫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나, 곧 돌아가요. 그전에… 한 번만, 같이 여행 가줄래요?”
이 말은 곧 경고처럼 들렸다. 이 관계가 끝나기 전에 마지막 불꽃을 피우자는 것.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내가 묻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지.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었다. 너무도 당연히,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너무도 당연히 그 사랑은 허락되지 않았다.
캐빈은 유부남이었다. 나는 그걸 처음부터 알았고, 그럼에도 그의 미소에, 다정함에, 외로움에, 그리고… 그의 진심 같은 거에 빠져버렸다.
이건 사랑일까, 착각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나의 브런치 스토리는 그렇게 한 걸음 더, 깊은 감정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끝이 어딘지 모르는 길 위에서.
나의 브런치 스토리 3탄: 비밀 여행과 그다음의 이야기
“너무 멀진 않지만, 하루쯤 도망치기에 딱 좋은 곳이야.”
캐빈이 그렇게 말하며 예약해 둔 곳은 강릉의 한적한 바닷가 펜션이었다. 작은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해 질 녘이면 온 방이 주황빛으로 물드는 곳. 도망치듯 떠난 우리 둘은 마치 세상에 단둘이 있는 듯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행 내내 캐빈은 내 옆에 있었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웃고, 안아주고… 마치 ‘사랑해’라는 말을 눈빛으로 수백 번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행복하면서도, 마음 어딘가에 묘한 허전함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밤이 되자 바람이 거세졌다. 우리는 펜션 테라스에서 담요를 덮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랑 있으면 정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야. 진짜 내 모습으로.”
그 말이 좋으면서도 아팠다.
진짜 그의 모습은, 다른 여자와 가정을 꾸린 남편이었다. 나는 그의 일탈에 발을 들인 외로운 모험자였고.
“그럼, 그 다른 인생을 계속 살 순 없을까?”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캐빈은 길게 숨을 쉬었다.
“나는 비겁해. 네가 알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걸.”
그 말에 나는 무너졌다. 진심이라는 말은 많았지만, 선택은 없었다.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나를 ‘선택하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이 그제야 뼈처럼 박혔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기차 안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음은 여전히 애틋했지만, 이미 현실이 그 감정을 조용히 밀어내고 있었다.
며칠 후, 그의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고마웠어요. 당신 덕분에 많이 웃고, 많이 느꼈어요. 나를 용서하진 않아도 돼요. 대신, 꼭 행복하길 바라요.”
그는 싱가포르로 돌아갔고,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여행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처럼 박혀 남았다.
가끔, 브런치를 먹을 때마다 그가 떠오른다. 메뉴판에서 와플을 보면 웃음이 나고, 커피 향에 눈을 감으면 그날의 바다가 생각난다.
그 사랑은 틀렸지만, 가짜는 아니었다.
우리는 잠시 스쳐 지나간 계절이었지만, 그 안에 분명히 사랑이 존재했다. 그 사실 하나만은,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브런치 스토리 4탄: 다시 나를 사랑하기까지
그의 마지막 메시지 이후, 계절이 바뀌었다. 벚꽃이 지고, 장마가 오고, 다시 태양이 내리쬘 때쯤 나는 그를 잊는 법을 배워야 했다. 눈물은 점점 마르고, 심장은 평범한 일상에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묘하다. 잊었다고 생각할 때쯤, 운명은 다시 나를 그에게로 이끌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서 도착한 카톡 한 통.
“야, 이 기사 봤어? 싱가포르 재벌가 며느리, 도우미 학대에 불륜까지… 결국 법정 구속이래!”
링크를 클릭하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캐빈의 아내, 제니퍼.
숨이 막혔다. 수많은 기사들 속에서 나는 퍼즐을 맞추듯 진실을 읽었다.
제니퍼는 겉으로는 자선 사업을 하는 상류층의 모범 며느리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녀는 집안 도우미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모욕했고, 해외에서 불륜을 저질러 호텔 CCTV까지 증거로 남아 구속되었다. 캐빈의 가족은 충격 속에 침묵했고, 언론은 ‘가면을 벗은 재벌가의 민낯’이라며 떠들어댔다.
그 사건 후 한 달쯤 지나, 나는 익숙한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벨소리가 울리는 동안, 심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동쳤다.
“나야. 캐빈.”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고, 동시에 단단했다.
“나, 다시 한국에 왔어.”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았다. 같은 카페, 같은 자리, 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으로. 캐빈은 더 이상 웃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러운 믿음이 있었다.
“나… 이제 진짜 너한테 솔직해지고 싶어.”
그의 말은 천천히, 그러나 진심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결혼 생활이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있었고, 아내와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고 했다. 법적으로는 구속 수감된 그녀와 이혼이 진행 중이며, 아이는 없었다. 모든 스캔들과 수치 속에서도, 그가 한국으로 다시 온 이유는 단 하나라고 했다.
“너야. 내가 다시 숨 쉬고 싶어진 이유.”
그 말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사랑은 달콤하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 잔인하다. 그는 나를 향해 돌아오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았다. 명예도, 돈도, 가족의 기대도.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가 묻자, 나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미소 지었다.
“나부터 다시 찾아야 할 것 같아. 내가 누군지, 네가 없는 동안 잃었던 것들이 너무 많거든.”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았다. 이번엔 조심스러웠고, 진심이었다. 우리 사이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세상의 시선, 과거의 상처,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함.
하지만 이젠, 도망치는 사랑이 아니었다.
진짜 나를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그 역시 진짜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번엔 제대로 사랑해보고 싶다.
숨기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나의 브런치 스토리 5탄: 진짜 연인이 되기까지
캐빈이 다시 한국에 온 지 한 달. 우리는 다시 자주 마주했고, 다시 함께 웃었지만, 그건 전과 달랐다. 이제 우리의 관계는 숨기지 않았고, 동시에 숨죽여야 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현실의 벽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에단은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이미 법정에서는 그의 이혼사유가 인정되었고, 제니퍼의 구속 이후 언론의 시선도 점점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혼남’이라는 꼬리표, 그리고 ‘스캔들 속 여인’이라는 나를 향한 시선은 날이 갈수록 뾰족해졌다.
친구 몇몇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 진짜 너한테 진심이야? 상처만 더 커지는 거 아니야?”
처음엔 흔들렸다. 나조차 내가 바보처럼 보였다.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걸 감당하겠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나를 자책했다. 하지만 에단은 나를 놓지 않았다.
“네가 날 믿지 못해도 돼. 내가 널 믿을게. 그게 우리 시작이었으니까.”
그는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연락을 미루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없었다. 내 하루에 정성스레 스며들었고, 조용히 곁을 지켰다. 특별한 이벤트보다, 평범한 일상이 가장 큰 사랑임을 그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우리 사이의 거리가 처음으로 ‘현실’이 되었을 때는, 내가 그를 가족에게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부모님은 조용히 내 말을 들었다. 그가 유부남이었던 과거, 지금의 상황,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까지 솔직히 전했다.
긴 침묵 끝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랑이란 건… 가볍게 시작해 무겁게 책임지는 거다.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우린 네 편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진짜 ‘우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며칠 후, 캐빈은 나를 정식으로 한 식당에서 초대했다. 그곳엔 소박한 꽃다발 하나, 그리고 그의 손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겪어온 시간들.
너무 빠르게 사랑했고, 너무 깊게 상처받았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어.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묶이지 않고 싶어.
너와 함께 지금을 살고, 미래를 그리는 남자가 되고 싶어."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진짜 연인이 되자.”
도망치지 않고, 감추지 않고, 누구도 속이지 않으며.
서툴지만 정직하게, 불완전하지만 진심으로.
우리의 사랑은 더 이상 불안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이제는 매일 함께 걸어가는 길, 손을 꼭 잡고 나아가는 진짜 연인의 시간이었다.
나의 브런치 스토리 6탄: 가족이 된다는 것
카빈과 내가 진짜 연인이 된 후,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흘러갔다.
서로의 옆자리가 익숙해졌고, 손을 잡는 온도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사랑과 함께 오는 것은, 책임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무게였다.
우리가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 단지 사랑만으론 부족했다.
어느 저녁, 캐빈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같이 살아볼까?”
그 말은 설레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껴졌다.
연인은 갈등이 생기면 돌아설 수 있지만, 가족은 마주해야 한다.
가끔은 마주 보고, 가끔은 등 돌린 채로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기에, 우리는 결국 작은 빌라의 한 채를 함께 꾸미게 되었다.
이삿날, 캐빈은 새 커튼을 달고, 나는 냉장고에 우리의 사진을 붙였다.
이 낯선 공간은 조금씩 우리의 향기를 입었고,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정말로 ‘가족 같은 연인’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어느 날, 캐빈은 싱가포르 본사 복귀 명령을 받았다.
3개월 만이라 했지만, 그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작 같았다.
“같이 갈래?”
그는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시작했잖아. 여길 떠나면, 또 예전처럼 될까 봐 무서워.”
캐빈은 이해했다. 나를 강요하지 않았고, 대신 한국에 지사를 세우는 방향으로 회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진심이, 나에겐 무엇보다 큰 증명이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선택으로 보여주는 거라는 걸.
그리고 또 한 사람.
캐빈의 어머니가 한국에 오셨다.
처음 만남은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단정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나를 향해 이런 말을 꺼냈다.
“나는 캐빈이 다시 웃는 얼굴을 너 덕분에 봤어.
그 아이가 너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되더라.”
그녀의 말에 눈물이 났다.
나는 결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에단 또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게 한결 더 선명해졌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크지 않게,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해 조용히.
축의금도, 드레스도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날 우리는 진짜로 서로의 가족이 되었다.
이제 아침엔 내가 만든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고,
밤엔 함께 장을 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어느 일요일엔 청소하며 싸우기도 하고,
또 금요일 밤엔 나란히 앉아 영화 보며 잠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나의 브런치 스토리 7탄:
결혼한 지 어느덧 7년.
내 이름보다 “엄마”라는 말이 더 익숙해졌고,
화장은커녕 세수도 못한 날이 허다하다.
나는 지금,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땐 모든 게 낯설고 벅찼다.
밤낮없이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눈물과 젖이 엉킨 티셔츠 위에서 잠든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캐빈은 내 곁을 묵묵히 지켰다.
“우리가 만든 생명이야. 힘들 땐 내 어깨를 써.”
그 말에 나는 수없이 기댔고, 그 믿음 속에서 엄마가 되어갔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아이까지.
나는 세 번의 출산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한 번씩 무너지고, 다시 새로워졌다.
배는 늘어나고, 허리는 휘고, 머리카락은 수북이 빠졌지만
아이들의 눈웃음 한 번이면, 그 모든 고통은 흐릿해졌다.
요즘 나의 하루는 전쟁이다.
세 아이가 동시에 다른 음식을 찾고,
하나는 코 흘리고, 하나는 뛰쳐나가고,
그 사이 남편 출근 도시락은 놓쳤고,
나는 커피 한 모금 마시다 식어버린다.
그런데도 문득, 아이들이 조잘조잘 “엄마~” 하고 달려올 때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임을 느낀다.
누가 봐도 지친 얼굴이지만, 나는 이 작은 손들에 둘러싸여 가장 큰 사랑을 매일 받고 있다.
캐빈은 이제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다.
퇴근 후엔 책 읽어주고, 주말이면 셋을 번쩍 안고 놀이터로 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가 걸어온 모든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물론, 우리도 싸운다.
육아는 연애처럼 달콤하지 않고, 서로를 참 많이 다치게도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이 싸움은 끝내자는 게 아니라, 함께 이겨내자는 몸부림이라는 걸.
아이 셋을 키우며, 나는 나를 다시 키우는 중이다.
더 이상 ‘브런치 카페’에서 여유 있게 커피 마시는 일은 없지만,
토스트에 딸기잼 발라주며 아이들이 웃는 걸 보는 이 시간이
내 인생 최고의 브런치임을 안다.
세상은 아직도 완벽한 엄마를 요구하지만,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세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진짜인 엄마로 남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캐빈과 나는 부모이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손을 못 잡는 날이 있어도,
눈빛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안아줄 수 있다는 걸
우리만은 알고 있으니까.
나의 브런치 스토리 8탄: 엄마도 여자로 살고 싶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 섰다.
잔머리는 뻗쳤고, 눈 밑엔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았다.
한때는 립스틱 하나에도 설레며 거울을 보던 내가
지금은 묻은 이유식 닦느라 손등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게 일상이다.
아이 셋을 키우는 삶은, 바쁘다 못해 정신이 없다.
출산과 육아, 살림과 교육…
모든 것이 ‘아이 중심’이 되며 나는 점점 배경이 되어갔다. 에단은 늘 이렇게 말한다.
“넌 지금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어.”
그 말이 고맙고, 나를 지탱해 주기도 했지만
가끔은 그 말속에 여자로서의 나는 빠져 있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나는 여전히 설레고 싶고,
누군가의 눈빛에 떨리고 싶고,
거울 속 자신을 예쁘다 말해주고 싶은,
한 사람의 여자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가 유치원에서 가져온 그림 한 장.
“이건 엄마야!”
그림 속 나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머리는 뻗쳐 있었고
눈은 세 개, 팔은 여덟 개였다.
“엄마는 맨날 바쁘고, 뭐든 다 해줘서 팔이 많아야 돼!”
순간 웃음이 났지만, 그 그림을 보며
나는 문득 ‘이 아이가 그리는 나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혹시 내 아이도, 나를 여자 아닌 ‘기계 같은 존재’로만 기억하진 않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운 후 나는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예전처럼 정성스럽게 눈썹을 그리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캐빈 앞에 서자 그는 놀란 얼굴로 웃었다.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예쁜 여자랑 살고 있는 기분이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괜히 울컥해졌다.
나는 엄마로도 살지만,
당신의 여자이고 싶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이름으로도 살고 싶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을 조금씩 떼어냈다.
아이들이 낮잠 잘 때, 30분은 나만의 독서 시간.
주말에 한 번은 친구와 브런치.
잠들기 전, 향 좋은 로션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수고했어, 오늘도” 말해주는 시간.
에단도 변했다.
“애들은 내가 볼게. 오늘은 네 하루로 살아.”
그 말에 나는 카페에 가기도 하고, 꽃집에서 꽃도 사본다.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지 몰라도,
나에겐 다시 여자가 되는 연습이다.
나는 오늘도 엄마로 산다.
하지만 이제,
엄마이기 전에 ‘나’라는 이름도 함께 살아간다.
그건 이기적인 게 아니다.
오히려 나를 돌보는 일이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가족 모두에게 더 좋은 영향을 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엄마도, 여자로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둘을 함께 살아내는 나를,
나는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후기: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담아 봤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