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을수록, 마음의 결은 더 잘 보인다.
누군가의 말 한 조각이 내 안의 오래된 상처를 건드리면,
나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들은 이미 잠들었지만,
나는 그 무심한 말의 잔향 속에서 스스로를 해부했다.
그때의 나는 ‘공감이 깊은 사람’이라 불렸지만,
사실은 너무 쉽게 젖는 사람이었다.
남의 감정에 들어가 사는 동안
내 감정의 집은 점점 텅 비어갔다
❶ 타인의 바다에 잠기면, 내 물결은 사라진다
성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타인의 물결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일이다.
우리를 지치게 하는 건 일의 무게가 아니라
끝없이 타인의 파도에 실려 다니는 피로감이다.
누군가 오해하면 해명하고,
무례를 당하면 불타오르고,
기대를 받으면 그 기대에 매달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모든 반응의 중심에는 ‘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연극에 너무 오래 출연했다.
대사도, 표정도, 심지어 숨조차 그들의 리듬에 맞췄다.
❷ “나는 당신의 장면에 출연하지 않겠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만의 기류를 지닌다.
그들은 바람을 맞아도 부러지지 않고,
파도를 만나도 삼켜지지 않는다.
그들은 공감하지만 대신 아파하지 않는다.
이해하지만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빛은 스스로 증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득하지 않는다.
꽃은 이유 없이 피어도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관계가 흩어져도 원망하지 않는다.
헤어짐조차 자기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❸ 진짜 청명함은, 반응 대신 침묵을 택하는 것
이제 나는 안다.
모든 감정은 지나가는 바람이다.
누군가의 폭풍 속에서도
나는 나의 창문을 닫을 수 있다.
그건 냉정이 아니라 자비다.
나 자신에게 남겨두는 마지막 온기이자,
소음으로부터의 후퇴가 아니라
내면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다.
❹ 흔들리던 나에게
나는 더 이상 배우가 아니다.
감정의 무대에서 내려와
조용한 객석에서 나를 바라본다.
불빛이 꺼진 자리에서도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가 아니라,
나의 문장 속에서 다시 숨을 쉰다.
그리고 어제, 한국에 있는 지인과 통화하며 말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기본은 지키되,
우리 엄마가 물려준 ‘고도의 도덕’은 버리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놀란 듯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선언이었다.
도덕은 있어야 하지만,
그 규칙이 나를 갉아먹는 칼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그 ‘착한 사람의 굴레’ 속에서
나를 소진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도덕이자,
이제 막 시작된 나의 삶의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