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속도

by 지로 Giro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나의 숲에서 다른 숲으로 이주하는 일과도 같다.
처음엔 왜 발밑의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이토록 또렷하게 들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예전엔 사람들의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소리였다.

젊은 날의 나는
늘 군중 속에 몸을 섞으려 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던 농담에 웃음을 얹고,
내 영혼에 닿지 않는 대화에도 몸을 기울였다.
소란은 늘 크고 밝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투명해졌다.
마치 여러 겹의 손길이 내 얼굴을 덮어
나는 사라지고, 웃음만 남은 것처럼.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타인이 아닌 ‘나의 온도’였음을 알아차렸다.
다른 이들의 발걸음에 맞추느라
내 속도는 금가고
내가 흘리던 빛은 바람에 떨어진 꽃잎처럼
금세 흩어졌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파장이 있다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내 주파수를 지우고 살았던 것일까.

같은 의자에 앉아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끝없이 멀고,
마주 보며 말하고 있어도
각자의 시간이 서로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닿지 못했던 이유는
부족함이 아니라 ‘진동수의 차이’였다.

나는 이제 안다.
억지 웃음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억지 대화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새벽의 물결처럼 조용히 곁에 다가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데워주는 사람은
한두 명이면 충분하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해도
마치 지난밤 같은 온도로 이어지는 사람.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다가
문득 깊고 어두운 마음의 골짜기까지
함께 내려가 주는 사람.
그런 이는 많을 필요가 없다.
숲에서 가장 오래, 가장 곧게 서는 나무도
늘 한 그루였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내 속도의 푸른 선을 따라 걷는다.
맞지 않는 무리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내 진동수에 귀 기울여 준 사람들에게
따뜻한 자리를 남겨둔다.

언젠가는,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진 이들은
바람결처럼 멀어질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우리 마음의 질서다.

내가 할 일은
누군가의 그림자에 맞춰 춤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빛이 닿는 방향으로
천천히, 그러나 또렷하게 걸어가는 것.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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