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지로 Giro

삶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던 날들,
사실은 내가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데
내 마음만 자꾸 역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을 거슬러 헤엄치며
왜 이렇게 물살이 센지 탓하고 있었던 셈이다.
생각은 안개와 닮았다.
짙을수록 길은 사라지고,
옅어질수록 방향은 또렷해진다.


우리는 종종
안개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한 채
“길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은 언제나 있었고,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시간은 동전처럼 얇지만
겹겹이 쌓이면 무게가 생긴다.


아무 데나 던져진 시간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지만,
한 곳에 모인 시간은
사람을 닮은 풍경을 만든다.
당신의 오늘은
어디에 쌓이고 있는가.
자신감을 잃는 순간,
세상은 갑자기 높은 천장과
닫힌 문들로 가득 찬 방이 된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지 않다.
우리가 문손잡이를 잡지 않았을 뿐이다.
손을 내밀 용기를 잃으면
출구는 벽으로 착각된다.
운명이 나를 길 잃게 할 때,
그것은 방향 감각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지도를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지도를 들고 걷다가
비로소 멈춰 선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향을 발견한다.
사람을 향한 나의 판단은
대부분 내 마음의 번역본이다.


불안한 마음은 타인을 공격적인 언어로 읽고,
평온한 마음은 같은 문장을
다정한 뜻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관계는 늘
나의 내면을 반사한다.
향기는 거리로 남지 않는다.
머문 곳에만 남는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는
어떤 향 속에서 살아갈지를 정하는 일이다.


낯선 향을 원한다면
익숙한 방을 나설 수 있어야 한다.
패배는 낙인이 아니라
피부에 새겨지는 경험의 온도다.
뜨거웠던 날은 오래 기억되고,
차가웠던 밤은 깊이를 남긴다.
배운 사람의 인생에는
헛된 상처가 없다.

인생이 나를 시험한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너무 오래
어둠 속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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