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소리 없이 지나간다
엄마가 여든을 넘었다.
그 사실은 숫자처럼 또렷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엄마의 손등이 내 기억보다 먼저 늙어 있다는 걸 보았을 뿐이다.
세월은 늘 그렇게 온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우리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방 한가운데 서 있다.
어릴 적,
엄마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의 소리였고,
저녁의 냄새였고,
집이라는 단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늙는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상상하지 않은 일은
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처럼.
엄마가 여든을 넘자
시간이 갑자기 무게를 갖는다.
시계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가는데
하루가
이전보다 더 빨리 끝난다.
세월이 무심하다는 말이
이제야 몸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잔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그저 흐른다.
붙잡는 손을 보지 않고,
부르는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많다.
고맙다는 말은
너무 늦을까 봐 미뤄두었고,
미안하다는 말은
괜히 엄마를 아프게 할까 봐 삼켰다.
말하지 않은 마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말해질 기회를 기다릴 뿐이다.
엄마는 가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는다.
그 웃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건너왔는지
나는 이제서야 안다.
부모는
우리 인생의 배경이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배운다.
엄마가 여든을 넘어서고 나서야
나는 시간을 세지 않게 되었다.
대신
엄마의 숨을 듣고,
눈을 보고,
오늘의 체온을 기억하려 한다.
세월은 여전히 무심하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자주 안아준다면,
조금 더 늦게 놓는다면,
그 무심함 속에서도
후회는 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늘은
엄마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본다.
내일이 아니라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