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라는 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참아야 했고,
이해해야 했고,
괜찮은 척해야 했다.
가족이니까.
언니니까.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모든 관계가
나를 상처 입히며 유지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이 관계를 설명하려 애썼다.
이해받고 싶었고,
오해를 풀고 싶었고,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감정의 소모 속에서
마침내 깨달았다.
관계는 노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쪽만 애쓰는 관계는
결국 사랑이 아니라
소모가 된다는 것을.
전화를 끊고 난 뒤
마음이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혈연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마치
오랫동안 꼭 쥐고 있던 무거운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기분처럼.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냉정해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 감정을 희생하지 않기로,
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계속 상처받지 않기로.
멀어짐이
반드시 증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존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언니를 미워하지도,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기로 했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차갑게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늦게 도착한 평온이었다.
혈연은 태어날 때 주어졌지만,
관계는
살아가며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