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온도

뜨겁되 타지 않게, 차갑되 얼지 않게


출처 : pinterest


여전히 겨울이 머무는 문턱 위로 이따금 봄바람이

스친다. 보드라운 바람이 거니는 거리의 공기에는

막 세탁한 이불처럼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어느새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이름 모를 씨앗들도

흙을 밀어 올릴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보이는 시간과 보이지 않는 시간 모두

소리 없이 흐른다.



봄이 오면 씨앗은 각자의 속도로 싹을 틔운다.

어떤 것은 빠르게 고개를 들고, 어떤 것은 한참을 땅속에서 숨을 고른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무언가는 자라고 있고, 말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은 단단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침묵의 시간을 멈춤이나 뒤처짐으로 오해하곤 한다.


씨앗이라면 기다리겠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열매가 열리든 감사할 것 같고, 열리기만 해도 기특하다 여길 것 같다. 수확의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줄 자신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내 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기에 자꾸만 궁금해지고 불안해진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안전한 열매를, 사회가 반기는 열매를 바라게 된다.


“뭐가 되려고 그래?”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하면 “꿈이 뭐야?”라고 묻게 된다. 어느 쪽이든 아이의 미래를 앞당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어쩌면 아이의 미래를 묻는 일은 우리의 불안을 잠시 내려놓기 위한 어른들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기대에 어울리는 대답

어릴 적 나는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반듯한 직업이었다. 어떤 어른들은 여자는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훌륭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상의 꿈은 지나친 욕심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답을 말하면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칭찬받을 수 있는 꿈, 반듯해 보이는 꿈, 어쩌면 나는 꿈을 말한 것이 아니라, 기대에 맞는 답을 말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도 자라며 여러 번 꿈을 바꾸었다.

유치원 때는 소방차를 좋아해서 소방관이 되고 싶다 했고,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꿈은 계절처럼 바뀌었다. 봄꽃이 지면 여름 잎이 나듯, 그때그때 마음을 흔드는 것들이 달라졌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의사, 프로듀서, 사업가 등 직업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른을 향해 가는 지점에서 꿈은 꿈처럼 사라졌다. 다만 사회의 기대에 어울리는 대답을 하는 것을 선택한 것 같다.

뜨겁고도 차가운 꿈

상담실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꿈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당연한 대답이다. 해본 것이 많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 본 경험이 적고, 무언 가에 몰입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꿈은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꿈은 묻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꿈은 가르친다고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꿈은 경험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꿈과 목표를 자주 혼용한다. 목표는 계획하는 것이지만 꿈은 마음이 깃드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뜨겁다. 너무 간절해서 뜨겁고 어느 때는 너무 이상적이어서 닿지 못해 차갑다.


꿈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조금만 식어도 견디기 어렵다. 심장을 데우던 것이 미지근해지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식어버렸다고 단정한다.

뜨거운 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잠들어 있던 발걸음을 깨우고 망설이던 마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조급하게도 한다. 지금 당장 이뤄내야 할 것처럼, 곧 증명해 보여야 할 것처럼 시간을 재촉한다.


반대로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은 차갑게 식어 마음 한편에 남는다. 한때 그렇게 뜨거웠던 것이 이제는 마음을 시리게 한다. ‘나는 거기까지였구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꿈은 뜨겁되 타지 않아야 하고
차갑되 얼어붙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 안에 숨은 불씨가 너무 세게 타지 않도록, 또 너무 쉽게 꺼지지 않도록 곁에서 제 온도를 찾아가게 돕는 일일 것이다.

꿈은 반복된 경험 속에서, 실수도 해보고 좌절로 무너져도 보며 조금씩 모양을 갖춘다.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더 나 다워진다. 그리고 가장 나 다운 날에 만나게 되는 그 장면이 곧 아이의 미래가 된다.

여러분의 미래는 어떠한가

우리도 한때 꿈을 꾸고 꿈을 말하던 아이였다. 어린 날의 자신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스치는가. 아마도 쉽게 꺼지지 않는 장면 하나쯤은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인가 꿈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말이나 혹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대답만을 성실하게 반복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꿈은 현실과 타협하여 접거나 없던 일로 하기도 한다. 심지어 미래는 설레는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잘 계산하여 안전한 답을 선택하며 무사히 살면 그만이다.


지금 여러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타인의 기대에 맞춰 그린 그림인가? 발칙하게도 어린 날 나만의 길을 향하기로 남몰래 결심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하고자 했던 일 앞에 여러 번 돌아섰고,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 전공을 정한 일, 뜻밖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 사람을 만나며 생각이 바뀐 일들처럼, 미래는 완성된 계획이 아니라 살아가며 계속 수정되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우연 같은 필연이었고 그때는 우연처럼 보였지만, 지나고 보면 어린 날 마음에 두었던 자리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크롬볼츠(John D. Krumboltz)는 진로는 치밀한 계획보다 살아가며 만나는 우연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형성된다고 말했다.


우연은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된다. 씨앗을 심지 않은 땅에는 싹이 나지 않듯, 경험을 심지 않은 자리에는 우연이 나지 않는다. 우연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 같지만, 준비된 자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보상인 셈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삶의 방향을 잘 설계해가고 있다면, 아이의 미래를 설명하는 일은 훨씬 덜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미래란 결국 직업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지키고 싶은가
지금 나는 나의 선택을 스스로 납득하며 걷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면 아이에게도 안전한 질문을 건넬 수 있다.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니?
무엇을 할 때 가장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때, 아이의 미래 역시 직업의 목록이 아니라 가능성의 지도가 된다.


어쩌면 아이의 미래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자기 삶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일지 모른다.



나는 이렇게 실패했고, 이렇게 돌아섰고, 이렇게 다시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그 말을 할 수 있는 부모라면, 아이의 미래를 굳이 정답처럼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미래를 성찰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길 위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믿어준다.


우리는 너무 오래 꿈을 목표처럼 믿어왔다. 가능한 한 빨리 방향을 정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꿈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믿어왔다.

꿈이 분명한 아이는 성실해 보이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어딘가 뒤처진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또렷한 꿈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정확히 걸어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많은 완성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부모가 해야 할 일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우연히 참여한 활동에서 평생의 관심을 발견하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새로운 생각의 길을 열어 주기도 하며,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세계를 향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봄의 씨앗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확실하게 안전하고 명확하게 따뜻한 버팀목은 제대로 지원하기로 한다.


어쩌면 꿈이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을 통과한 뒤에 야 비로소 이름 붙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이 오고 있다.


아이들은 또 한 뼘 자랄 것이다.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관점이 싹틀 것이다. 혹시 아이가 아직 꿈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굳이 묻지 않아도 좋겠다. 미래를 재촉하며 지금 어디쯤 왔는지, 얼마나 더 컸는지 땅속에서 올라오려 나름의 궁리를 하는 씨앗의 보금자리를 파헤치지 않아도 좋겠다.


오늘부터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주는 시간을 통과해 보기로 하자. 이 과정은 아이와 우리의 신뢰가 싹트는 시작이 된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의 신발을 신어보라. 맞지 않는 타인의 신발을 신어본다는 일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안다. 그만큼 아이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 신발을 신고 아이와 같은 보폭으로 걸어보는 상상을 하며 그저 나란히 함께 머물러 보기로 하자.


우리는 열매를 재촉하기보다 햇빛이 되어주고, 비가 되어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주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럭저럭 살아낸 시간들에서 빚어낸 가장 자기 다운 빛은 기다림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어떤 한 것을 건져 올려 이름을 붙이게 되는 그것이 바로 아이의 꿈이 될 테니 서두르지 말기로 해보자.


좋은 날, 좋은 때를 위하여 지금은 마음을 충만하게 챙겨보도록 하자 Mindful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