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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l 03. 2022

어떤 계기로 공무원은 나의 꿈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나



아빠가 조금 이른 퇴직을 하셨다. 아빠의 퇴직을 많은 사람이 축하해주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아빠는 직장 생활을 잘하셨구나 또 한 번 깨달았고, 부러웠다. 어디선가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 증명받는 기분일 거라 생각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면 번아웃이 오거나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제 일을 안 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끼고 일상을 즐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닥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빠 걱정을 하셨지만, 아빠는 놀랄 만치 행복해 보이셨다.



우리와 여행을 더 자주 가는 것은 물론이고 직장 동료들과도 여행을 떠나시고, 배우고 싶던 취미를 배우고, 각종 집안일을 도맡으셨다. 퇴직하시니 더 알차게 시간을 쓰셨고, 더 행복해 보였다. 공무원인 아빠를 따라 공무원이 하고 싶었던 나는, 퇴직 후 모습을 보며 아빠가 공무원이어서 행복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은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스치었다. 물론 지금까지 해 온 것이 있으니 퇴직한 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아빠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결국 나는 아빠의 퇴직으로 공무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오랜 시간 나의 꿈이라고 생각해 왔던 일이 알고 보니 오로지 내 것이 아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내 삶에 침투되어 있었으므로 다시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나의 기준이 아닌 아빠의 기준으로 내가 원한다고 투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가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럼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또 한 번 방황했고, 차근차근 나의 방향을 설정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는 공부를 하다가 잘 안돼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즉, 실패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그런 시선이 싫다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공부가 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바뀌어서, 뚜렷한 이유가 생겨서 그만두는 것이므로 전혀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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