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길 위에 있지만, 지금이 충분하다

by Ellie

돌아보면 참 먼 길을 걸었다. 병동에서 밤을 새우던 시절,

아이를 품에 안고 시간을 멈추던 날들, 그리고 새벽마다 책을 펼치던 시간들까지.

모두 다른 장면이었지만 결국 한 문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미국 대학의 과제는 끝이 없고, 아이의 성장 속도는 내가 따라잡기 어렵다.

하루가 짧고, 마음은 늘 분주하다. 그런데도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다.


이젠 안다.

완벽한 하루는 없지만, 충분한 하루는 있다는 걸.

커피 한 잔을 끝까지 마신 날,

아이의 웃음을 마음 편히 본 날,

수업 내용을 끝까지 이해한 날. 그게 다 ‘충분한 하루’였다.


나는 여전히 간호사고, 엄마이며, 학생이다.

예전처럼 환자를 돌보지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삶과 회복에 닿아 있다.

돌봄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미래는 여전히 멀고,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불안이 나를 멈추게 하진 못하니까.

나는 그 불안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인생의 완성은

‘도착’이 아니라 ‘지속’ 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내가 어제보다 단단하고,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자유롭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직 길 위에 있지만, 지금이 충분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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