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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rain Drain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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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26. 2021

몽중몽 (Dream In A Dream)

오늘은 내 꿈 이야기를 들려줄게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초승달이 하늘에 모로 누워 우리를 굽어보던 그런 밤이었다.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허공에 걸린 달구경을 하던 네가 나직이 한숨을 그으며 나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곳은 너무 추워서 공기 중에 이렇게 숨을 내뱉으면 바로 얼음이 되어 부서져 버린대."


"그래?"


"응. 그 지방 사람들은 숨결이 얼었다 부서지는 소리를 「별의 속삭임」이라고 부른다더군. 낭만적이지? 책에서 읽었어."


너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서, 가게?"


목 끝에 신물처럼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다시 꾹 눌러 담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글쎄."


"그곳에서 네가 무얼 할 수 있다고?"


일부러 가시 돋친 말을 내뱉고 싶었다. 그 날카로움에 네가 기꺼이 걸려 넘어지길 바라면서.


"전나무 숲 속에 가보고 싶어."


푸스스 웃음을 털어내는 네 위로 진눈깨비가 사락사락 흩날리기 시작했다. 네가 털어내야 하는 것은 농담 같은 웃음이 아니라 켜켜이 쌓이고 쌓인 생의 무게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럼 나도 따라갈래."


타다 남은, 까맣게 전소된 과거의 잔상과 기억들이 너와 나 사이를 불티처럼 휘저으며 날고 있었다. 위태롭게 점멸하는 버스 정류장 전광판 불빛 아래 부유하는 잿가루가 네 어깨 위로, 내 콧잔등 위로 사뿐사뿐, 가만가만 내려앉았다.


"간밤 꿈에는 네가 나왔어."


"이번엔 어떤 꿈이었어?"


그곳은 겨울이었어. 어찌나 춥던지, 흙길마저 서럽도록 꽝꽝 얼어붙어 있었지. 나는 어느 산중에서 절간 같은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 같아. 내 영혼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모종의 슬픔 때문에, 머리긑부터 발끝까지 절망을 뒤집어쓴 채 끈적끈적한 슬픔을 뚝뚝 흘리며 산속으로 기어들어 갔던 거야.

넌 한겨울의 관목 숲을 본 적 있니? 부러질 듯 가녀린 가지들이 지옥 구덩이에서 뻗어 올린 손길처럼 숙명적으로 하늘을 받치고 늘어서 있단다. 혹여 달이라도 걸리는 날엔, 달그림자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마른 가지들이 툭- 소리를 내며 으스러져 버리는 곳이었어.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려왔어.

나뭇가지가 분질러지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종도 아닌 것이, 풍경도 아닌 것이,


당그랑,

당그랑,

당그랑,


거리며 제 몸을 떨어대는 소리였어.

계곡물속으로 무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

그게 뭐였는지 알아?



너였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곡 물속으로 네가 한 발짝씩 대디딜 때마다


당그랑,

당그랑,

당그랑,


소리가 났어.

한겨울에 삼베옷을 입고서 달그림자를 진 채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네 등위로 오늘처럼 회색 재가 흩날리고 있었어. 물에 젖어들어가는 네 수의에 튄 불티 때문에 활활, 불이 붙기 시작했지. 너는 네 수의를 스스로 차려입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상엿소리를 흥얼거리고 있었던 거야.


"가지 마!"


내 부름은 무참히 구겨진 채 물가의 조약돌 더미 사이로 뒹굴거렸지.


당그랑,

당그랑,

당그랑,


그때, 자정을 가리키는 괘종시계 소리가 들려왔어.

푹 숙여졌던 고개를 문득 들어보니, 나는 산중 절간이 아닌 달리는 열차 안에 몸을 구긴 채 잠들어 있더라고.


어디서부터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이었을까?


정거장을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는 약속된 진눈깨비가 흩날리며 전나무 숲을 뿌옇게 뭉개 놓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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