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에 맞지 않는 존재로 사는 삶에 대하여
/엄지발가락이 약간 큰 건 치명적이다 양말에 금방 구멍이 나고 자주 의자 다리를 걷어차곤 부주의하다고 매번 눈총과 지적을 받지만 아픈 건 항상 내 쪽인데, 해명할 길도 없었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삶은 발가락 같아, 발톱이 뿌리째 뽑혀도 본/
-<양말을 사러 서점에 가자>, 류성훈
세상이 정한 규격에 맞지 않는 발.
그래서 항상 자신을 구긴 채 걸어야 했던 사람.
류성훈 시인의 이번 시집 <산 위의 미술관>은 세상의 표준보다 '엄지발가락이 약간 커서' 슬픈 이들의 기록이다.
남들은 무던하게 신는 신발에 혼자 발가락을 구기고, 남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것에 혼자 부딪히는 사람. 아픈 건 정작 자기 쪽인데도 세상으로부터 부주의하다는 핀잔을 듣는, 표준 치수에서 조금 삐져나온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치열한 통증은 ‘신발'이라는 매끈한 외피 속에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남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잘 닦인 단정한 구두뿐, 그 안에서 짓눌리고 뭉개지는 살갗은 보이지 않는다. 비명은 가죽 안쪽에 갇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세상은 보이는 대로만 판단한다. 비틀거리는 원인이 맞지 않는 '신발'에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태도'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상처는 해명할 증거가 될 수 없기에, 억울함을 혼자 속으로만 삭이며 묵묵히 절뚝거릴 수밖에 없다.
세상의 규격과 묘하게 엇박자를 내는, 그러나 그 미세한 틈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비규격의 존재들. 남들보다 조금 더 튀어나온 그 감각의 모서리 때문에 그들은 평생 불편함을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삶은 발톱이 뿌리째 뽑혀도 본 발가락처럼, 늘 아리게만 느껴지고.
그렇다고 시인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도 세상의 무던함이란 규격 속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 애쓰고, 닳아버린 마음을 스스로 꿰어 기워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닳아버린 천은 바늘 꿸 곳이 없다 요즘 누가 양말을 꿰매 신냐고 모두가 면박을 줬다 (...)'는 시구처럼, 세상은 마음을 기워 쓰는 감성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 사서 갈아 신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세상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엄지를 구긴 채 신어야 맞는 신발이 진짜 내 것이라고 여기려' 애쓰며 정신적 합리화라도 해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남들과 다른 감성을 가졌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그만큼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은 '괄약근이 없어 참을 수도 없는 새들의 방뇨'처럼 애써 억누른다고 억눌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오래 스스로를 구긴 채', 구두 속에서 다 해져버린 양말을 생각하며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어쩌면 체념과도 같은 다른 선택을 내린다. 구두에 발이 맞든 맞지 않든, 어차피 우리는 다 죽을 유한한 존재라고 읊조리며 드림캐쳐 아래서 생크림 케이크나 먹어 버리는 것이다.
/태양 따위 유한한 거지 우리는 어차피 다 죽을 거라며 너는 드림캐쳐 아래에서 생크림케이크를 먹었다/
-<호로스코프벨린>, 류성훈
/딸기의 질감처럼 우리는 씹는 쪽보다 추억되는 쪽으로 남자/
세상은 구멍 난 양말을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 넣듯, 쓸모없고 약한 것들을 '씹어서' 소화해 버리려 한다. 이 거대한 효율의 세계 앞에서 시인이 택한 방식은, 억지로 구두에 발을 맞춰 유용한 부속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씹히지 않고 기억되는 것", 즉 철저하게 비실용적인 '아름다움'으로 남는 것이다.
드림캐쳐가 악몽을 걸러주듯, 시인은 자신의 예민한 감각으로 세상의 무관심과 획일화, 그리고 폭력에 가까운 '보통'에 대한 강요를 걸러내고 그 자리에 '양말'과 '케이크' 같은 부드러운 언어들을 놓아둔다. 비록 발가락은 붓고 아플지언정, 남들과 다르게 튀어나온 엄지발가락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질긴 저항이다. 화자가 양말을 사기 위해 굳이 서점을 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닳아빠진 발을 보호하는 것은 질긴 가죽 구두가 아니라, 고작 팔천 원짜리 양말 같은, 무력하고도 아름다운 시 한 줄이기 때문이다.
서점 한구석, 드림캐쳐 아래서 생크림 케이크를 나눠 먹는 상상을 해본다. 세상의 규격에 맞지 않는, 툭 튀어나온 엄지발가락을 가진 우리들이 모여 킬킬대며 나누는 위로를.
비록 문밖을 나서면 다시 발이 아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발가락이 불쑥 삐져나온 그 헐거운 양말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