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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n 05. 2018

코끼리와 스프링복

내가 대기업을 퇴사한 이유


 코끼리 이야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처음 휴가를 써서 방콕으로 여행을 갈 것이라는 내게 대학 동기인 J는 언제나 그렇듯 활기찬 목소리로 '나도나도!'라며 덩달아 신나 했다. 그녀는 나중에 한번 꼭 그곳에서 코끼리 목욕 봉사활동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 하고 많은 것 중에?라고 J에게 되물었다.  
  
  "태국에는 서커스, 트래킹 같은 어트랙션에 코끼리가 나오는 경우가 진짜 많대. 근데 야생 코끼리는 원래 성격이 온순하지 못해서 새끼일 때부터 길들여야 조련사가 다루기 수월하다네. 그래서 태어나서 젖도 채 못 뗀 새끼들을 데려다가 뒤주 같은 좁고 어두운 곳에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놓는다는 거야. 그 기간 동안 아기 코끼리를 꼬챙이로 찌르거나, 갇혀있는 뒤주를 흔들거나, 큰 소리로 놀라게 하면서 잔뜩 겁을 주는 거지.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나면 코끼리가 완전히 야생성을 상실하게 된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상태가 되어버려서, 사람들이 다루기 쉬워지는 거야."



 
  그렇게 인간들의 구미에 맞게 조련된 코끼리들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버리면 잔혹한 인간들은 그제야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자연으로의 방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에 야생성을 상실해 버린 코끼리는 자연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곧 굶주림으로 죽고 만다고 했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방생된 코끼리들을 거두는 센터가 생겨나게 되었고, 해마다 일정 기간씩 자원봉사자들의 신청을 받아 센터 일을 도울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 분담 업무들 중에서 목욕시키기도 포함되어 있던 모양이다.
  
  나는 캔맥주를 홀짝이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생기 넘치는 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문득 '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조금 더 확장된 개념으로 말하자면 오늘날의 20대의 우리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슬퍼졌던 것 같다.
  
  슬픈 감정이 밀물처럼 밀고 들어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입사 1년 차의 대기업 신입사원이어서 일 수도 있고, 사회가 바라는 '어른'이 되어가는 코스를 무탈하게 밟아와서 일 수도 있고, 꿈이 회사원이 아니었음에도 그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은, 이유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난생처음 회사에 정직원으로 발을 들여놓고 보니, 나는 참 골 때리는 신입사원이었다. 나의 가감 없는 솔직한 발언과 그들 기준의 '눈치 없는' 행동들을 처음엔 신선하고 재미있어했고, 점차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치껏>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는 내가 보고 느낀 대로 말하고 표현할 수 없어졌다. 그렇게 내 개성을 고집하다가는 이력서 허위사실 기재로 입사 취소 통보를 받을 것만 같았다.
  
  네가 먼저 그런 '척' 했잖아.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네가 먼저 우리 조직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간인 척했잖아?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데,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고, 숨 막힌다는 소리를 해?
  네가 먼저 우리 뒤주 속에 꼭 들어갈 만큼 몸집이 크지 않다고 이야기했잖아.
  조금만 견뎌. 이 뒤주 속에서 네 발로 뛰쳐나가지 않고 우리가 꺼내 줄 때까지 기다리면 퇴직하기 전까지 회사에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우리의 대화로 밤은 계속 깊어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날은 참 이상한 하루였다. 회사에서 이제 갓 22살인, 나보다 네 살 어린 여자 경리와 우연히 화장실에서 마주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불현듯 그녀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그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수더분한 미소를 짓다가 내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20대 중반과 20대 초반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 것 같냐고. 그래서 나는,
  
  <점점 더 겁쟁이가 되어가는 점>
  
  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한 겹씩 벗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매년 생일 케이크 앞에서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 따위의 것들을 입는 대신에, 용기나 대담함 따위의 것들을 한 꺼풀 벗어 촛불을 끄고 나왔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네의 젊음이라는 보물을 헐값에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몰라요."
 
 내 말에 그녀는 다시 순박한 미소로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전혀 우습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이상하게도 점점 벗겨지고 있지만 살갗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오히려 모든 것에 무뎌지고 있음을 느낀다. 예를 들자면, 이 숨 막히는 7080식 문화의 굴레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오히려 5060 군부 독재 시절로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회사의 분위기라든지, 대기업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차별들 같은 것들에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벌거숭이산이 되는 것. 그래서 아무것도 느끼지도, 품지도 못하는 것. 그렇기에 아무것도 새롭게 자신 속에 잉태하지 못하는 것.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살아있지 못 한 고목나무가 되어가는 것. 그래서, 스스로의 몸에 봄을 잉태하지 못하고 꽃을 틔우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잘려나갈 때까지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
  
  잠시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수화기 너머로 네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오늘'은 'present'잖아. 힘내.
  
  그제야 문득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 단어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언제부턴가 하루가 기대되는 것이 아닌 견디고 버텨야 하는 것들로 변해버렸을까.
  그리고,
  나는 문득 멈추어 본다.
  몇 년 전, 10대 시절의 내가 노트에 적었던 문구가 불쑥 튀어 올랐다.
  
   Do not be a springbok.
  
  그렇게 공책에 써넣었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알고 있다.
  그 다짐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너와 나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그렇게 스프링복이 되어 아무 의식도 없이 그저 남들이 뛰는 대로 무리에 섞여 날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 발치를 내려다보니, 발굽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다. 게다가 먼지에 흙먼지 투성이다.
 

 


  지금, 우리, 서로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친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이 찰나의 순간적 공감을 잊어버린 채 다시 방향도 목적성도 없는 이 지난한 뜀박질에 금세 골몰하게 될 것이다.
  
  찰나의 마주침이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야생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이 뛰어야 한다고 하기에 서로 눈치를 보며 풀 쩍 풀 쩍 뜀박질을 하고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코끼리이자 스프링복이라고.
  
  자, 이렇게 뛰어봐.


  그럼 죽지 않을 만큼의 보상이 주어져.


  그 끝이 어디인지는 별로 입 밖으로 내고 싶진 않겠지만, 너도 잘 알다시피 자연으로의 '방생'이야.


  그때 즈음이면 그저 풀 쩍 풀 쩍 뒤는 것 밖에 모르는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대다가 문득 그 과거의 그 순간을 잠깐 다시 회상하게 될지도 몰라. 우리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던 찰나의 순간을 말이야.


 그때, 우리


 이 바보 같은 뒤주 속에서,


 스프링복 무리에서


 도망쳐야 했다고.


  밖은 위험하겠지만, 우거진 수풀과 나무숲 사이에서 어떤 것들이 튀어나올지 몰라 두렵겠지만,


  적어도 살아있다가 죽을 수 있는 그 '야생'의 상태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고.
  
  우리, 그때
  같이 도망쳤어야 했다고.
  그렇게 말이야.
  



  민감하게 육감을 곤두세우며 경계해야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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