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은 단정하고 아늑했다.
무심해서 마음에 드는 데스크 직원에게 이름을 말하고 상담실로 들어가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의사 선생님이 손깍지를 끼고 앉아서 나를 맞이했다.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시선은 내 눈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시종일관 끄덕이면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었다.
일단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좋았다. 무슨 이야기든지 해도 된다는 것도 당연히 좋았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바쁘게 머릿속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소문이 나면 어쩌지, 괜히 내가 힘든 이야기를 해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면 어쩌지, 나를 나약하고 한심한 어리광쟁이로 생각하면 어쩌지, 이런 필터를 거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상담실 의자 위다. 한 시간 동안 상대는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딴지 걸거나 충고하거나 비웃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사람이, 어른이! 배울만큼 배운 지적인 의사 선생님이! 이게 내 일상을 통틀어 얼마나 예외적이고 환상적인 일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바로 이걸 하려고 왕복 두 시간 지하철을 타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의자에 앉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더욱 가벼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들이 마음에 쌓이면서 하기 시작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일어나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 글이라 하면 마음에서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손가락으로 연결되어 나오는, 거의 배설물에 가까운 것들이라 고상하게 글을 쓴다고 표현하기엔 부끄러운 것들이다. 왜 그런 일을 하느냐? 하면,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공간에서 정신이 맑은 상태로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것과 비슷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마치 안개와 같았다. 그는 거기에 있지만 동시에 거기에 없는 사람으로, 공간 안에는 오로지 나와 내 이야기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거기에 있고 퍼질러지는 내 서사 속에 조심스레 던져주는 말들이 귀했다. 그 말들을 이어 구명보트처럼 타고 안갯속을 빠져나와 내가 선 풍경을 제대로 보는 것, 그런 게 상담의 효용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상담실의 책상 위에는 언제든 꺼내어 눈물을 닦고 코를 풀 수 있는 다정한 각티슈통이 있고, 그 옆에는 손가락만 한 양모 인형들이 오글오글 담긴 바구니가 있었다.
몇 번째 시간이었던가, 독백에 가까운 속풀이를 실컷 하고 난 뒤에 선생님은 양모 인형 바구니를 내밀었다.
"이 중에 남편을 닮은 인형 하나와, 본인을 닮은 인형 하나씩을 골라주세요. 그리고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 인형이 진짜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해 보세요."
인형에게 말을 하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회색과 남색의 투톤으로 이루어진 그 인형을 바라보자마자, 나는 그게 바로 남편이고, 이 물건이 내 이야기를 분명히 듣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눈코입도 없는 보송보송한 양모 인형에게는 그런 신묘한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을 남에게 말한 적은 있어도 당사자에게 말하자니 어색하더란 거였다.
아마 그 이유라면.. 말을 끝까지 하기 전에 반드시 남편이 말을 하고, 그러다 보면 싸움이 되고, 화가 나면 애초에 전하고 싶던 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대화의 스킬로 주어를 '너'가 아닌 '나'에 두고 말하라는 조언은 책에서 많이 읽었지만 실제로 그걸 하기는 참 어려웠다. 대화조차 피곤하던 시절, 참다 참다 터지는 게 말이었는데, 너에 대한 원망이나 비난을 빼고 나의 마음만을 이야기하기란...
"... 나는... 당신한테 충분히 인정받고 보답받지 못한다고 느껴. 나는 당신에게 가사 도우미 이상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느껴. 나는 당신에게 질투심과 자격지심을 느껴... 나는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
선생님은 이번에는 남편 인형을 들고 남편이 되어, 아내에게 대답을 해보라고 했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가 정말 할 법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이느라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아니면 그가 나에게 했어야 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가 속으로 했을 이야기인가? 또는 결코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올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일까? 당신에겐 무슨 놈의 이야기가 이리 많은가. 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나는.. 당신에게 충분히 표현을 잘하지 못했어. 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당신을 대했어. 감정을 공감하고 싶었지만 잘 안됐어.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야. 당신은 나에게 감정이 없고 차갑다고 하지만 살면서 이런저런 감정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나는 무너져버렸을 거야......"
그러자 가장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입에서 나올 때엔 변명이었던 이야기가 내 입에서 나오니 연민이 되는 것이었다. 남편의 입이 되어 말을 하자 남편의 외로움과 무력감이 갑작스럽게 내 마음에 훅 와닿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늘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그때만큼은 남편을 이해한 기분이 들었다. 외로움과 무력감에 대해서라면 나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나는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리가 대화라고 나누었던 것들을.. 10년을 살면서 나는 그에게 무엇을 물었어야 했을까? 내가 듣고 싶은 말과 그가 할 수 있는 말의 간극은 정말 그렇게 큰 것이었을까? 오랫동안 나는 그가 한 말과 하지 않은 말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헤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내 발치의 휴지통에 산처럼 쌓인 휴지뭉치 속에는 눈물과 콧물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남편에게 품었던 너무 높은 기대와 바람들도 섞여 있었다. 그 상담실의 의자 위에서, 수도 없이 코를 풀어내면서 나는 드디어, 그도 나처럼 부족하고 외로운 사람일 뿐 내 감정의 해결사가 아니라는 이해를 얻은 것이다. 이게 포기인지 달관인지 내려놓음인지 몰라도, 그게 무엇이든 마음이 홀가분했다.
(양모 인형 놀이는 아마 상담의 한 기법인 사이코 드라마와 비슷한 것 같다. 그날 큰 감명을 받은 나는 '양모 인형 만들기'를 유튜브에서 검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면 곧 그걸 저주인형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예감이 들어서 보류해두었다.)
심리적인 엉킴을 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눈에 보이는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즉 눈에 띄게 얽히고설켜 생채기를 내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 과정에 상담이 꼭 필요한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 줄 것이다. 누군가의 노련함과 지혜가 도와준다면 그 과정이 덜 지리멸렬할 것이라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치워내고 관계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정리하고 났더니 한 단계 허들을 넘은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눈에 보이지 않아 상대도 형태도 없는.. 진짜 문제를 마주할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