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의 조기졸업자
당연하지만 상담을 받는다는 건 만병통치약을 들이켜는게 아니었다.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는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와 정확히 같은 맥락 같다.
이제 전문가를 만났으니 뭔가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시작하지만
자신을 변화시킨다거나 문제를 제거한다거나, 모든 것은 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나요?
나는 평화에 관심이 많았다. 자존감은 바닥이고 넘쳐나는 감정은 버겁고 일상은 지칠 때, 마음이야 다 때려쳐! 상을 엎고 나가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알아서 그랬다. 그래서 그저 모든 상황에도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을 뿐이었다.
많은 철학자들이 또 작가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상황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태도라고..
나도 태도를 가지고 싶었다. 이리저리 동요하고 널뛰는 감정이 고달프고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읽고 명상을 해도 평온함은 몸에 베이질 않았다. 종교나 일이나 예술에 의존하려고 하자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어느 날엔 다짜고짜 상담 선생님에게 묻게 된 것이다. 그의 책을 읽었고 속으로 흠모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이라서, 오랫동안 많은 환자들과 그 예후를 봐왔을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평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뭄이 오래갈 때 어리석은 농부는 기우제를 지내고 굿을 합니다."
그럼 현명한 농부는 뭘 해야 하나요? 물으니 '기다린다'라고 했다.
"안 오는 비를 억지로 오게 하려 하고, 생뚱맞은 곳에 힘을 쓰지 않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그저 기다린다는 것은 응시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마음을 가꾸는 농부입니다. 우울한 마음 즐거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모든 마음은 하늘의 구름과 같아요. 구름은 다 지나가는 거고요. 지금 내가 우울하구나, 지금 내가 원망스럽구나, 이런 나의 구름들을 평가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응시라고 합니다."
듣자마자 그대로 다 외워버렸을 만큼 구구절절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약간 실망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바라보고 돌보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라... 그건 마음 챙김 명상 아닌가? 명상 소용없던데.. 아무튼 기대보단 특별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알아서 추슬러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라는 게 다야? 또? 어쩐지 분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또 묻고 말았다.
그건 너무.... 소극적인 것 같은데요. 선생님 그다음 단계도 혹시 아시나요?
"그다음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음..... 죄송한데 그다음은요?
"마지막 단계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징을 생각하기. 같은 경험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 이건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보통 마지막 시간에 당부하는 말인데, 제가 지금 미호 씨한테 말려서 말이 튀어나왔어요."
짐작하겠지만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선생님을 푸시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저히 바로 적용, 은커녕 이해하기에도 어려운 말들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알겠는 건 '나에게 친절'하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의 주어는 나라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여태 함께 애써주었으니 할 만큼 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가 동의했고, 나는 상담을 종료하기로 했다.
속내를 털어놓을 시간과 공간, 그리고 들어줄 사람까지 삼위일체를 이루는 위안이 있는 상담실을 떠나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시간에 들을 말을 들었으니 조기졸업하는 셈 치기로 했다.
상담이 끝난 후, 딱히 다른 할 것이 없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그 실천이라는 것을 했다.
자기 응시와 자기 자비(자신에게 친절하기)는 이전에도 의식적으로 해오던 일이었다. 그것은 의외로 나를 막 아끼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것의 반대편의 일이다. 오히려 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조금 무심한 마음되기와 비슷하다.
그건 그랬고, 내가 여기에 적어두고 싶은 건 새롭게 배운 3단계 실천법.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건 나에겐 다름아닌,,나의 경험을 일기장이 아닌 브런치에 적기 시작한 일이었다.
이게 과연 평화와 관련이 있을까? 시작은 미심쩍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선생님이 한 말들이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경험을 밟고 시간차를 두고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나의 경험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쓰는 것, 보편적인 마음속에 들어서는 것, 공감한다는 댓글을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그녀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
이는 고립되고 언 마음을 녹여주는 효력이 있었다. 그리고 콩나물 잔뿌리처럼 약하고 어설프지만 그건 확실히 마음의 평화였다. 간혹 해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불편하고 외롭고 억울한 나에 대해 적어놓고 나면 꼭 유체이탈을 한 느낌이었다. 아니, 껍데기를 탈피한 애벌레 같달까?옷을 벗어버린 부끄러움만 견뎌낸다면, 벗어놓은 옷 같은 고민은 더 선명하고 덜 무거웠고... 해치울만한 것으로 보이는 법이었다.
마음의 평화는 좋은 것이지만 누리다 보면 부작용이 있었다. 그 상황에 안주하고 싶어지는 거였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질척거리는 감정에 거리두기가 되고, 나에게 친절해지니 일상이 좀 편해지고, 남편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니, 그래 그럭저럭 다시 이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싶어진 것이다. 심지어 사뭇 여유로운 태도에 스스로 우쭐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과격한 쌈닭이 되고 싶지 않아서 마음의 평화를 갈구했지만 내가 평화롭게 모이만 쪼는 닭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게 무언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가 좀 더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업주부로서 겪은 괴로움은 단지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평화롭다고 해도 여전히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인 룰, 인식, 태도들이 존재했다. 내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 그것들로 인해 끙끙 앓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여기에서 끝내지 않기 위해 계속 써 보기로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내는 걸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써야 할까? 써야 한다. 불편하다는 건 쓸 가치가 있다는 거니까.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하여간 나는 잘 아는 이야기... 이미 세상에 다 나온 이야기이지만 내 머릿수를 하나 보태면 좋겠다 싶다. 내가 비는 평화는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