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내 사랑이여.
말이 시들고 사물이 살아나는 밤이여.
낮의 파괴적인 분해가 끝나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이 모두 완전한 전체로 돌아가는 밤이여.
인간이 자아의 파편들을 다시 조립하고
고요한 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밤이여.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
밤이 어떤 거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두런두런 낮은 대화, 반짝이는 조명, 불빛, 어둠을 머금은 사물들, 밤공기….
한 때는 나도 해가 지면 눈이 빛나는 야행성 인간이었는데, 지난 10년간 밤이면 나는 성실하게도 늘 집안에, 거의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어느새 30대를 통으로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래서인지 밤이란 늘 지나버린 청춘처럼 아쉬운 무엇인 듯하다.
살림과 육아란 건 낮이 끝없이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을 결혼 전에는 몰랐다. 아이를 얻고 밤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왜 이 중요한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예전에 알던 낮은 밤을 위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어둑해지면 비로소 나만의 시간을 허락받는 것 같았다.
낮은 의무와 역할의 시간이고 밤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퇴근길에 화장을 고치고 구두를 갈아 신고 나서면 철없게 신이 났다. 밤은 친구들을 만나고 내 취향을 만들거나 즐기는 시간. 온전히 충전하거나 소진하는 내 시간. 온갖 새로운 다짐과 계획을 하는 시간. 또 밤은 연극 무대 위에 핀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집중의 시간이다. 생각은 날개를 달고, 다음날 아침에 부끄러워 찢어 버릴지언정 영감이 몽실몽실 솟는 것도 바로 밤이다.
그래!
나도 한때는 생텍쥐베리만큼이나 밤을 사랑했었다!
이건 밤의 미련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매일 아이들을 재우며 속절없이 누워 있어야 하는 한두 시간이 얼마나 아깝고 천불이 나던지.. 귀엽게 재잘대는 아이들에게 '입 다물고 자라'고 엄포를 놓던 무섭고 못난 엄마는 사실 나가고 싶은 엄마였다. 뾰족구두 신고 나가 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혼자 밤에 깨어만 있고 싶었다.
마음은 그렇지만 실상은 그러다 까무룩 함께 잠들기 일쑤였다. 자정 넘어 부스스 깨어나 남들이 보는 드라마, 남들이 올린 사진을 봐도 딱히 아주 즐겁지는 않았는데도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그저 사라진 밤이 아쉬워서...
나에게는 밤이 없다는 것을 거부감 없이 인정한 건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뒤였다. 유치원까지만 해도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이 했는데, 학부모가 되는 순간 나는 공권력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무사히 보낸다'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려면 아침에 기를 모아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일찍 자야 했다. 엄마의 무모한 밤샘과 아이의 땡땡이가 어우러지던 한 시절의 종말...
모두가 이른 아침에 등교하는 이 시스템은 산업화 시절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던데. 시대가 바뀌었으면 학교도 오전 오후반 나누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가끔은 한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무사히 8시 40분까지 등교하기 위해 나는 아이들을 최소 7시 반부터는 깨운다. 예외 없이.
이러다 지각한다, 일어나, 밥 먹어, 세수하고, 옷 입어야지.. 얼르고 달래고 등 떠밀고 잔소리하는 게 아침의 내 일이다. 아, 전생의 원수인가, 엄마는 왜 날 아침마다 이렇게 괴롭히는 건가, 어릴 때 그렇게 원망스럽던 엄마 역할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게 가끔 신기하고 어이가 없다. 니들이나 나나 밤잠 없고 아침잠 많은 건 똑같은데 참 그게 그렇다.
아침에 비몽사몽 할 수 있는 자유는, 돌보는 자인가 돌봄 받는 자인가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6시 반에 일어나고 11시에 잠드는 미래의 내가 있다는 것을 10년 전 과거의 내가 듣는다면.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오랜 기간 밤을 잃었지만 반대로 얻은 것도 있다. 오전 시간이라는 새로운 시간 개념이 생긴 것이다. 보통 어영부영이나 비몽사몽으로 보내던 게 오전 시간이었는데 지금의 오전 시간은 황금같이 귀한 시간이다. 나에게 밤의 낭만은 없지만 맑은 오전의 상쾌함은 있다. 아이들을 보내고 다른 사람 안 챙기고 혼자 차려 먹는 밥! 간소한 설거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 더없이 상쾌한 일상이다.
그런데, 오전이 아무리 상쾌해도 “오늘은 약속이 있어”라고 간단히 밤 외출을 통보하는 남편을 보면 왜 그렇게 부아가 치미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렇다. 밤에 대한 미련은 버렸어도 이 질투는 버려지지 않는다.
나는 궁금하다. 나도 친구가 있었다는 걸 그이도 알까? “오늘 스트레스받았는데 만나서 수다나 떨까? 맛있는 저녁에 술 한잔 어때?”할 수 있는 친구가 나도 있었다. 예전에는....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건 “나 오늘 약속 있어”라고 말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의 밤 외출에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따라온다.
“밥은?”
“애들은?"
“엄마는?”
그 많은 못돼 먹은 질문들을 떨치고 일어나 나가도 이제는 만날 사람이 없다. 친구들도 내 처지와 비슷해서 주렁주렁 딸려 나올 질문들이 있기 때문일 테다. 에잇...
그러니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심정으로 나는 밤 외출을 포기하는 것이다. 밤바람이 시원하건 말건 밤공기가 청순하건 말건 밤에 나는 우직하게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드디어 밤 산책을 했다.
밤 9시 언저리에 친구랑 공원 한 바퀴…! 역시 남편 찬스는 아니고, 일박으로 친정 집에 갔다가 누리는 엄마 찬스 호사였다.
나는 걸으면서 “너무 좋다’라는 말을 열 번은 한 것 같다. 길 따라 빠르게 걷는 사람들, 배드민턴 치는 학생들 모든 게 다 생동감 넘치게 보였다. 이렇게 어두운 길을 두런두런 얘기하며 걷는다는 것은 역시 흥분되는 일이었다. 번화가의 휘황한 밤거리가 아니어도, 어둑한 공원 산책길이어도 환상적이네. 매일 이렇게 걷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매일 애들이랑 나와서 걸어~”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건 이런 거랑은 완전히 다른 얘기야.” 비혼인 친구 앞에서 나는 정색을 하고 말았다.
돌보는 자도 돌봄 받는 자도 아닌 그냥 나로서 팔다리를 앞뒤로 마구 휘저으면서 빠르게 걷는 행복. 빠르게 걷는 무리 속에 한 명이 되는 기쁨. 이건 아무래도 밤을 빼앗겨본 자만이 누리는 달콤함일 것이다. 이 산책은 그냥 산책이 아니야. 자유의 커다란 한 걸음이지. 끝이 정해진 일탈의 짜릿함이지. 앞으로 줄줄이 송년회 일정을 통보할 남편은 아마 절대 이 맛을 모를 거야. 암. 알리 없지. 제발 몰랐으면 해....
그렇게 질투를 삭히면서 스스로를 위안해 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