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남 편 그녀에게

by 김혜원

남편은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고 한다.

결혼생활의 난해함 중 하나일 것이다. 이성적인(다른 말로는 인정머리 없는) 나의 남편도 7.9할 정도의 확률로 남의 편을 드는, 지극히 평범한 대한의 남편이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딱히 힘들지는 않다. 남의 편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길러온 면역력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편을 안 드는 것보다 나쁜 일이 하나 있다면, 남의 편이 남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친정 엄마가 집에 자주 오시다 보니, 아무래도 속 얘기(다른 말로는 남 욕)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가사일과 육아에는 10년째 서툰 남편에 대한 불만 같은 것. 그러면 내 편이 아닌 그녀는 거의 9.9할 정도로 서둘러 방어벽을 친다.


"00은 바쁘잖아. 집안일 시키지 마라."


"아이고 똥기저귀 갈 줄 모르면 어떠냐, 대신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오잖아. 그거면 최고 남편이다. 애들 보는 건 안사람인 네가 당연히 해야지"


말하는 것만 보면 우리 엄마인가 남편 엄마인가 헷갈린다. 그 말에 따르면 애초에 바라는 내가 잘못이니 서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당신은 대체 누구 편인 거요? 따져 묻고 싶을 때가 많지만 어쨌거나 엄마는 집안에 분란이 없이 그저 평화롭기를 바라는 뼛속 깊은 평화주의자였다.

남자는 바깥일 잘하면 그만이고 여자는 살림 잘하고 아이 잘 키우면 그게 환상적인 가정의 평화라고 평생을 생각하고 살아오신 분이 바로 엄마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가정을 유지했고, 아이들을 길러냈고, 그 결과 지금은 남편과 오붓하게 깨 볶으며 살고 계시니 그 지론이 그녀에게 옳았음을 삶으로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 비법을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른 가정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라며 보고 들은 것을 '보통'의 기준으로 삼았다. 아마 가정교육이란 게 이런 건가 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좋은 부부 사이를 지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남편을 집안일과 육아로 귀찮게 하지 않고, 신경 쓰게 하지 않고, 그냥 내가 다 하면 된다.


물론 그런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남자가 심각하게 가부장적이라거나, 집안에서의 왕 노릇에 중독이 된다거나, 최악의 경우 외도,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 폭력 뭐 이런 변수가 생기면 금세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게 아름다운 가정이기 때문이다.


천만 다행히도 내 남편은 (아마도?) 평균을 훨씬 웃도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진 남자였다. 나는 은연중에 내가 고른 남자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엄마가 그것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당신이 들은 개차반들과 남편을 상세히 비교하며 나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남편의 장점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리고 “남편한테 잘해줘라”는 결론으로 말을 맺을 때면 약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녀에게 숨겨놓은 아들이 있다면 아마 내 남편일지도...


얼굴이 퉁퉁 부은 날 나를 만나서, 전날 다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괜히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움 걸고 그러지 마라. 네가 애쓴 만큼 나중에 남편은 고마워한다.”

하! 나는 기가 막힌다. 추측하건대 그게 언제냐면 남자들이 나이를 먹어 여성호르몬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면 그렇다는 거다. 말하자면 호랑이가 이빨이 빠지고, 여성성과 남성성이 뒤집어지는 때에 말이다.


"뭔 소리야! 다 늙어서 좋으려고 참고 살라고?" 결국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엄마는 동공이 흔들린다.

"너는 안 참고 살잖아!" 엄마가 말한다.


"참아! 나도 참고 있어! 참는 게 이 정도야!!"


말문이 막히는지 뒷말을 않는 그녀의 얼굴에 여러 가지 표정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언뜻 들으면 콧방귀가 나오는 올드한 말 같지만 사실 이런 게 삶의 지혜라고 여기저기에서 말하는 게 사실이다. 상대를 세워주면 내가 선다. 덕을 보려 하지 말고 덕을 주려고 해라. 이런 고급스러운 말을 쓰진 않지만 친정엄마가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지혜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와는 달랐다. 무엇이냐면 사실은 나 역시 그렇게 스스로 세뇌하고 살았지만 나는 희생하고 감수하는 것에 인이 박힌 세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살아보니 어른들 말은 틀린 적이 없고, 남편을 이렇게 길들이면 그가 참 좋아하고 가정사 원만해 보이는구나,를 인정하면서도 내내 속이 상했다. 속상한 게 싫어서 나를 스스로 낮추게 되었다.


상식적으로도, 80년대에 태어난 여자가 50년대에 태어난 여자와 같은 기준을 가진다면 그건 분명히 퇴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구시대적 방식이 바로 지난 10년간 우리 부부 금슬의 비밀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우리 부부는 많이 다툴 것임을 알고 있었고, 예상대로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고 있었다.


삶이 연극 무대에서의 연기 같은 거라면,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나에겐 여러 가지 모습이 있었다. 순종적인 나, 드센 나, 친절한 나, 성질 더러운 나, 착한 나, 못된 나…

그리고 남들이, 또 나 자신이 느끼는 내 가정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화목하고 행복한 지금의 가정의 아웃라인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매끈하고 보기 좋은 그것들이 정말 좋으면서도 못 견디게 싫었다. 고된 육아노동과 가사로부터 남편을 싸고도는 내가 애틋하면서도 한심했다. 그래서 어제는 너무너무 잘해주고 오늘은 너무너무 못되게 구는 식으로 오락가락했다. 남편은 그런 내가 언제 터질지 몰라 무섭다며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건 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항상 내가 당신처럼 남편을 섬기는 아내가 되기를 바랐다. 남편이 주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불평하기보다는 긍정으로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를.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뒤에서 세심하게 챙기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당신의 사위가 당신의 남편보다 훨씬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경제력이나 온순한 성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평생 해온 방식을 대입하면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니 아빠가 유서방만큼만 했으면 나는 업고 다녔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나라면 애초에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텐데! 아빠를 고른 건 엄마였다. 물론 엄마도 제비뽑기의 결과를 결혼해서 알았겠지만, 여튼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다혈질인 아빠의 성질을 다 받아준 것도, 40년 동안 길들여서 조련한 것도 다 엄마였다. 지금의 그 집안은 확실히 판세가 뒤집혔다. 그건 확실히 인간승리에 가까운 대단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길고 고생스러운 일은 전혀 할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누가 뭐래도 아빠 쪽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나의 타고난 성품은 누굴 조련할 게 아니라 조련받아야 할 쪽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감정이 안정적이고 논리적이며 약간은 냉정한 남편에게 끌려 결혼했다는 것을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품은 사위에 대한 큰 호감은 일정 부분 비슷한 성향을 가진 타인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이고, 그녀와 내가 처한 상황은 전혀 완전히 정 반대의 것이라는 것을. 내가 가정교육을 잘못 받아서 10년 동안 엄마 흉내를 내려다가 실패하고 결국 홧병과 우울이 생겼다는 것을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딸로서 고민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점은, 그녀는 내가 당신과 다르게 사는 것에서 약간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남편한테 관심이 없냐, 그렇게 하다가 남편이 사근사근한 여직원들 보면 얼마나 비교가 되겠냐는 망언을 했다가는, 또 하긴 요즘 세상엔 너처럼 쿨한 아내가 좋을 수도 있겠다면서 은근히 나를 인정(?)할 때도 있었다. 정말이지 나만큼이나 오락가락했다.

또한 일 같은 거 하지 말고 내조나 잘하는 게 남는 거라고 하면서도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딸네 집에 매주 와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내가 이제 현모양처는 때려치울 거고 전업주부는 졸업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그렇게나 말세라는 듯이 혀를 차면서도 결국 그걸 제일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게 바로 그녀인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결국 이해하게 되는 것은 형태는 달라도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라는 사실이었다.


딸이 행복하기를. 자신이 딸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기를.

하지만 사실은 그녀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사는 건지. 어떤 부부가 행복한 부부인 것인지.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결혼 생활의 조언은 최상은 아니어도 최악을 방지하려는 방편이었다. '이렇게 안 하면 나쁜 일이 생겨'라는 불안에 기초한 가장 방어적인 자세이다. 그건 엄마들이 자녀의 일에 대해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끊임없이 건네는 나와 맞지 않는 조언들, 핀잔들이 피곤하면서도 아주 싫지가 않다. 예전에는 그게 참 싫었는데 지금은 괜찮다.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서툴고 부족한 엄마가 되어보니까 그랬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나를 걱정하고 아끼는 것라서, 오히려 그녀가 변한다면 엄마가 어디가 아픈가 하고 걱정하게 될 것만 같다.


엄마는 나에게 부부 생활의 지혜를 가르치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녀로부터 야금야금 배우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절대 바닥까지는 슬퍼지지 않는 마음. 힘든 것은 가볍게 말하고 결국은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용기.


그녀가 그것에 대해 말할 때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소와는 다르게 확신에 차서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결코 강조하지 않았던 부분을 특히 좋아하여 닮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엄마가 내내 그런 사람이기에 안심이 되었다. 내 편을 안 들어도 지금 유일하게 내 편인 게 그녀임을 잘 알고 있어서 그 손을 꼭 잡고 있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