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나의 이름은....

첫 반모임의 날

by 김혜원

그날은 학부모 모임의 날이었다.

내 뱃속에 있던 작은 점이 나를 가르고 나와서 걸어 다니고 말을 하더니 이젠 공교육의 시스템 속으로 들어간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었다.


1학년의 첫 반모임. 낯가림이 있는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 여럿과 모여 이야기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아무렴 그들도 나처럼 얼떨결에 학부모가 된 사람들이겠지, 그렇겠지, 애써 생각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동네 카페의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자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더 어색한 미소만 겨우 짓고 있었다. 어쩌자고 나는 그동안 친구 한 명 못 사귀고 여기 이렇게 혼자 뻘쭘하게 앉아있나 싶었다. 그런데 둘러보니까 나와 사정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좀 있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보니 워킹맘들이었다. 동네 친구 없는 걸로만 보면 나도 워킹맘 클래스였다.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첫 반모임은 엄마의 미모와 재력을 과시하는 곳이던데 의외로 그 자리의 엄마들은 모두 수수한 평상복 차림이었다. 아마 그런 얘기는 루머인 것 같았다. 아니면 강남 어디 다른 동네 룰이거나....


반대표 엄마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한 명 씩 일어나서 이름을 말하는 거였다. 정해진 건 없었지만 듣다 보니 가장 무난한 멘트는 이거였다.

“안녕하세요, 00번 000 엄마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진짜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소개하고 불리는 건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아이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인성과 성적을 관리하고 단톡방에서는 때로 아이의 대변인이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를 제대로 수행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거기에 앉아있다 보니 훈훈한 카페의 공기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눈이 자꾸 감겼다. 아들 녀석은 긴강하면 하품을 하는데 이게 나로부터 전해진 유전이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 미소를 띠고 긍정과 칭찬의 말만을 하다 보니 내가 마치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 말하자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생 때였다. 어째선지 내 주변에는 영화 연출 전공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비루한 오늘을 살면서도 위대한 무언가를 꿈꾸는 애잔한 친구들이었다. 영화를 배우기엔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니는 애들조차 어딘가 그랬다.


그들은 다들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게 예산도 빠듯하고 배우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적당히 예쁘장한 친구를 꼬드겨서 밥 한 번 사주고 배우 삼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랬다.


한 편을 찍고 소개받아 또 한 편을 찍어 총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사실은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대본을 잘 보지도 않았고, 나온 작품을 테이프로 받긴 받았는데 영상을 굳이 틀어본 적도 없었다.

그냥 적당한 옷을 입고 나가서 지금은 이런 씬이고, 이런 연기를 해달라고 하면 대충 흉내를 냈을 뿐이다.


이렇게 써놓으니 대단히 성의가 없어 보이지만 애초에 내가 받은 배역을 분석해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연출하는 이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어떤 식으로든 적합해서 내게 온 역할일 거였다. 전문 배우도 배우 지망생도 아닌 내게. 개런티도 없이 얼굴을 팔라고 부탁한 그들이 원하는 건 그냥 하던 대로 하라는 거였고, 나는 정말 하던 대로 했다.


내가 찍은 씬들도 흐릿한데 그중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 가지는 겨울의 추운 놀이터에서 어떤 여자애랑 입을 맞추는 장면이었다.

스토리상 그 키스는 쌍방 합의가 아니고,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좋아해서 갑자기 입술을 들이미는 거였다. 나는 그때 아마도 짧은 단발머리에, 새파란 코트를 입고, 샛노란 머플러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 머플러는 감독이 둘러주었다.


여자 아이와 나는 나란히 그네에 앉아 있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나는 그때 수줍고도 강렬한 욕망을 품고, 서툰 몸짓으로 다가가야 했다. 상대는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친구 역할로 부드럽게 나의 몸을 자신에게서 떼어낼 것이었다. 아마 그 러브 스토리는 비극으로 끝날 것 같았다. 이 장면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여자 입술은 이렇게 부드럽구나, 하고 깜짝 놀랐기 때문이었다. 너무 추운 그곳에서 너무 부드러웠던 입술...


그러더니 그 장면과 그 장면의 감정만이 오래도록 마치 진짜 나의 추억인 것처럼 마음에 새겨져 버렸다.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고 서툴고 조심스럽고 아파서 잠을 못 이루고 웃음이 새어 나오고 결국 울면서 끝난 한 가지 사랑의 에피소드로. 그즈음 내가 했던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에 나는 그 놀이터를 떠올렸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던 그 감촉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을.


진짜 배우들은 종종 역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한다던데 혹시 이런 느낌일까? 마음이나 기억은 이게 연기인지 실제 상황인지 헷갈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배우들은 어쩌면 너무 오래 너무 여러 번 살아버린 느낌이겠다.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그 사람들도 참 힘들겠다.


내 앞에서 식어가는 라테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훅 건너뛰어 나는 여기에 앉아있다. 문득 궁금했다. 내가 연기하던 이의 이름은 뭐였을까. 알아볼 걸 그랬다. 기억해 둘 걸 그랬다. 겨울 놀이터에서 친구에게 입을 맞추고 또 사랑을 잃었던 그 여자아이도 커서 누구 엄마가 되었을까?





“안녕하세요, 0번 000 엄마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일 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새로운 단편영화를 찍는 기분이 들었다. 새 영화 속의 배역은 더없이 단순하다. 착하고 건강하고 예의 바른 8살 아들의 엄마다운 엄마 된다. 대사는: 우리 아이는 착하고 건강하고 예의 바른 아이라서 당신의 자녀와도 잘 어울릴 것이라는 것을 어필하면 된다. 개인적인 기쁨이나 슬픔은 아이와 관련된 형태로 제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연기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어도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감상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내 아이 역시 이해하기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아이였다. 나는 한 팔로 내 아이를 안고 다른 한 팔로는 여전히 아이 같은 나도 안아야 해서 쓸 팔이 남아나지 않았다. 거기에 집에는 네 살배기 아기 한 명이 더 있었다. 내 책임의 아이가 총 셋이었다. 같은 반이 된 다른 아이에 대한 관심, 기억, 학교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관여, 이런 것들은 어쩐지 내 분에 넘치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덜컥 학부모가 되었으니 어쩌나.


엄마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학교와 담임 선생님에 대한, 학원에 대한 정보만으로도 두어 시간은 거뜬해 보였다. 뛰쳐나가지 않고 간신히 추임새만 넣는 내가 궁금했는지 누군가가 나를 지목해서 질문을 했다.

"00 이는 어때요? 공부 알아서 잘하나요?"


"... 아... 저는 00이 공부 걱정은 별로 안 하는데 다른 게 걱정이 많아서요."


1초 정도 분위기가 싸해졌다.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때 맞는 대사는 아마도 "아유 아니죠~저도 잔소리를 얼마나 하는데요~ 스스로 하는 애들이 어디 있나요~!"일 것이었다.


하지만 직전에 내가 하던 생각은 우리 아이는 등교를 거부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입을 닫았으며 최근 놀이치료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질문을 받아 생각이 입으로 나왔지만, 당연히 그날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모든 걱정이 "애들이 다 그렇죠~!"로 뭉개지는 곳이기 때문에 대충 적당한 대답을 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래도 공부 말고 하는 다른 걱정이 무엇인지는 더 말하지 않는 게 을 것 같았다.


어색하게 말이 끊어진 나를 지나 대화는 금방 다른 사람에게 토스되었고 나는 다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실수를 덮기 위해 좀 더 쾌활하게 굴고 많이 웃었다. 그랬더니 더욱 졸음이 몰려왔고, 입꼬리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나는 정말이지 연기에 소질이 없었다. 연기자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배역을 고를 수 있다면 '반모임에 나가지 않는 누구 엄마'를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누구 엄마로서 쭈욱 살아야 할 일이었다. 그게 바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 엄마 외에는 아무도 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숙제를 해냈다는 후련함과 함께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학부모란 건 역시 어려웠다. 나와 아이가 이럴게나 한 세트같은 거라면 적어도 아이에게 폐가 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던 대로 해. 대충 해. 누군가가 또 나에게 말해주면, 목도리를 칭칭 감아주면서 그렇게 말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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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연재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모아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기로 했다> 라는 제목으로, 느린서재 출판사와 함께하게 되었어요.


편집과정에서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브런치에 쓴 글 대부분이 그대로 책이 되었어요.

공감, 응원해 주시고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