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이와의 동기화를 해제합니다

by 김혜원


2019년 아이를 최고로 만들고 싶은 부모들의 욕망을 다룬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방영됐었다. 충격적인 막장 드라마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내용이 너무 현실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가진 부만 빼고.


드라마 속 부모들의 기형적인 집착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처음의 그것은 사랑이라고, 모성이라고 불리던 무엇이었을 것이다. 걸음마하는 아이가 넘어지면 같이 아프고 아이가 웃으면 함께 웃게 되는 마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아이와 한몸인 것처럼 느끼고 아이와 같은 감정으로 동기화되었을 것이다.


동기화된 사랑은 언제부터 부패하는 걸까. 언제부터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앞질러 보고, 지름길을 안내할 수 있다는 착각이 시작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아이의 발달에 '성적'이 매겨지기 시작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한다.

아이가 일어나 앉고 말하고 키가 크는 건 누구도 엄마가 잘 키워서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적을 잘 받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건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달려있다고 보는 시선들이 만연해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에서는 그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드라마 속의 가족과 이웃들은 아이가 잘되면 엄마의 희생을 추켜세우고 잘못되면 엄마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과정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중요했다. 이건 안타깝지만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그들은 비정한 마음으로 더욱 결과를 만드는 데에 목숨 거는 게 아닐까.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그 병적인 절박함을 드라마에서는 다뤘던 것 같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아니 필연적으로, 드라마 속 엄마들은 모두 전업주부들이었다. 그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설정이었을까.



한때는 내가 전업주부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 교육에 대한 결정을 할 때였다. 발품 팔아서 배울 곳을 정하고 아이들을 직접 라이딩해가며 챙길 때, 내가 아이들을 위해 낼 시간이 충분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일을 했다면, 방과 후에 동선과 시간에 맞는 적당한 곳으로 뺑뺑이 돌리는 게 최선일 것이었다. 그때만큼은 내가 전업주부인 게 좋았다.

그런데 점점 아이들을 챙기는 게 나의 '역할'이자 '책임'으로 자리 잡아갈수록 이게 나를 가두는 덫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대의(?)와 목표 달성을 위해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전업주부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우면 희생에 대한 보상이 되지만, 아이가 잘 못 되면 집에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애 하나 케어를 못했다? 가 된다. 꼭 누군가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않는대도 스스로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나는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아이에게 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에게 몰입한 삶을 사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갖는 나만 유달리 예민한 사람인가 싶어서다.

만약 북유럽의 사회라면,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어 사는 엄마가 있다면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아이의 인생은 네 인생이 아니야', '아이는 알아서 살 테니 네 인생 살아'라고 말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엄마들을 노력하는 엄마, 열심히 사는 엄마로 인정해 주는 것 같다. 그런 삶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권장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줌으로 강연을 하나 들었다. 나 역시 현실을 살고 있다 보니 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이 크고, 다양한 경로로 교육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보고 있다.


강연자 B는 아이의 성공에 엄마의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원팀'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고, 엄마가 짜 놓은 계획대로 잘 움직이게끔 훈련시켜놔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했다. 그 결과물이란 국내외 명문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신뢰라고 말했지만 복종으로 들리는 건 내가 삐딱해서일까? 아니면 나보다 기가 센 고집쟁이 아들을 키우는 엄마라서 일까?


나는 기가 죽어서 하릴없이 B의 경력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 둘을 국내외 일류 대학교에 보냈다는 B는 그것을 경력으로 삼아 입시학원의 상담실장 자리에 앉아있었고, 다른 엄마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가르치고 있었다. B는 성공한 게 맞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의 성공을 설계하고, 그로 인해서 당신 또한 성공하라는 말이 나는 어딘지 공허하게 들렸다.


B는 행복할까?좋은 대학에 보내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성취감을 느끼고, 끝! 일까? 내가 B라면 그 보상은 상담 실장이 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우위에 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만 같다. 사랑에 기초한 행동이었기에 사랑의 대상에게 그 화살은 돌아 것만 같다.

속좁은 나라면 반드시 '내가 내 인생 다 바쳐서 너를 이렇게 잘 만들어놨다'라는 말을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손주에게도 하게 될 것만 같다. 아...다들 그건 정말 싫겠지...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아이를 위해 내 시간을 쓰는 것은 분명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이다. 흔히 최고의 교육이라고 말하는 유대인 교육 같은 것도 들여다보면 얼마나 치열한가.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교육의 과정이다. 하지만 아이의 성취와 엄마의 성취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고, 결국은 무 자르듯이 끊어져야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궁금하다. 본인 자신의 성취 분야가 없는 -이를테면 나같은 전업주부- 여자가 아이를 위해 바쁘게 사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가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살게끔 부추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아이의 성취가 엄마에게 보상이 되는 게 당연한 것인가? 아이가 커서 떠나버리고, 다시 나 자신으로 덩그러니 남았을 때, 그날이 왔을 때에도 과연 괜찮을 수 있을 것인가? 아이를 기르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를 통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취를 쌓아가는 일이 너무나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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