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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03. 2023

#10. 계속 헤엄쳐보겠습니다

새벽수영 10일차. 마지막 날

매달 마지막 날은 수영 대신 자유수영을 하는 날이다.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마무리 인사할 때 자유 수영 잘하는 방법을 귀띔해 주셨다.


"혹시 여러분들 왔을 때 잘하는 분들의 텃세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1번 레인은 우리 초급반 자리라는 것만 기억하세요.
뒤에서 막 접영 하면서 사람이 오면
딱 서서 막고 당당하게 음파 음파 연습 하시면 됩니다~?"
 

수요일 새벽 알람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요즘은 생각이 많아선지 꿈자리가 어수선하다. 꿈에서 건져주는 알람 소리에 안심한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파악하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오늘은 수업이 없다. 안 가도 되는 날이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두 시간 반은 더 잘 수 있는데, 지금 꿀잠을 더 푹 자는 게 이득인 거 아닐까? 자유 수영이 진짜 실력에 큰 도움이 될까? 어차피 이제 연휴라서 일주일은 쉬는데 그냥 한번 쉬어도.... 잘 생각해 보자고.. 지금 가는 게 진짜 나은 걸까?.......  




내가 아침에 아이를 깨울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침에 일어난다는 건 그냥 몸으로 일어나는 거야. 아 이제 일어날 수 있겠다, 일어나야겠다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 버리는 거야. 몸이 먼저 움직이고 생각은 나중에 따라오는 거야."

지금 너무 어깨가 결려요, 잠깐만요, 일분만 있다가 일어날게요, 아 머리가 멍해서 좀,,,, 아이에게도 머리(생각)는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내는 데 도사다. 몸이 앞서서 행동하지 않으면 머리의 투덜거림에 지고 만다. 움직이는 건 머리가 아니라 몸. 이제 보니 이건 나에게 해줘야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해줬다. 컷. 컷. 머리의 말을 듣고 있지 마, 몸아 일어나 지금이야..... 나는 벌떡 일어나서, 이를 닦고, 문을 나선다. 새벽 5시 25분.




수영장은 정말로 한산하다. 수영 20년 차쯤 되어 보이는 무림의 고수 같은 포스의 아주머니 두 분이 느긋하게 탕 속에 앉아계셨다. 여느 때와 같은 활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수영장 안에도 사람이 거의 없다. 우와.


초급반 1번 레인은 아예 텅 비어있다. 준비운동을 하는데 한 분이 물 안으로 들어온다. 동지다. 그리고 다가와서 하시는 말 "저... 오늘 수업 없나요?"

오늘은 자유 수영이라고 말해주자 지난 시간에 안 와서 몰랐다며 망연자실한 얼굴이 된다. 이후에 남자분 두 명이 더 들어왔는데, 수업이 없다는 걸 모르고 왔는지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두 분은 두 바퀴쯤 돌고 나서는 서서 계속 수다를 떨었다는 것.


수업을 할 땐 보통 6바퀴 정도 도는 것 같다. 오늘도 그 정도 돌고 나가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안 간다. 수업 시간에는 한 바퀴 돌고 차례 기다리는 시간, 설명 듣는 데에 시간이 꽤 들었던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유 수영을 해야지 실력이 는다'라고 했나 보다. 그게 뭔지 알겠다. 킥판 잡고 가기 킥판 없이 가기 옆으로 헤엄치기 팔 돌리면서 가기,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무한 반복한다. 한 바퀴만 더 한 바퀴만 더 하다 보니 15바퀴나 돌았다. 수영 동작은 몸에 전혀 익숙하지 않아서 계속 그 감각에만 집중을 하게 되는데, 그게 정말 기분이 좋다. 다른 잡생각이 들어설 바늘구멍만큼의 틈도 없다. 물과 나. 수영과 몸뿐! 이런 게 몰입이 아닐까? 숨이 차서 죽을 것 같지만 멈추고 싶지 않은 재미에 마음껏 빠져든다. 옆으로 헤엄치기가 제일 어려웠는데 계속하다 보니 훨씬 나아지는 것 같다. 여전히 사선으로 가긴 하지만. 한참을 신나게 헤엄을 치다가 문득 팔다리가 후달리는 것을 깨닫고 아차 한다. 하다 보니 너무 오버했다....!! (그러고는 집에 가서 오전에 내리 두 시간을 잤다는 사실)   


나오면서 다음 달 수업 결제를 했다. 3개월치를 한꺼번에 결제하면 5% 할인이 된다는데, 3개월치를 하면 왠지 마음이 식을 것 같아서 1개월치만 끊는다. 딱 이렇게 한 달씩, 야금야금 수영을 계속해 볼 생각이다. 반년 일 년 이후의 마음을 자신하지 말고 딱 이만큼씩만.


지난 한 달간 경험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새벽의 풍경, 목욕탕의 위로, 선생님의 경쾌한 목소리, 함께 수업 듣는 사람들, 물속에서 느끼는 나의 팔과 다리, 돌아가는 길 젖은 머리에서 나는 수영장 냄새, 수영 이후에 따박따박 돌아오는 일상들..... 모두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뭔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는 내가 좋아진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나에겐 수영을 계속해야 할 이유들이 넘치도록 많다.  


즐거운 나의 수영,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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