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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ul 06. 2022

ㅅㅅㄷㅂ : 니은 - 녹내장

돈도 아껴 쓰고 눈도 좀 아껴 써라.

니은으로 시작하는 주제어로 무엇을 고를지 꽤 오래 고민했다. 나태, 나, 놀이……. 이렇다할 글감이 없어서 쥐어짜기를 해야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쓸거리가 알아서 굴러오는 걸 보면 일복은 분명히, 꽤 좋다.


눈이 많이 나쁘다. 다섯 살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해 나안일 때의 기억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시력교정기구를 착용한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안경이 특별히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다. 안경은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꽤 로맨틱하다.) 


좌측 고도근시, 우측 고도난시에 양쪽의 시력차이가 심한 부등시로 약시가 되기 쉬운 눈이었기에 반년에서 일 년마다 안경을 교체했다. 렌즈 가격이 상당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안경테를 반년마다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니 개이득인 부분이 아닌지? 


안경이 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안경은 마치 손발과 온몸의 터럭처럼 내 몸에 붙어있는 후천적 수지발부나 다름없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학입학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입학식과 첫 번째 전공수업을 들어가고 나서 안경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 중 안경을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친구들이나 교수님들이 안경을 쓴 나에게 무어라고 한 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며 안경을 쓴 젊은 여자……가 왜 보이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지적으로 굉장히 냉철하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고. 콘택트렌즈와의 인연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콘택트렌즈가 난시를 제대로 교정해주지 못했고, 난시 축이라는 것이 있어 표시된 방향으로 렌즈를 착용하지 않으면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제대로 착용을 한들 교정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어 판서도 두 겹, 세 겹으로 보였다. 그런데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나니 그제야 안경 벗은 모습이 훨씬 낫다는 다소 직설적인 평가가 돌아왔다. 다들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안경 벗는 게 훨씬 나은데 벗고 다니시지. 

안경이 못나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안경을 끼고 있을 때 내 모습은 거리감을 느끼기 쉬울 것 같았다. 콘택트렌즈는 내 시야를 불확실하게 교정했고, 화장을 할 때도 거울에 코가 닿을 만큼 다가가지 않으면 아이라이너를 제대로 그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분명 안경을 쓸 때보다 더 나아진 거다. 


3.11 대지진으로 귀국을 결정한 후에도 안경과는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약 1년 정도 난시 교정을 위해 하드렌즈를 착용하기도 했다. 남들 다 고생한다는 이물감도 별로 느끼지 않았으며 하드렌즈는 소프트렌즈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선명도로 나를 유혹했으나 물건 험하게 다루는 습관 때문에 그 비싼 렌즈를 두 번쯤 깨먹고 나니(바삭! 하고 깨질 때 소리가 상당히 맛깔난다.)  이 친구와 한 해 더 지내다간 파산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난시용 소프트렌즈도 점점 질이 좋아졌다. 이젠 넣기만 하면 렌즈가 자동으로 축을 찾아 회전하게 되었고, 앞도 예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일주일에 오륙 일 가량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게 되었다. 매일 착용하기도 하고, 한 번 착용하면 오래 쓴다. 각막에 상처가 난 적이 있어 렌즈를 빼다 각막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응급실에 가야 한다. (농담이면 좋겠지만 한 번 상처가 난 각막은 이후에도 쉽게 상처입는다. 응급실도 이 년 사이 세 번을 갔다.)

이 주 전쯤 또 렌즈를 빼다가 상처난 자리가 잘못 건들렸는지, 여섯 시간 동안 렌즈를 못 빼고 질질 울었다. 


이젠 렌즈조차도 열이 받아서 목돈이 모인 김에 시력교정수술까지 욕심이 미쳤다.

그리고 조셉은 큰맘 먹고 낸 반차일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라식은 어렵겠지? 이왕 하는 거 비싼 걸로 해봐도 좋겠다.

두 시간 검사하는 동안 검사관 선생님들 다섯 명이 하나 같이 “눈이 많이…….”로 운을 떼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시야각 검사를 하는 도중 검사관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같은 검사를 두 번 더 하고도 “스으읍.” 쓰르라미 우는 소리를 내시더니 후다닥 원장실로 가서 무어라 말을 하시다가, “검사를 바꾸어볼게요.”, 다른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이어진 예의 ‘다른 검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녹내장 의심 소견이 있어서 도중에 녹내장 정밀검사로 바꾸었는데, 녹내장 조기 증상이 보입니다.


요컨대 시야각 검사를 하던 도중 검사를 세 번, 네 번 반복해도 특정 부분을 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 눈 CT 사진을 같이 보자며 여기저기 짚어주는데 봐도 잘은 모르겠고, 시신경이 많이 죽은 상태란다.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발견하는 건 매우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한다. 보통은 실제로 앞을 보는 데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찾아오게 되고, 그때는 소위 ‘이미 늦은’ 때인데 이렇게 얻어서 발견하면 초반에 잡을 수 있으니 오히려 낫다고.

당연하지만 시력교정수술은 “제가 괜찮다고 판단하고 말씀드릴 때까지는 보류하셔야” 한단다. 


처음에는 덜컥 겁이 났는데, <링딩동> 한 곡이 끝날 만한 시간이 지나니 점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더럽게 혹사시키기는 했으니까. 이렇게 찾아내는 건 차라리 복이 아닌가.


처음 넣어본 안약은 꽤 쓰라렸지만 각막 손상을 겪어본 조셉에게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낮밤할 것 없이 어두운 데서 책을 읽고 화면을 들여다보았으니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들고……. 


한동안 내외했던 안경을 다시 맞추며 근 육십만원 돈을 긁고 나니 비로소 안경이 애틋해진다. 이 간사한 마음을 참 어쩔 셈인가. 나의 못난이 안경아. 잘 보고 싶다. 나와 평생을 함께 살며 어려운 나의 눈을 지켜준 안경이 적어도 회복세에 오르기까지는 간사한 주인의 심보를 모른척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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