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력 사라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호주 지폐에서 영국 여왕의 초상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현지 시각 2일 호주 연방준비은행은 성명을 내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가 담긴 호주 5달러를 새로운 디자인으로 교체한다고 밝혔습니다. 새 지폐에는 호주 원주민의 역사 그리고 문화를 기념하는 디자인이 들어간다고 덧붙였는데요.
물론 당장 교체되는 건 아닙니다. 호주는 원주민들과 지폐 도안과 관련해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지폐 도안이 결정되고 발행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그전까지는 지금의 5달러가 계속 발행될 예정이고, 호주 동전에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초상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이 기사를 읽자마자 영국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호주는 대표적인 영연방 국가입니다.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삼고,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데요.
작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뒤 외신들은 일제히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기사를 냈습니다. 영연방의 상징적인 구심점 역할을 했던 엘리자베스 2세 여황의 서거로, 영연방 국가들의 결속이 약해질 거란 건데요.
당시 호주 내에서도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요. 논란이 커지다 보니, 호주 당국은 여왕 서거 이후 즉위한 찰스 3세 국왕의 얼굴이 아니라 호주 관련 인물의 초상을 넣을 수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지폐 디자인 교체는 영연방국가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고 영국의 위상 역시 하락하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럼 여기서 궁급해집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영국의 위상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영국의 경제적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데요.
전망만 봐도 영국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느낄 수 있는데요. 국제통화기금이 최근 올해 영국 성장률을 -0.6%로 제시했습니다. G7국가들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이라고 진단했고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고 있는 러시아(0.3%)보다 영국의 성장률이 부진할 거라고 봤습니다. 성장률과 함께 달았던 코멘트는 더욱 암울합니다. 영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를 맞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것이며 내년까지 가장 긴 암울한 2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성장률 전망이 부진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일단 생계비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고점에서는 내려왔다고는 하나, 아직 10%대로 영국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의 5배 수준입니다. 문제는 임금 상승세가 물가 상승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요.
그래서인지 공공 부문에서 대규모 파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이터 기사를 보니 의료 분야는 역대 최대 규모의 파업에 직면했다고 하네요...
작년에 리즈 트러스 총리가 섣부르게 추진한 감세 정책으로 파운드화가 급락했던 사건 기억하시죠. 이때 영국 경제에 대한 로망이 깨지기도 했죠. 생각보다 영국 경제가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브렉시트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뜻의 '브레그레트(Brexit+Regret)'라는 말이 영국 사회에서 큰 키워드라고 합니다.
영국은 지난 2020년 유럽연합에서 탈퇴했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서 당초 브렉시트를 결정했을 때 생각했던 그림과는 다른 결과들이 발생했는데요. 영국과 유럽이 FTA를 체결해 무역 장벽을 낮췄다고는 하나, 영국이 유럽연합에 속해 있을 때와는 달리 통관 절차 등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여기에 영국 내 유럽연합 노동자들도 대부분 유럽으로 돌아갔는데요. 따라서 값싼 노동력을 누리던 영국은 노동력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의 영국 투자도 감소했고요.
'브렉시트'는 영국 정치권 내에서 'Elephant in the room' 즉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주제라고 합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트러스 전임 총리가 촉발한 경제적 위기를 다 이겨냈다고는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경제적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 영국 경제는 어떤 방향을 걷게 될지 관심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