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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니아 Jun 07. 2024

제주도에 산다는 것

제주도 Ep. 3

제주도만의 불편함과 느긋함 받아들이기



제주도의 인구는 2023년 12월 기준으로 70만이 좀 넘는다. (행정안전부/제주특별자치도의 인구통계 기준) 수도권의 비슷한 규모를 찾아보면 경기도 남양주시 (73만명)와 충청남도 천안시 (66만명) 중간 정도이니, 면적 대비로는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래서 육지의 큰 도시들에 비해 불편한 점이 꽤 있다. 엄마들이 선호하는 대형 쇼핑 센터도 없고, 문화 시설은 열악하며, 하루만에 배송되는 서비스도 제한적이다. 해가 저물면 가로등이 없는 길이 많아서 컴컴한 곳을 조심조심 운전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자연환경이다. 실제 제주도에 가서 살아보니, 일 년에 서너 번 관광객으로서 오가며 바라보던 애월 바다와 한라산 근처에서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교통체증 없는 한산한 도로와 십 분만 가면 보이는 바다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서울에서 학교, 집, 학원가를 무한 도돌이표처럼 돌아다니던 아들은 차 구경하기 어려운 한적한 시골길을 좋아했다. 별로 쳐다볼 일이 없던 하늘도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구름의 종류와 위치를 헤아렸다. 제주도의 구름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져 때론 낮게 드리우기도 하고, 때론 저 높은 곳에 토끼 모양으로 뭉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한림읍의 금능해수욕장이다. 5월 중순만 넘어가도 제주도 앞바다는 따뜻해져서 발을 담그고 놀 수 있다. 제주도에 사는 동안 주말과 방학 때면 온 가족이 수시로 놀러 갔다. 금능해수욕장은 옥빛 바다와 낮은 수면이 매력인 곳이다. 썰물 때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부드러운 뻘이 펼쳐진다. 해수욕장이 개장하면 하루에 3만 원-10만 원 사이에서 파라솔과 정자를 대여할 수 있어서 아침에 가서 해 질 때까지 놀기도 했다. 아직도 아들의 최애 장소이기도 한 그 바닷가에서 우리 가족은 매년 조금씩 다른 추억을 만들고, 갈때마다 색이 달라지는 먼 바다를 바라본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십 년을 자란 아들은 편한 것이 익숙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서울 아이였다. 옷에 흙이라도 묻으면 큰일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제주도에 가면 주변이 온통 흙이고 풀이니 옷이 좀 더럽혀져도 하하 웃고 털면 그만이다. 그래야 제주도에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아들은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향이 되었다. 같이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영악하고 계산에 빠른 서울 아이들보다 더 순진한 편이었다. 친구들과 만나면 키즈카페나 피시방이 아니라 오름을 가거나 해수욕장에 간다. 아니면 각자 집에서 만나 게임도 하고 운동장에서 몸을 움직이며 논다. 학교가 끝나도 학원 가느라 만나기 힘들었던 서울 친구들과는 많이 달랐다. 아들이 같이 뛰어놀 친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제주도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보낸 아들은 중학교3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흔한 피시방에 가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또 하나의 장점은, 육지와 제주도에서 가족이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 간에 더 단단한 가족애가 생기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빠가 같이 제주도에 같이 내려올 수 있는 경우는 많이 없어서, 대부분 주말에만 아빠가 제주도로 오는데 이런 변화가 부부 사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경험담이 더 많다. 또한 아이와 지내는 주말이 더 값지고 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아빠들도 주어진 시간에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니며 가족 사이가 오히려 더 견고해지고 아빠와 아이들이 더 가까워졌다는 가정이 많다.


간혹 제주국제학교에 다니다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두 가지 정도로 분류된다. 엄마가 제주도의 시골스러움, 한적함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와, 한국 교육 시스템으로 ‘리턴’하는 경우다. 실제로 어떤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다가 중도에 돌아갔고, 의대나 치대 진학을 고려하며 원래 살던 대도시의 학군지로 돌아간 아들 친구들의 사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나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제주도의 자연은 참 좋았다’라는 경험담이다. 그만큼 사시사철 다른 매력을 가진 제주도는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평화, 치유, 또는 여유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아들도 자주 이야기한다. 제주도의 바다가 제일 좋다고. 그래서 캐나다에 유학 가 있는 지금도, 여름방학이 기다려지고 그립다고. 엄마, 아빠가 사는 곳이어서 그리운 것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대로 존재해 주는 제주도의 산과 바다, 오름이 주는 평온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아들은 제주도에서 마음속의 평화와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길렀다. 어른인 내가 봐도 절대 서두르지 않고 찬찬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앞으로도 아들은 제주도를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힘든 일이 생기거나 답답한 마음이 찾아오면 열 살 때 처음 만난 힐링과 여유의 의미를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다잡을 것이다.


대도시의 편안함과 신속함을 제주도에서 기대하지 말자. 오히려 제주도만의 불편함과 느긋함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깨끗하고 유해시설이 없는 것을 큰 장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내게도 인생이 늘 그렇듯, 제주도에 사는 것은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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