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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랄라 Dec 18. 2023

가봐야지만 아는 길

삼십대 때에와는 다른 결로 나의 마흔을 시작한다.

우리집 서가에는 '마흔'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책들이 몇권 있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과 '마흔에 읽는 논어' 그리고 '마흔에 읽는 니체'까지. '김미경의 마흔 수업'은 올해 마흔이 된 내가 구매한 책이고, '마흔에 읽는 논어'는 구매한지 수년 되었다. 삼십대 시절 나의 마흔은 어떨지 궁금해서 읽어 내려갔다. 준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준비하려는 오만함 이었던걸까. 그 때의 나는 마흔에 대해 그리 진지하지 않았다. 나의 마흔은 삼십대의 내 삶처럼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수업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그런 삶. 혹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헤쳐 나가며 그냥 열심히 살다보면 살아지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 때의 나는 나의 마흔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삼십대의 나는 사십대의 나도 별반 달라질 것이 없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그렇게 빡빡하게 살아왔던 내 삶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흔이라는 숫자의 상징성 때문인건지, 그만큼의 인생 연륜이 쌓여서 인건지, 그간 내가 살아왔던 삶 때문인건지 딱히 알길은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대로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지워가는 방식으로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는 방식으로의 삶이 필요했다. 계획하지 지 않았기에 더더욱 거부할 수가 없다. 그 시작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숨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사십대를 다시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이 길은 그저 준비해서 가면 되는 길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길은 준비한다고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아님을 알았다. 나와 남편의 사십대는 어깨가 더 무겁다. 우리는 아파도 아이들이 어릴 때보다도 오히려 더 아플 수가 없다. 꼬물거리는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서 하나씩 스스로 해나가는 것이 많아지면 짊어진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질줄 알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책임과 선택이 뒤따랐다. 그냥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면, 살아지기야 하겠지만 한번뿐인 인생에서 나의 시간을 어디에 할당할 것인지 조금 더 신중해졌다.


'열심히'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 인생의 '의미'들. 두 아이만 바라보다가 남편이 보이고 가족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로 시야가 넓어진다. '나'라는 사람을 찾고자 시작한 여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또 만나간다. 어디서 어떻게 인연이 이어질런지 알 수 없다. 책으로도 만나고, 문장으로 만난다. 그 안에 다시 나를 심어간다. 나에게는 너무 절실하다고 여겨졌던 시간이 확보되면서 관계를 확장하고 행복을 만난다. '나'만 잘해 나가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 '나'만 열심히 하면 잘 살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는데, '나'로 연결된 점들이 이어지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열심히 살아왔던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는 아니지만, 다른 결로도 살아보리라 다짐해 보는 건 내가 마흔이라는 길을 가기 때문인 것일까.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지만, 그 무게를 이제는 나눠 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늘은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려 놓지 못했던 짐은 내려 놓고, 다시 내 나이에 걸맞는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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