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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샤랄라 Jul 09. 2024

엄마는 박물관에 왜 따라갔나

오늘 엄마가 아이들과 체험학습 따라나간 진짜 이유

나는 사람 관찰하기를 즐긴다.

학부생 때에는 학교 앞에서 사람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도 재미날 수가 없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평범한 모습만 보다가 미대로 유명한 학교라 그런지 워낙 다양한 패션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신입생 때는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대학생들의  모습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고를 나왔던지라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볼 수도 없었거니와 행여나 누가 폈더라도 그런 돌아가는 사정에는 눈이 어두웠다. 그런 모습들이 신기해서 같이 가는 친구를 붙잡고 어찌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른다. 평소에는 잘 받아주던 친구도 한 번은 내가 너무 지나쳤는지 그만하라며 버럭 하기까지.

보통 저 사람은 왜 저런지 사람들은 별로 깊이 있게 생각을 하지 않지만, 나는 괜한 이야기를 덧붙이길 좋아한다. 궁금해한다. 호기심이 많다. 내 갈길이 바빠서 지나칠 때도 많고 손에 책을 잡고 있어서 주의 깊게 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무언가 꼭 상념에 잠기게 하는 매개체가 있다면 그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오늘은 아이들 역사수업이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오늘의 수업주제는 '고려시대'였다. 이미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그래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 볼 요량으로 나도 고려시대관을 한 바퀴 돌았다. 물론 아이들과 시간차를 두었다. 천천히 돈다고 돌았지만, '고려시대관'만 보았기에 시간이 애매하게 어중 띄었다. 그래서 한적한 3층으로 올라간다. 탁 트인 중앙홀이 한눈에 보이면서 나도 모르게 넋을 놓게 되었다. 그저 휘리릭 둘러보고 말 일인데, 요즘은 무엇이든 조금 더 오래 지켜보는 습관이 생겼다.

저 멀리 커플이 지나간다. 여자는 외국인, 남자는 한국인이다. 여자의 오른팔은 남자의 허리를 감싸고, 남자의 왼팔은 여자의 어깨를 감쌌다. 둘이 어찌나 붙어 있던지 흡사 티셔츠 한 장을 가지고 한쪽씩 팔을 끼고 걷는 모양새다. 내 남자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을 때 나오는 애정 어린 신체접촉이다. 둘은 지금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 단순히 육체에 국한된 열렬한 사랑을 나누기를 넘어서서 마음을 나누었다. 너무도 먼 시선이었던지라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십 대에 접어든 듯했다. 그런 사랑이 어떤 건지 알기에 나 또한 바라보는 눈길에 애정이 담긴다.

커플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왼쪽으로는 가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간다. 한 가족으로 보이는 그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선으로 그려보면 흡사 아메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 셋 가족이다.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느낌으로 그렇겠거니 하고 관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고 있자니 아들 셋의 옷이 모두 똑같다. 사이즈만 다를 뿐.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우는 입장에서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신박한 생각인지. 특히나 활동적인 아들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도 탁월한 의상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 무리의 중심에 아빠가 있었고, 또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아들 셋을 키우는 엄마라는 짐작을 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씬한 맵시에 검은 나시티 그리고 초록색의 롱치마를 입었다. 멀리서 보아도 치마를 살랑거리며 걷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들 둘은 이미 앞질러 걸어간다. 걸어가는 순서도 키 순서대로다. 그들 가족의 맨 뒤를 막내가 뒤따른다. 터덜터덜,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러다가도 막내아들은 엄마가 사진을 찍자고 했던 건지 전시포스터 앞에서 예쁘게 포즈를 취해준다. 형들에게는 없는 막내만의 애교를 마음껏 발산하니 막내아들 키우는 엄마의 재미가 참으로 쏠쏠하겠다. 아들만 둘이라 혹은 셋이라 바람 잘날 없고 여성미는 뚝뚝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엄마들도 있지만 나의 친척동생만 하더라도 아들 셋 사이에서 여왕대접받으며 너무도 예쁘게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으니 아들이든 딸이든 엄마 모습은 그저 엄마 하기 나름인 듯도 하다. 어쩐 일인지 나는 딸이 있지만 세상 털털하게 하고 나가기도 하니까.

오늘은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아무래도 어떤 전시를 꼭 보고 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주 와봤기에 한층 여유가 생겨서 인 것도 같은데, 요즘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은 나에게 없던 묘사력을 자꾸만 연습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는 것이다. 혹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발견하고 있는 건지도. 워낙 관심 있게 보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기에.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건가. 아니면 요즘 시를 배우고 있어서 그런 건가. 물감을 가져와 그림을 그려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단어들을 가져와서 그려 보라면 스케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전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뭐가 되었든, 난 요즘 재미난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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