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시간이 나면 산을 오르고 있지만, 작년과 재작년에 나는 집 근처를 걷고 또 걸었었다. 그 시간은 두 아이가 모두 등교하고 난 이후 시간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바로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나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내가 뛰는 동선은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날은 하천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가르치던 학생의 어머니이자, 이제는 이웃사촌이 된 언니들이다. 서로 부지런하다고 치켜세우며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 문득 한 언니가 묻는다.
"몇 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준비시키는 거야?"
"저요? 새벽에 일어나죠."
언니가 놀란다. 굳이 왜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지 의아해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허영심'의 발로인가 하고 잠시 나의 과거를 돌아본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새벽에 깨운 건 요즘이 처음은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가장 먼저 학교에 가기 위해 새벽을 깨웠고, 공공 도서관의 가장 편한 좌석을 잡기 위해 새벽을 깨웠다. 학부 시절 시험기간에는 삼화 고속버스에 편하게 앉아서 학교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어서 새벽 첫차를 타고 도서관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불을 켜고, 내가 앉고 싶은 자리를 고르는 기분. 쫓기지 않아서 좋았다. 오며 가며 빈자리는 분명히 생길 테지만, 막연히 생기길 무턱대고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의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이나 안정감을 느꼈다. 운에 기대기보다 아주 작은 것까지 내 손으로 움켜쥐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담고 싶은 만큼 담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 썼다. 하루는 쪼갰지만, 몸은 둘로 쪼갤 수가 없었다. 주어진 시간보다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았기에 나는 언제나 하루가 부족했다. 어째서 하루가 24시간이어야 하냐며 36시간 일 수는 없는 거냐며, 48시간이면 안 되겠냐며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그렇게 삼십 대를 보냈다. 백 개를 담을 수 있다면 백개를 담길 바랬지만 아직 담지 못했는데 왜 벌써 하루가 저물고 있냐며 홀로 아쉬움을 삼켜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꾹꾹 눌러 담았던 아쉬움은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 나갔고,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시간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새벽기상'이었던 것이다. 고3 학생들 수업으로 11시가 되어서야 수업이 마무리되었기에 새벽기상은 한동안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가 2023년, 그 학생들을 모두 졸업시키자 취침 시간을 당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몸이 받쳐주지 못했기에 일찍 잠들어서 적어도 6시간 30분 이상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그 이하로의 수면시간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에게는 무리였다.
그때부터 다시 새벽을 깨우기 시작했다. 나만의 공간에 들어서면서 전등 스위치를 켜는 순간, 학부생 시절 도서관 전등 스위치를 켜는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결코 혼자일 수 없는 집이라는 공간이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하루를 당겨서 시작하기에 온전히 내가 '나'를 만나는 일이 가능해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야 하며, 나 또한 아무도 찾지 않아야 도달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나'를 먼저 만나고 아이들과 남편을 만난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며 공부방에 있는 나에게 깨어나는 순서대로 안긴다. 화장실이 급한 남편이 먼저, 베개에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잠드는 아들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책 읽다가 늦게 잠들어 날마다 아침잠이 많은 딸이다. 이제 나를 내어줄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