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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발가락이 아팠다

by 엘샤랄라

3월 중순, 학부모 총회를 시작으로 구두 신을 일이 연이어 있었다. 잠깐 신고 있으면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3월이었지만 아직 실내에서는 약하게 히터를 틀지 않으면 으슬으슬 떨리는 날씨였기에 앵클부츠를 신기로 했다. 옷에도 어울렸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렇게 며칠 연이어 구두를 신었다. 그러다 갑자기 2주 전 토요일에 발가락이 퉁퉁 붓고 통증이 일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에 움직임을 자중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버텼다. 병원에 가도 딱히 뼈에 문제 있는 건 아닌지라 염증약만 처방받을 게 분명했다.


발가락은 다섯 개고 그중 하나니까 걷기에는 크게 무리가 안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몸의 균형이 흐트러짐이 느껴진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못주고 새끼발가락 쪽으로 힘을 주게 되니, 다소 절뚝거리는 모양새다. 어설프게 힘이 오른쪽에 쏠리니 골반도 뻐근하다. 양껏 움직이지 못하니 군살만 붙는 것 같다. 살짝 괜찮아지는 것 같으면 다시 아프기를 반복하니 결국 두 번째 주말을 보내고서야 월요일 댓바람부터 병원문을 두드렸다.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뼈에는 이상 없단다. 염증을 잡기 위한 약을 처방받았다. 약처방을 받고 집에 왔는데, 부쩍 괜찮아진 느낌이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니, 약을 챙겨 먹는다. 급속도로 통증이 아문다. 발가락의 통증으로 뜻하지 않게 지난 2주 동안 강제적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버튼이 한 번 더 눌리면서 나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발가락의 통증이 사라졌다고 온전히 나았다 볼 수 없을 텐데, 나는 답답함을 못 이기고 결국 병원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산에 올랐다. 2주간 운동을 쉬었더니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그토록 오고 싶었던 산이 아니던가. 대신 발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산을 올랐다. 발 뒤꿈치부터 차례대로, 삐끗하지 않도록 바닥과 계단을 잘 살펴보며 오른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괜한 속도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나보다 뒤에서 출발한 사람 같은데, 어느새 나를 앞지르고 있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저 속도를 따라잡고 싶은데, 소중한 나의 발을 생각하며 자중한다. 산에 오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신났다.


발이 아프기 전까지 나는 산에 오를 때에 호흡에 더 신경 쓰며 올랐다. 숨이 과도하게 차지 않게 리듬을 타며 오르는 데에 집중했다. 등산화를 신었으니 안전하게 오르기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여겼다. 하지만 지난 2주 동안 발가락 하나가 성가시게 굴면서 몸을 움직이기가 버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호흡만 신경 쓸게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체의 모든 장기 하나하나가 온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지극히 평범한 사실 같아도 지극히 평범할 수 없는 환상인가.


손가락 하나 베어도 마찬가지다. 세수할 때도, 머리감을 때도 여간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손가락 하나 배제한다고 머리를 못 감는 것은 아니나, 왠지 머리가 제대로 감긴 느낌이 나질 않는다. 종이에 살짝 벤 건 또 어떻고. 살짝 베었을 뿐인데, 아련하게 기분 나쁜 통증이 신경을 건드린다. 그렇게 건드려진 신경은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큰일이 아니라 생각했던 작은 통증으로, 나는 일상 속 내 몸의 움직임을 다시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던 내 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밤에 사뿐히 가라앉은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밀대로 집안 바닥을 훑는다. 다리를 쭉 펴고 팔을 뻗었다가 접으며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 낸다. 스트레칭이 따로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에는 코어에 힘을 바짝 주려고 한다. 코어에 힘이 들어가야 어깨가 펴지고 거북목으로 인한 목디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몸의 움직임을 의식함으로 척추를 세우고 고개를 든다. 어깨가 펴지고 혼자 있어도 어쩐지 당당하다. 귀찮아서 널부러 뜨려 놓고 미루고 싶은 집안일을 하나씩 해봄직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 속 움직임조차 이제는 대수롭다. 이러한 자각의 시작은 발가락의 통증이었다.


평범하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힘이 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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