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숭맹숭한 파스타 Aug 25. 2021

먼 곳에 가도 다 괜찮아지지 않아

괴로운 건 다시 나를 따라와 '스텔라 장 Reality Blue  中'

                                                                                                                                                                                                                                                                                                                                                                                                                                                                                                                         

지금 쓰는 글은 주제도 명확하지 않고, 소재도 없을뿐더러 일기인 듯 아닌 기행기 그 어느 경계에 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 글은 2020년 4월에 쓴 글입니다. *)


 지난 한달 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즐거웠던 일도, 혼란스럽고 슬펐던 일도 있었다. 분명 좋은 기억들도 존재할텐데 나는 자꾸 그동안의 기억들을 묻어두려고 했다. 그 기억들을 대변하는 사진들도 가지고만 있을뿐 들춰보지 않았다. 보고싶지 않았으니까. 사진에 담긴 풍경은 너무 예쁜데 그 때, 그 장소에 있었던 나는 전혀 그 순간을 즐기고 있지 못했으니까.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들이 들었다. 분명 난 도망쳐온 것이 확실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왔으면 안됐다는 듯이 상황은 내 등을 자꾸 떠 밀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도망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다시 오라고 말하듯이 날 자꾸 불안하게 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독일로 간다고 해서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나에겐 돌파구가 절실했다. 떠나고자 하는 그럴듯한 목표는 없었다 단지 도망치고 싶었을 뿐. 독일에서 며칠만 지내보아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에게 여러번 같은 질문을 받는다. "넌 독일에 왜 오게 됐어? 독일어를 왜 배우고 싶어?" 단 한번도 그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내 일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왔어.'라고 차마 말 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대충 얼버무렸다. 독일이 그냥 좋았다, 나중에 현지 취업을 고려중이다 같은 통상적인 대답을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여기가 뭐라고 그렇게도 오고 싶었을까 싶어서 비행기 좌석에 앉아 착륙 전까지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기어이 이 나라 땅을 밟았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마음 반, 도피에 성공했다는 안도감, 그동안 도망쳐오고 싶어했던 나를 위로하는 마음들이 한데 뒤엉켜 한동안을 그렇게 울었다. 그러다가도 문득 나를 간섭하는 것들은 이제 없겠구나, 온전히 혼자일 수 있겠구나 싶어 신나했었다.


 처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내려 정면을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이 곳에 오는 것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이 꽤 기분좋았다. 낯선 모습들의 사람들이 겁나기도 했지만 그런것들 보다는 지금 이 곳에 있는 내가 더 중요했다. 그 순간만큼은 난 여기서 뭐든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아니라 그 누구였어도 내 앞에 보였던 풍경을 봤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높은 건물들이 보이는 것이 프랑크푸르트의 특징이다. 큰 건물들만 보면 얼핏 서울의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곳곳에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들을 보면 확실히 서울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중앙역 앞 광장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것만 같아진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순간일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어야 무엇이든 시작 할 용기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후에 그 때의 감정은 허구였고 과장된 감정이었구나라고 느낄지언정 지금을 겪고 있는 나는 그 착각을 진짜라고 믿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몇년간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공부가 날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 모습 그대로 재현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미래의 내가 그려져야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기니까, 그래서 나에겐 그 착각이 굉장히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한국에서의 나는 어느 순간 그 착각이 사라졌고, 앞 뒤 생각 안하고 기회가 생기면 도전부터 하고 보던 용기도 의지도 잃어버렸다. 하루 하루 버티는 것이 목표였던 삶이었다. 잘 살아보려고 이것 저것 시작했던 것들이 짐이 되기 시작했고, 버거워졌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고, 해도 해도 과업은 줄 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분명 많은 일을 해냈는데 하루의 마지막에 돌아오는 것은 나를 향한 불신의 눈빛들이었다.


 그 때부터 번아웃이 날 집어삼켰고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늘어갔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니 몸도 건강할리 없었다.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으니 자꾸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못하게 되고 미루게 되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면 '기본적인 일들도 수행하지 못하는 나약한 나'가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럼 번아웃이 심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순환을 끊어내려면 도망치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줄 알았다. 사실 지금도 도망치는 것 보다 더 나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도망쳐서 컴퓨터 리부팅하는 것처럼 나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고민했겠는가. 24일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이 때가 아닌가 보다.' 도망치는 마음으로 이 곳에 오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 날 날씨는 완벽했다. 봄 나들이를 나오면 딱 좋을 그런 날이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꽃밭이었는데 내 마음은 전쟁터였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났고, 내 엔딩만 항상 새드엔딩인 것 같아 억울했다. 나에게만 닥친 어려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일무이한 최대 피해자인 것만 같은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다가도 이 모든 엔딩을 자초한 것이 나이면 어쩌나 무서워졌다. 온통 괴로운 감정들뿐이라 이 것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이미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도망치지 말라고, 도망쳐 온 결과가 이 모양이니 다시 돌아가라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나는 이제부터 제자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있을 마음 편한 곳도, 내가 꿈꿔오던 일도, 내가 공들였던 관계들도 모두 덮어두지 않고 다시 마주해보려 한다. 아직 완전히 나의 어두운 부분들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아직은 생각한 것만큼 의욕적이지도, 평온하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보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끼고 돌보는 마음, 이루고자 했던 크고 작은 목표들, 내가 온전히 나 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하나씩 되돌리려고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정말 때가 되었을 때 도망치는 마음을 버리고 독일로 다시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없는 삶은 고통스럽다.


 그동안은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을 포함한 어떠한 대상에도 돌보고 아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살다보면 그게 편한거라고 합리화하면서 그런줄로만 알고 살았다. 나는 자꾸만 차가워져갔고,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려고 하는 나를 견디지 못해했다. 따뜻해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본능인 줄 알면서도 나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표현하고 마음을 주고 나와 타인을 아끼는 것이 가장 나에게 즐거운 일인줄을 알면서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했다. 그래서 조금씩 돌려보려고 한다. 인간사에 관심 없는 척하는 내가 전혀 멋있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원래 하던대로 사랑 많은 오지라퍼로 돌아가려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으니 짧았던 내 프랑크푸르트 생활이 가히 낭비였다고만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도시가 그리워져 다시 돌아가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