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늘 요행을 바라며 살아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들인 노력에 비해 더 값진 결과물을 얻길 바라는, 단순한 행운을 기다리며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길 입 벌리고 누워 기다리고만 있는 것처럼 내 삶의 태도는 아무래도 늘 이렇게 안일했던 것 같다.
나는 늘 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 편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기보다 이미 남이 닦아놓은 포장도로를 안정적으로 걷는 것이 좋았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걷다가도 또 어느샌가 발 한 번 떼기 힘든 펄밭을 걷게 될까 두렵고, 행여나 예측할 수 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늘 노심초사하며 그렇게 마음 편하고 몸 편한 길만을 골라 다녔던 것도 같다. 예측할 수 있는 일들만 일어나길 바라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모순적이기만 하다.
내가 나로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나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친밀한 타인을 만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나와 아무리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타인일 테니 당연히 처음부터 톱니바퀴가 맞물려 굴러가듯 모든 면에서 맞아떨어질 수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나는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늘 이렇듯 나와 모든 면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이길 기대한다. 그래서인지 늘 조금이라도 관계에 틈이 벌어지면 실망하고 그 틈을 바라보며 '이 작은 틈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벌어지게 될까' 같은 기우에 사로잡혀 결국엔 작았던 틈을 낭떠러지로 만들어버리고 관계를 종결시키곤 했다.
지극히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나의 기대를 저버렸던 것은 사실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는 내 위로 마음에 쏙 드는 사과 하나가 떨어지길 바라고 있던 내가 어쩌면 원인이 아니었을까. 내 입으로 떨어지는 예쁜 사과 하나가 내 이를 부러뜨릴 것이라고는 감히 예상치도 못하는 나의 아둔함을 떨어지는 사과는 알고 있을까. 떨어진 사과는 자신도 곧 온전치 못한 상태로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노력하지 않는 관계에 예쁜 사과가 무슨 소용이며, 튼튼한 이가 무슨 소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