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느냐, 정해진 규율대로 보느냐의 차이
고등학교 때 수학과목을 제일 싫어했던(못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에 입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경제학 공부에 수학이 이렇게까지 많이 쓰이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은 나와 맞지 않는구나 지레 겁부터 먹었던 나는 흔히 '가라 경제학'이라 불릴 만큼 수학과목을 피해서 들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학교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경제학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이 무척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미시경제학은 시장에서 개인과 기업의 거래를 분석하는 학문이고, 거시경제학은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적 자원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되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나는 사실 미시경제학보다 거시경제학을 좋아했는데 일단 국가적 단위로 분석하는 스케일이 마음에 들었고, 자원의 분배가 어떻게 하면 가장 필요한 곳에 배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 내게 미시경제학도 참 매력적인 학문이구나를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로스쿨 1학년 때 우연히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주관한 모의 공정위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산업조직론이라는 경제학 과목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문제 되는 시장이 독점시장인지, 과점시장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시장의 범위를 정하고, 해당 시장에서 분석 대상인 기업이 독점인지 여부를 밝혀내는 학문인 산업조직론은 미시경제학과 가까운 분야였다. 이 과목을 알아가는 동안 나는 미시경제학도 진짜 재밌는 학문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경제학에 매력을 느끼며 경제학 공부를 해온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장 효용이 크면서 손실을 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세상이었다.
로스쿨에 입학해서 처음 법을 공부하게 된 나는 당황했다. 자를 이용해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을 그려보고, 몇 가지 공식과 계산으로 최적의 거래 균형을 찾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던 나에게 법학은 아주 새롭고 어렵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법학은 일단 많이 외워야 했다. 형법이면 형법, 민법이면 민법, 헌법이면 헌법 각각의 분야에서 아주 많은 판례를 공부(외워야) 해야 했다. 과거에 있는 판례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최신 판례들도 중요한 쟁점이 있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했다.
각각의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 법리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쌓인 법리를 토대로 새로운 사건에 대입해 본다. 이 과정에서 법률 조문과도 위배되는 부분이 없어야 했다. 특정 공식을 만들어 사건에 대입한다는 면에서 경제학과 유사한 접근방식도 있었다. 다만 아주아주 많은 예외가 있는 공식이라는 점에서 경제학 공식과 구별되었다.
서술을 하는 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경제학은 서두 없이 공식을 쓰고 그래프를 그리고 답을 내면 되었다. 그 와중에 그래프를 똑바로 예쁘게, 선들이 겹치지 않게 그리는 사람이 좀 더 점수에 유리한 정도? 그런데 법학은 서술 방식에서도 서론-본론(조문-판례-사건대입)-결론 이 정형화된 순서를 지켜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답을 내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는 조문과 판례를 외워 사건에 대입하는 서술방식을 익히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법학이 보는 세상은 일단 매우 정형화된 시각이 많았다.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1) 어느 법과 관련될까? 2) 비슷한 판례가 있었나 3) 어느 법과 비슷한 판례에 따르면 이런 결론이 나겠구나 라는 사고방식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두 가지 학문을 모두 공부한 나는 가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세상이 경제학 시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법학 시선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이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 사기를 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경제학적 시선에서 거래에서는 역시 정보의 비대칭이 문제 되지, 레몬시장이론이 생각나는군 하면서도 법학적 시선에서 형법 몇조에 따라 사기죄가 적용될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게 된다.
이렇듯 한 가지 사건을 접할 때면, 내 안에서는 두 가지 학문의 시선이 느껴진다. 내가 한 가지 학문만 공부했으면 몰랐을 새로운 시선이 신선하고 신기하게 다가온다. 아마 내가 모르는 다른 학문들 역시 각자의 재미있는 시선들로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그 생각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