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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Jul 06. 2019

그들은 그렇게 범죄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범죄자인 사람은 없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가?

이따금 잔혹한 사건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때가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범죄 수법을 보며 사람들은 경악을 하고 혀를 내두른다.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하는 프로파일러가 등장하여 범행을 분석한다. 화가 난 시민들은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사형제도를 폐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전까지는 평범한 시민 중의 한 명이었을 텐데,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범죄자가 되었을까?


영화에는 갈등요인이 필연적이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있고, 특정한 사건으로 얽히기 마련이다. 거짓말이 모든 문제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도미노처럼 걷잡을 수 없는 폭력을 이끌기도 한다. 사건의 시작이나 끝은 크건 작건 대부분이 범죄를 떠나 이루어질 수 없다.


스토리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범죄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범죄의 길에 들어서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성장과정에서 주변의 영향을 받아 변해버린 사람도 있다. 환경이 급작스레 변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범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성향을 일정 부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에 의해 범죄자로 양성되는 사람도 있다.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원인이 한 가지로 귀결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범죄의 대부분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를 통하여, 혹은 그가 처한 환경으로 인하여 분출됨을 알 수 있었다. 관계와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한 사람을 둘러싼 사회의 안정망을 만들어 나가면 범죄가 줄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출처 : 영화 <초록물고기>


순수를 잡아먹는 배신과 음모


막 제대한 막동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빨간 스카프를 맨 미애를 처음 만난다. 막상 돌아온 고향은 익숙하지 않았다. 논과 밭은 모두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 일자리를 찾아다니다가 나이트클럽에 흘러들어오게 되었고,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미애를 다시 만난다.


주차장에서 일하게 된 막동은 조직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고는 조직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직에 충성하고, 미애와의 사랑도 점차 키워나간다. 그러던 중 조직에 위기가 찾아오고, 막동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사랑하는 미애와 새로운 미래를 기대했으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초록물고기>(1997)는 지극히 한국적인 누아르로 주목을 받았다. 미화되지 않은 암흑가의 리얼한 모습과 함께 주인공의 절망적이고도 허무한 현실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막동은 한석규가 가장 아끼는 배역으로 유명하며, 그 이름을 딴 시나리오 공모전도 있었다.


서민적인 깡패였던 막동은 조직에 대한 의리와 보스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연민을 두루 갖췄지만, 폭력조직의 생리를 전혀 몰랐다. 조직의 보스에게 이용당하고, 곧바로 내침을 당했다. 물가에서 초록물고기를 잡던 소년은 그 순수함이 다 사라지기 전에 이슬처럼 사그라들고 말았다.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어느 틈엔가 소외되어버린 청년의 삶과 죽음을 잘 그려냈다.



출처 : 영화 <시티 오브 갓>


신조차 버린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시티 오브 갓>(2002)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다. ‘신의 도시’라는 영화의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범죄가 만연한 도시이다. 차라리 신마저도 버린 도시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작가 본인이 성장한 곳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원작 소설을 썼기에 스토리 자체에 힘이 있다. 이 지역 빈민가 출신의 아마추어 배우들이 배우로 참여하여 현실감이 더해진다. 감독은 분절된 이야기를, 화려하고 거친 색감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시켰다.


영화는 이 도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따라간다. 1960년대 텐더 트리오(섀기, 클리퍼, 구스)를 시작으로, 리틀 제와 베니, 그리고 또다시 새롭게 등장하는 갱단... 그 모든 악의 근원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심부름을 하고, 망을 보는 일처럼 작은 일로 시작을 하지만, 마약과 살인 등 중범죄도 두려워하지 않는 냉혈한으로 자라게 된다.


총기가 구하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총알에 맞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서로의 원한 관계로 엮어져 간다. 범죄는 끝이 없다. 다만 새로운 아이들로 대체될 뿐이다. 영화는 이 곳을 주름잡던 이들을 통해 이 도시의 패권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보여주는데, 각 보스의 흥망성쇠는 허망하기 그지없다. 비극의 원인은 개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였음을 알려준다.


너무나도 쉽게 등장하는 총기에 대비되는 것은 로켓의 카메라이다. 그것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 위한 도구였고, 베니가 죽기 직전에 주려했던 선물이었고,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가게 해 준 인생의 사다리였다. 로켓은 카메라를 통해 이 영화의 관찰자이자 기록자, 증인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영화는 수미쌍관적인 구성을 지닌다. 첫 장면에서 총을 쏘며 닭을 쫓던 갱단은 곧 경찰과의 대치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거의 마지막에 다시 한번 등장한다. 그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주인공의 위치는, 가만히 있을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이 곳에 사는 이들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빈곤과 폭력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민초들에 대한 은유이다.


출처 : 영화 <예언자>


인생을 바꾼 감옥, 거기서 얻는 교훈


감옥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벌을 받고, 반성하며, 교화되어 사회로 복귀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그렇게 기대를 받는다. 실제로 누군가는 학위를 받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직업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동안 더욱 범죄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되기도 한다.


19세의 말리크는 감옥을 지배하던 갱단의 보스인 루치아니의 눈에 들어 살인까지 벌이게 되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리숙하던 말리크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돈, 폭력, 처세술, 배신 등을 습득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뒤를 봐주던 루치아니를 넘어서 암흑가의 거물이 되어 출소하게 된다.


자크 오디아드는 <예언자>(2009)에서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냈다. 뒤를 봐줄 수 있는 어떠한 배경도 없던 애송이가 범죄의 도구로 발탁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영향력 아래서 범죄의 생리를 하나 둘 배워나갔다. 얻어맞고 운동화를 빼앗기던 소년은 결국 거물 범죄자가 되어 사회로 돌아간다.


말리크는 부작용이 극대화된 예일 것이다. 교화되기는커녕 더 큰 범죄자가 되어버린 말리크를 보면서 그에게는 감옥보다는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 6년 만에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면, 그의 재능은 더 좋은 곳에서 발휘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출처 : 영화 <케빈에 대하여>


그때 사랑받았다면 지금의 비극은 달라졌을지도


<케빈에 대하여>(2011)는 린 램지 감독의 연출과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의 뛰어난 연기대결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자유로운 여행가 에바에게 예정에 없던 아들이 생기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일과 양육을 잘 병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들 케빈은 잘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교묘한 방법들로 엄마를 괴롭힌다. 그 사실을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오직 엄마만이 알아챈다. 이러한 상황은 풀리지 않은 채 쌓여가고, 결국 대형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캐빈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날카로움이 늘 곤두서 있었다. 케빈의 내면에는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그것은 증오심의 형태로 커갔다. 그 정도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치밀하고 대담해지기까지 했다. 케빈의 이유에 대하여 대화할 필요성이 있었고, 진작에 시작되었어야 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더라도.


케빈이 태어났을 때, 기뻐하는 남편과 달리 에바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케빈과 에바의 관계는 그 태생부터 불안한 동거로 시작되었다. 공사장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 기꺼이 몸을 맡길 정도로 그녀의 심리적 상태는 혼돈이었다. 아이는 어리기에 그러한 사실들을 모를 줄 알았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애정의 결핍은 저절로도 느껴지는 것이었으니.


린 램지 감독은 모든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 두려움에 주목했다. 내 아이가 안 좋은 상태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하여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영화 속에 녹이고 싶었다고. 모성은 엄마의 본능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꽤 도발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에게만 전가시킬 문제는 아니다. 부모와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 주지 못한다면 그 자녀와 연결된 또 다른 공동체로 파편이 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영화 <기생충>


그들이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장르가 ‘봉준호’라고 불리는 이 영화는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소재로 삼은 블랙코미디이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우네 가족과 글로벌 IT그룹의 젊은 CEO인 박사장의 가족이 대조적으로 등장하며 ‘가난’이라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가난한 가족이 어떻게 범죄에 노출되어 가는지 보여주는 연대기 같았다.


영화의 시작은 거짓말과 사기로 시작된다. 재학증명서를 위조하지만, 기우는 그것을 범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기우에게서 시작된 거짓말은 여동생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끌어들이며 눈덩이처럼 커진다. 그 거짓말이 부메랑이 되어 이들 가정을 파국으로 이끈다. 이들의 범죄는 3번의 살인으로 이어진다. 자신들의 거짓말을 은폐하고 현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임 가정부 문광이 죽고, 그 죽음에 분노한 남편 근세로 인해 기우네 딸 기정이 죽고, 자신들을 멸시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데 이성을 잃은 기택이 박사장을 죽인다. 공멸이다.


기우네 가족이 일가족 사기단이 되고, 문광이 가택 침입과 절도를 하고, 근세가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일들은 어쩌면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등장인물들이 치킨집과 발레파킹과 대만 카스테라로 인해 일상생활이 점차 땅 밑으로 내려가고 있던 그 어느 시점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말이다. 그들이 세워놓은 삶의 계획들이 모조리 좌절되기 전에,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자조적인 푸념이 인생을 장악하기 전에 삶의 반전이 필요했다.  


<기생충>은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들러붙어 빨아먹고 사는 '기생'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 영향력을 주고받는 '공생'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냄새를 풍기고, 선을 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아픈 곳을 보듬어 안아주는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끈이요 그물이 되어줄 것이다.


출처 : 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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