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상황, 똑같은 함정

by Eloquence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인생을 살면서 인간은 성장하면서도 다시 퇴행하기도 한다.

망각했다가 다시 깨닫고,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 멈춰있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가 하면, 고개를 떨군 채 땅바닥만 바라보는 시기도 있다.

이제 끝인 건가 하면, 또 다른 시작은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똑같은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다시 또 함정에 빠졌다.

비슷한 아니 같은 상황을 마주했고, 역시나 나란 인간은 그렇게 훈련해왔던 것을 망각한 채 무서운 속도로 자기의심과 자기비하, 자책에 빠져들었다.

또 다시 상대의 책임전가에 휘말렸고, 근거없는 말과 행동에 휘둘렸다.


가족과의 현재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나름 스스로를 잘 다독이며 지내고 있었으며, 때때로 슬픔과 분노, 억울함에 어쩌지 못하는 순간을 견뎌내기도 했다.

그러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생의 행동과 말, 여전히 화해할 의지가 없는 태도에 긴 시간동안 분노했다. 아무리 다독여봐도 쉬이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실망과 포기에 다다르려고 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나에게는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는 아빠도 미워졌다.

이제 기다림은 그만하고 싶은데.......


툭, 힘든 마음이 튀어나왔다. 아빠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실 도와달라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알고보니, 아빠도 노력했다.

동생이 '어차피 전화해도 안 받을텐데, 뭐하러 하냐.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성질이 나서 싸울 거 같아서 대화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빠의 마음은 알겠으나, 나도 나대로 서운했다.

맨날 동생이 바빠서, 아프다니까 나중에 나중에 하시더니 결국엔 또 동생한테 쩔쩔매시는구나 생각만 들었다.

내가 아프던 말던, 전혀 고려하지도 않으면서....

싸우던 말던, 막막을 퍼부으면서까지 내 말을 제대로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반박만 하면서 싸울 땐 언제고 동생이 한 마디하면 핑계 대면서 가만히 놔두는구나.

늘 이런 식이었지. 그러니 동생이 더 그런 거 아닌가.

라는 원망의 눈덩이가 점점 커졌다.


결국 고민하다가 다시 대화를 했다. 그리고 아빠한테 나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실 동생과 싸웠다고 말씀하시면서 나한테 말하지 못한 동생이 한 말을 덧붙이셨다.

'누나가 개쓰레기 취급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어이가 없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던 어떤 감정이 훅 올라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가만히 있다가 말을 쏟아냈다.


"내가 개쓰레기 취금을 했다고? 화난 이유에 대해 말한 게 그게 그렇게 잘못됐어? 그리고 설사 내가 그렇게 했다고 해도 걔는 화나서 나한테 막말 다 하면서 나는 하면 안 돼? 설사 했다고 해도 내가 오죽하면 그랬을까? 걔는 나한테 연 끊자고 할 때도 오죽하면 그러면서 나도 오죽하면 그랬겠냐고."


그리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아니겠지 하고 넘어가서 그렇지. 개쓰레기 취급한 건 걔가 먼저였어!!! 걔 저번에 화났을 땐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엄마아빠가 왜 누나보고 예민하다 유별나다 하는지 아냐고 그러고 누나 같은 사람은 없다고 그러고, 지가 먼저 연락해서는 남친한테 누나같은 성격을 어떻게 만나냐 대단하다까지 말했어. 그리고 걘 항상 자기가 잘못해놓고 다 나한테 교묘하게 돌리고, 그러면서 나를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내가 뭐만하면 평소에도 신경 곤두섰다, 이해가 안 된다. 굳이 그러면서 자기랑 조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사람 무안하게 만드는데 난 뭐 그런 느낌 안 받은 줄 아나. 더구나 엄마아빠가 누나처럼 예민하게, 까다롭게 굴지 말라, 버릇없이 굴지 말라 뭐라해서 자기는 뭐 할 말도 못했다고 하면서 나한테 죄책감 심어주고, 쎄한 적 많았는데도 아니겠지. 동생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잠깐이라도 그렇게 생각한 나를 자책하고 그랬는데! 이번에 싸웠을 때는 내가 힘든 거 이야기하는데 하 참, 누나 아니다. 라면서 콧방귀끼고, 누나 말 쭉 들어보니까 내가 개새끼네 라면서 이야기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나 나쁜사람 만드는거잖아. 난 뭐 그럼 화나도 좋게좋게 말해야 돼? 처음엔 그랬어. 이번에 싸웠을 때도 니가 위로로 말한 건 알겠는데 라면서 내 입장 설명했다고 그런데도 거기다 대고 이해 안 되네 라면서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내일 통화하자고 해놓고 연락도 안 하고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다음날 내가 연락해서 걔 퇴근할 때까지 밤까지 기다렸어. 솔직히 걔 오후조면 오전에 해도 되는 거 뻔히 아는데도. 밥 안 먹었다해서 그거까지 다 기다렸는데 한다는 말이 할말 없다고 하는데, 내가 뚜껑이 열리고도 남지. 그 와중에도 엊그제였으면 좋게 필터 걸러서 이야기했을거다 하고 화낸건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최선을 다해야 돼? 거기다 대고 걘 그렇게 누나 말 들어보니 라면서 비꼬고. 난 중요한 사람 아니라고 했다가 말 바꾸고. 누가 개쓰레기 취급을 했는데."


그 말과 함께 그동안의 설움과 분노, 억울함, 배신감이 쏟아져나왔다.

먼저 사람으로서 존중 안 해준 사람이 누구고, 누나취급도 안 한 사람이 누군데.

항상 책임회피에 그걸 나한테 떠넘기고, 나를 몰아세우고, 죄책감 들게끔 만들고, 피해자코스프레 하는 거 다 느껴졌는데도 아니겠지 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싸움을 끝으로 그런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가면서도

부모님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였을까. 부모님한테 동생을 나쁜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동생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늘 항상 그런 식이다.

본인 감정만 중요하고, 정당하면서 상대 감정은 공감하지 않는 것.

본인 힘든 건 크게 생각하면서 상대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드는 것.

사과도 건성으로 해놓고, 상대가 안 받아주면 상대 탓으로 돌리는 것.

사과는 잠시. 다시 또 본인 신세한탄으로 본질 흐리기.

본인과 다른 성격이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나를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으로 대하는 것.

(신경 곤두섰다, 눈치 본다, 굳이?, 이해가 안 되네, 의미부여하지 마,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 악의가 없었다, 의도는 그런 게 아닌데 누나가 그렇게 들었다면 등의 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한테 전화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노력도 안 했으면서

안 받을텐데 뭐하러 하냐, 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한 것.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무 연락 없고, (아빠가 화나서 뭐라했을 때만 한 번하고 맘) 상견례 때 만났을 때도 아예 등돌리고 있었던 것까지 이게 정말 화해하고 싶은, 미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일까.

결국 화해할 의지도, 미안한 마음도 없다는 거였다.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하고, 화도 내가며 말했는데도 전혀 듣지 않았기에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다.

도리어 피해자 코스프레 했다.

누나가 개쓰레기 취급했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아빠앞에서 자신이 의지가 없다는 걸 그런 식으로 정당화 시키려고 한 것이고,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 거 아닐까.


그리고 나는 아빠한테 걔 입장에서 걔 성격에 누나편만 든다고 생각하겠네 라고 말하니

안그래도 그런 말 했다. 누나편만 든다고. 라고 하셨다.


그 말까지 들으니 역시나 편가르는 것만 생각하고 있구나 란 느낌이 들었다.


나였다면, 자식들이 사이가 그러면 부모가 나서서 화해 좀 하라고 하거나

내가 잘못해놓고 사과도 안 하고 있을 때 부모가 나를 꾸중했으면 서운하긴 하더라도 그렇게 편 이야기하면서 아빠는 내편이네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아빠가 전에 나에게 모든 걸 다 들었음에도 동생이 양쪽 입장 들어보라는 한마디만 듣고

나한테 이래서 걔가 그런 소리한거라고 소리 들었을 때도 동생편만 드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운한 게 아니었다.


누가 먼저 원인제공했는지 다 아시는 분이 그렇게 한마디만 듣고 훅 넘어간 것과

내가 말하는 건 다 예민하다 유별나다 부정적이다, 누나가 그렇게 생각해서 쓰냐 라고 하시면서

어떻게 동생이 말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늘 항상 정당하게 잘 이해해주는지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동시에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감정이 들었던 거다.


그런데 본인이 원인 제공해놓고 그렇게 편가르기로 생각한다니.


여러가지로 너무 화가 났다.

아빠는 직접 보니까 알겠다고 말하셨다.

나는 그것도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 다 보는 앞에서 나한테 어떻게 사과했는지 보고 충격받았다고 할 땐 언제고.

처음 본 것처럼 이야기하시다니...

늘 그런식으로 날 대해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조금 이해가 됐다.

동생도 자식이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겠지 라고 믿고 싶으셨던 거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불안했다.

늘 처음엔 내 마음을 알아주는가 싶다가도 결국 동생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그냥 내가 용서해주길 바라셨다. 그럴 때마다 억울했고 소외감이 들곤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는데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넘어간 적도 많았다.


또 그렇게 될까봐 불안했다.

또 그때처럼 이래서 걔가 그런 거라고 하실까봐.

또 소외감 느낄까봐.


혹시 진짜 내가 동생을 그렇게 취급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을 했을까

아니면 난 그런의도 아니었어도 동생이 듣기에는 개쓰레기취급으로 들렸을까

그랬을수도 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게 다르니.


그러면서도 동생도 나한테 그런의도가 아니었다 악의가 아니었다면서 상처주는 말도 하고 화나면 막말도 하면서 …

그러다가 또 자책하고….

계속 챗바퀴 돌듯 도돌이표였다.

공황발작도 다시 일어났다.

불안도가 급속도로 올라갔고, 또 무작정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다시 난 위축되었다.

다시 되돌아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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