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지마세요.

내 잘못이 아니다. 상담 종결.

by Eloquence

"기죽지마세요."


아빠한테 그 말을 전해들은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위축된 나로 돌아갔던거다.


상담사의 얼굴에는 속상함이 묻어 있었다.

공감을 왜 이렇게 못 해주냐 라는 말도...

어쨌든 나는 내 감정을 잘 설명한 것이지, 내가 동생을 그런 취급을 한 게 아니라고 하셨다.


계속 내가 하는 말에 자책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고 하셨다.

오히려 내가 화내고 맞서야 될 부분이지, 자책할 필요가 없다 했다.

전화해도 안 받을텐데 뭐하러 하냐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사과한 적도 없으면서... 라는 말과 함께,

사과를 했다고 해도 받아주는 건 용서하는 사람의 자유라고 하셨다.

그 말에 난 그래서 제가 더 화나는 거라면서 동생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다 그런데, 항상 그거때문에 더 화난다고 했다.


심지어 기분 나쁜 티 다 내면서,

상황모면하기 위한 게 다 느껴지는 사과에 본인 마음대로 하면서 그런 사과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해도 안 받아주기도 하는데....

안 받아준다고 내 탓하는 건 그 상황에서까지 나의 잘못으로 돌리고 책임전가하니 더욱 상처를 입었던 거다.


나는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 같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상담사는 더 속상한 말투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곤해하는 것 같다고 하니, 그건 가족들의 몫이라고 하셨다.


그냥 계속 참을 걸 괜히 우리 가족의 문제를 들쑤신 것 같다고 후회하는 내게 내가 참으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고 여태 계속 참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참냐고 하셨다.

내가 터트리지 않았으면, 누군가가 터트렸거나 엄마의 우울증이 더 심해졌거나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혹시 내가 말한 게 동생한테는 그렇게 들렸을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내말에 동생도 막말했다면서요 라고 하셨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을 했던 게 아닐까라고 하니 그럼 뭐 때문에 그렇게 느꼈냐고 물어보라 하셨다.


처음엔 단순히 내가 자꾸 그러니 물어보라고 하신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 잘못도 아닌걸 자꾸 자책하니 물어봤을 때 동생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서 확인해보라는 뜻 같았다.


여태 자기의심하지 않고, 긴장에서 내려놓고, 잘못할까봐 전전긍긍해하지 않고,

그저 잘못을 했을 때는 그때 인정하면 되고, 자책하지 않게 훈련해왔는데.....

상담사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상담사의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불안과 자책 그리고 위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때, 헤어나오려는 의지가 생기는 말을 들었다.


"계속 참으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어요. 40대에, 50대에, 70대에 터질 수 있어요. 할머니들도 여기 와서 울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초심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온 건 나중에 더 나이들어서 부모님 안 계실때, 터트려서 더 상황이 악화되는 걸 원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결혼을 미뤘던 이유 중 하나, 나중에 배우자나 내 자식에게 똑같이 할까봐 무서워서였다.

그때가서 터지면, 나의 배우자와 자식도 피해를 받게 될까봐 염려되서였다.

아이 낳으면 자기 자식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애한테 그러실 수가 있을까 하며 더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가족을 믿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동시에 전에 했던 상담내용이 생각났다.

이해는 되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는 말에 그건 별개의 문제고 가족이나 친척에게 사랑을 받고, 채워져야 마음이 좀 풀린다. 하지만 풀리는 데까지 1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최소가 3년이 걸린다. 빠르면 1년 걸린다. 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난 이미 많고, 큰 상처를 입은 상태고 그게 매우 오래됐는데 여기서 나 조차도 나를 몰아세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더 무너지는 일이 생기면 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는데 진짜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시 죄책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했지만.

그때 그 순간은 일단은 흐려진 판단력을 부여잡고, 빠져나가려고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상담 종결날이었다.


종결 취소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물론 나 혼자 컨트롤이 안 되거나 너무 힘들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종결을 하는 이유는 나에게 변화가 있었고, 훈련을 잘 해왔으며 상담에 의지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서 일상을 보내고 있고,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냐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안 좋았다가도 다시 좋아지기도 했다.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다.


지금, 모든 날들을 겪고 현재에 있는 내가 돌아보니

또 함정에 빠지고, 자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불안도가 심해져서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어하고,

경보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동생 일이 있은 후에도 공황발작이 오고,

이미 다 느끼고 있었고 머리로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물어봐서 확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려고 했다.

다시 중심을 애써 잡으면서 나의 감정을 잘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로 상담센터로 달려가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만약에라도 상담센터에 또 가게 되더라도 너무 절망하진 말아야지.

치료받고 다시 괜찮아질테니.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대단하다. 강하다. 용기있는 사람이다. 똑똑하고 건강한 사람이다.

부끄럽지만 그 말들을 떠올리며 지하로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안 좋은 상황에 놓여있고, 또 위축된 모습을 보면서도 종결을 취소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있지만, 실체 없는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오늘도 열심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