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제대로 마주하기. ing.....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들이면 필수적으로 하는 게 있다. Face ID이다. 새제품이 아니더라도 인식이 잘 안 되거나 불편함이 반복될 때, Face ID 및 암호에 들어가 재설정한다. 할 때는 매우 귀찮지만, 한 번 해놓으면 홈화면 잠금해제부터 앱 로그인, 결제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재빠르게 이용할 수 있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능이다. 여기서 Face ID 설정방법을 생각해보면, 얼굴 정면을 물론이고 원을 그리며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대충해도 잘 되는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그렇지 않았다. 대신 한 번 할 때 제대로 해놓으면 스마트폰을 스리슬쩍만 봐도 인식이 참 잘됐다. 그래서 처음에 할 때 대충하지 않는 편이다. 덕분에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보게 되는데, 평소에 그렇게까지 살피지 않으니 한번에 몰아 보는 셈이 된다. 낯부끄럽지만 원을 따라그리며 내 얼굴을 잘 들여다보면, Face ID 설정은 완료된다. 그리고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는 Face ID 설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Face ID 처럼, 내면을 요리조리 살피며 설정해야 많은 것들을 잘 해낼 수 있다. 이를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를 통해 깨달았다.
난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잘 몰랐다. 잘 안 다고 여겼던 건 틀렸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다고 해서 나를 잘 아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색안경 없이, 깊숙히, 다각도에서, 과거와 현재까지 ‘나’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스마트폰 Face ID 설정 기능에 안경추가기능, 대체외모 기능이 있듯이 내가 모르는 ‘나’, 인정하기 싫은 ‘나’, 새로운 ‘나’ 등 다양한 나와도 제대로 마주해야 하는 것도 필수이자 중요한 부분이었다. 즉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Face ID 처럼 입체적으로 '나'를 봐야 한다.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를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묻어두었던 과거의 나, 어린 나를 꺼내어 마주보았다. 색안경 없이 들여다보니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였고, 나의 상처들을 보듬어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끝나니 다음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갔고, 그 후부터는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가 처음보다 수월해졌다. 역시나 처음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
과거의 '나'가 있었기에 현재의 '나'가 있듯이 과거의 '나'도 어떤 모습이었더라도 그저 '나'였다. 치부가 아니라면, 애써 숨기려하기보단 쿨하게 인정하고, 반성하고, 성장하고, 상처는 똑바로 보고 약을 발라준다면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하는 시작이 된다.
객관적인 시선은 유지하되 사랑의 눈길로 스스로를 요리조리 살폈다. 현재의 '나'까지 모두 마주한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예상치 못한 난관이 나타났다. 당시에는 내가 괜히 '나'를 재설정하려고 했나 라는 후회가 들었다. 이제와서 보니, 원래의 '나'였다면 무조건 회피했을 거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을테다. 그러나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 과정을 지나온 나는 분명히 성장했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도망가지 않고 부딪혔다. 중심을 잃고 또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섰다. 지쳐서 삶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살 수 있었다. 난관이 나타난 건, 남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이는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 과정에서 놓친 것들이 있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외면하지 않았다. 덕분에 구멍들을 발견하여 채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나'와 제대로 마주하고 '나'를 재설정했다.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란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것을 해내고, 좀 더 나은 나로 성장하게 된다. 인간의 성장은 죽을 때까지 끝이 없듯이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에 엔딩은 없었다. 나이, 상황, 경험에 따라 가치관, 생각, 행동, 취향 등에 변화가 일어나므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100% 똑같을 수 없다. 특히 상대에 따라 잘 물들고, 그만큼 여러 면을 갖고 있으며 보고 듣고 느끼는 만큼 변화가 잘 일어나는 특성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더 그렇다.
따라서 끝없이 나와 제대로 마주하고, 성장해야 한다. 힘들 땐 잠시 쉬어가거나 퇴보하더라도 다시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죽을때까지 이렇게 어떻게 살아!! 라며 기권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죽는 순간에 내 여정이 눈앞에 필름처럼 지나갈 때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점점 나은 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한 인생 아닐까. 그러기 위해 '나'와 제대로 마주하고 성장하기, 즉 ‘나’를 재설정하는 일을 꾸준히 할 것이다.
혼자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가정이 있으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럴 땐 굳이 시간을 내서 하지 않더라도 걷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등등 짬내서 나를 들여다보면 된다고 본다.
고구마는 연속인데 사이다도 없고 해피엔딩은 물론이고 엔딩조차 없지만, 이게 현실 아닐까. 드라마는 아니니까. 그래도 때때로 드라마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다. 그런 순간을 만나면 환기하고, 필요할 땐 쌓아온 추억을 꺼내어 보고, 좀 더 나아진 나를 보며 칭찬해주면 되지 않을까.
'나와 제대로 마주하기'는 ing이다.
'나'를 설정하시오.
입체적으로, 깊게 들여다보십시오.
앞으로 사는 동안 지속적인 재설정이 필요합니다.
가끔 잊어도 괜찮습니다. 단 잊지 말고, 너무 늦지 않게 다시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