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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감동.

by Eloquence

산책이 하고 싶었다. 동네 한 바퀴가 아니라 큰 공원이나 산책로 또는 한강 같은 곳에서.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주변에 공원은 없었다.

그런데 중랑천이 있었다. 하지만 30분을 걸어야했다.

길치인데다 가는 길이 쉬워보이지 않아서 며칠을 주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내보기로 했다.


길찾기 어플에 의지한 채 중랑천으로 향했다.

퇴근시간대라 가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이윽고 중랑천에 도착했다. 성공이다.


KakaoTalk_20250601_175340385_01.jpg 직접 찍은 풍경. 날씨가 흐린데도 참 좋았다.
KakaoTalk_20250601_175340385_02.jpg 직접 찍은 풍경. 여유롭고 일상을 즐기는 이 분위기 좋다.



산책로를 거닐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구경하기도 하고

음악에 집중하기도 했다. 주변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거위 두 마리를 만나기도 했다.


산책로가 매우 잘 되어 있었다. 크고 쾌적했다.

뛰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걷는 사람, 축구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담소 나누는 사람 등등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워보였다. 그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한강의 분위기가 여기서도 느껴졌다.

행복했다. 그 순간이 감동이었다.


울컥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엄두가 안난다는 핑계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렇게 좋은 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 이런 곳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도.

이제 좀 있으면 더운 날씨와 벌레 때문에 또 안 오게 될텐데, 너무 늦게 왔다는 것에 대한 후회였다.


눈시울을 붉어지게 한 후회는 따로 있었다.

위치가 좋아 대중교통으로 어디든 다닐 수 있는데도 불안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럴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

비록 30분을 걸어야하지만, 이렇게 크고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알록달록한 조형물과 운동기구들이 있고,

여러 사람의 여유를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불안에 떠느라 갈 생각조차 못했다는 것.

이제 서울을 떠나야 하는데, 즐기지 못해서 미련이 가득하다는 것.

나중에 돌아보면, 어쩌면 가장 젊고 자유롭고 부러워할 시절일 수도 있는데 청춘을 다 날려버렸다는 것.


그런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나를 울먹이게 했다.


좋았던 시절을 너무 앞만 보느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행복한지도 모른 채로 보내서 후회해봤으면서

또, 후회할만한 짓을 저질렀다.


인생 헛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애써 참아냈다. 산책하다 난데없이 울면 실연당한 사람처럼 보일테니.


중랑천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어두울 때 혼자 가기엔 무리가 있으므로

어두워지려고 하는 찰나에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발걸음과 함께 헛되지 않았던 과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안 게 어디야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후회가 밀려온 와중에도 산책하면서 감동을 느꼈다는 거다.


산책로에서 나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언제 울먹였다는 듯이 내 얼굴은 환했다.


KakaoTalk_20250601_175340385_04.jpg 직접 찍은 거위. 가까이에서 거위를 본 건 처음이다.


조형물 같지만,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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