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 가득한 더운 공기와 한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공존하는 늦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힘든 시기인 데다 계절까지 타는 바람에 잠 못 이루던 아라는 휴대폰을 들어 SNS 어플을 열었다. 확인하지 않은 알림 메시지가 있었다. 방금 온 것도 아니었다. 알림 창이 잠금화면에 보이게 설정해 놓은 데다 꼼꼼히 확인하는 성격인 아라에게 놓치는 알림은 없다. 이상한 건 내용이었다.
[계정이 계정센터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비공개 계정으로 로그인 중이었기에 로그아웃을 하고 다시 앱을 열었다. 두 개의 계정 중 하나는 낯선 사람의 사진과 아이디로 바뀌어 있었다. 앞 두 글자만 제외한 뒤에만 바꿔놓은 아이디를 보고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로그인을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다. 비공개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계정추가 기능을 실행했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다시 로그아웃한 후, 낯선 사람의 프로필 사진으로 뜨는 계정으로 비밀번호를 찾기 기능을 이용해 봤다. 그러자 아라의 메일주소도 아닌, 처음 보는 이메일이 기재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미 그 주소로 인증메일을 보냈다는 문구가 떴다. 주소변경도 되지 않았다. 연락처로 인증메시지 받는 기능도 해봤지만, 인증문자가 오지 않았고, 어쩌다 와서 입력하면 이미 입력했거나 입력시간을 초과했다는 창이 떴다.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입력했으며 입력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은 달아올랐다.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애써 외면했던 불안이 아라를 삼켜버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sns 회사 측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사람은 아라가 그동안 올린 185개의 게시물을 통째로,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프로필에 기재된 이름과 소개글, 자신감 있어 보이는 프로필 사진. 그 모든 것은 아라라면, 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아라가 그랬던 것처럼 본인의 사진이 아닌, 사물이나 풍경으로 바꿨다. 심지어 소개글은 아라의 문체와 닮아 있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문맥을 보면, 닮은 게 아니라 흉내를 냈다는 표현이 맞았다. 그동안 아라가 차곡차곡 쌓은 게시물은 인간 ‘한아라’ 자체였다. 살았던 집들, 문화예술 리뷰, 사유, 추억의 순간들 등 일상부터 개인적인 정보까지 아라의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심지어 장문의 글과 에세이가 있는 링크가 첨부된 게시물도 있었다. 모든 게시물에 담긴 그녀만의 시야와 사유는 긴 시간의 노력으로 피운 열매들이었다. 몇 줄의 글과 사진에 담긴 애정과 정성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사람들과의 친목을 위해 만든 sns가 아닌, 아라의 재산과 기록 창고로 사용한 계정은 특별했다. 긴 시간 동안 모은 재산을 그 사람은 하루아침에 쉽게 가졌다. 팔로워도 2~3명 밖에 안 되는 사람의 것을 왜 가져간 걸까. 설마 그 사람도 창작자일까? 탐나서 뺏은 걸까? 자신의 글을 ‘탐나다’라고 표현하기 낯간지러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밖에 없었다. 분노가 집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 창작자라면, 게시물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고도 남을 터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뺏거나 꾸며낸 실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더구나 내 문체를 흉내 낸 소개글과 그 사람이 새로 올린 게시물 글을 보면 길게 못 갈게 뻔했다. 이 사실을 안 재민은 화가 나서 그 사람에게 남의 것을 도용하면 좋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답은 외국인인 체하며 정신과에 가보라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프로필 이름을 한국이름에서 영어이름으로 바꿨다. 여전히 신고를 해도 해당사항이 없다는 답만 받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인터넷 접수를 하고 경찰서에 방문했다. 하지만 담당과가 바뀌었다는 말과 함께 다른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친절히 안내해 줬지만, 아라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풀이 죽었다. 아라는 경찰의 표정에서 ‘별 것도 아닌 일로 왔네’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이윽고 담당과에 도착했다.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말도 잘 못하고, 몸은 굳어버렸다. 다행히 담당 경찰들은 어떤 생각을 하든 겉으로 티 내지 않고, 매너 있는 태도를 보였다. 굳어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그러나 위축된 아라의 자아는 그대로였다. 조사가 시작되고, 그 경찰은 예의 있고, 성의 있게 조사에 임해주었다. 아라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경찰에게 고마웠다. 아라는 당연한 일에 고마워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두 질문이 아라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에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당연히 가치가 높으니 여기까지 왔겠지, 유명한 사람의 콘텐츠만 가치가 높다는 건가. 긴 글을 쓴 링크가 첨부된 게시물도 있는데, 그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장문의 리뷰와 에세이까지 그 사람이 표절한다면? 혹은 애매하게 따라 한다면? 그래서 아라의 기회를 그 사람이 가로챈다면? 이 모든 건 손해였다. 그때 가서 수습하면 늦다. 그러나 아라는 따지지도 못하고 바보같이 대응하고 말았다.
“엄청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 대답은 그렇게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 뱉은 말이었다. 질문 속에 담긴 ‘이게 뭐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그러세요?’라는 메시지가 그대로 아라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라의 얼굴에 바보같이 대답한 자신을 원망하고 있음이 투명히 드러났다. 잔뜩 위축된 아라는 그 사람의 행위들을 다 말하지도 못했다.
서울청으로 사건이송됐다는 문자를 들여다보며 기다렸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4개월 후, 수사중지한다는 우편물이 왔다. 누가, 왜 그랬는지 어떤 것도 듣지 못한 채였다. 그 후, 어딘가에 글을 업로드할 때마다 불안했다. 재능을 알리려면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누구나 도용하는 현실 속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1년 후, 저작권 공모전을 발견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쓴 저작권 관련 글을 읽게 됐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도 어디든 글을 공개하기 주저하거나 공개하면서도 불안에 떨고 있었다. 글뿐만 아니라 사진까지 도용당했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반면, 상업적으로 사용하지도 않고 변형하지도 않았는데 내용증명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누군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누군 받는 이 법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생각했다. 아라는 위키백과에서 저작권 침해를 검색했다. 아라의 눈에 들어온 건 ‘고유성이 없는 것, 단순한 사실’과 ‘보호를 받지 못한다’였다.
‘개인의 사유가 단순한 사실도 아니고, 고유성이 있는 건데.’
‘내 글을 왜 돈 내고 저작권 등록해야 돼?’
‘공모전에 내고 싶어도 소재를 뺏길까 봐 못 내겠다는 의견도 봤어. 이런 식으로 놓친 인재가 얼마나 될까?’
‘인터넷의 글쓰기 문화가 대중화되고 있는 만큼, 저작권 보호의 기준도 변화가 필요해.’
‘약자들은 보호를 못 받고 있어.’
그동안 쌓인 불만과 함께 사명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약자 중의 한 사람이자 저작권 보호가 필요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라처럼 약자이자 서민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만다. 아라에게 그 공모전이 필요했다. 그런다고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난다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