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리뷰

어느 독자의 일기

by Eloquence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느낀 바를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나온 자막을 본 순간, 참았던 감정이 튀어나왔다. 슬픔, 분노, 참담함이 섞인 감정이었다. 울컥하는 장면들이 숱하게 등장해도 잘 참았는데 역사 기록의 문장을 옮긴 자막을 보고 울고 말았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관객이 ‘실화를 바탕으로’라는 문구가 들어가면 더 관심을 가진다. 첫 단락에 적은 최근 경험까지 미루어보면, 인간이 남긴 기록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바람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는 그 힘에 대하여 섬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미술에세이로 그림과 화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덤덤하게 썼다. 문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술술 읽히는 데다 미술을 쉽게 풀이해 누구든 접근하기 좋다. 저자 허나영은 작품과 작가에 얽힌 이야기에 역사적이나 문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심리치유의 방안으로 본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자신의 경험이나 당시 처한 상황과 연결해 작품을 바라보았고, 이를 솔직하게 표현했다. 미술에세이라는 장르는 익숙하지만, 접근방식이 새로워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책을 읽었다.


저자는 안개 낀 날, 바람이 부는 날, 구름 가득한 흐린 날, 비 내리는 날, 서리가 내리는 날, 폭풍 치는 날, 눈 내리는 날, 별이 빛나는 날, 해가 뜬 맑은 날로 자신의 경험과 내면을 날씨로 표현했다. 또 그 날씨와 닮은 작가의 내면 또는 작품을 소개했다.


책 소개는 어느 정도 한 것 같으니, 이제부터 저자의 방식을 따라 해보려 한다. 그동안 문화예술을 향유한 후, 리뷰를 쓸 때 나만의 틀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틀에서 벗어나 쓸 것이다. 저자가 책에 담은 의도대로 책을 읽을 때부터 리뷰를 쓸 때까지 에디터의 시선과 역할을 내려놓았다. 그저 평범한 독자의 시선에서 읽은 후 사유한 것들을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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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떨어져서 쓴 것 같은 이 책 덕분에 저자의 시선을 저 멀리 두고, 오로지 내 시선에서 책에 담긴 작가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확신을 갖게 됐다.


그동안 읽은 책에서의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평가는 저자의 시선에 따라 달랐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쓴 것들을 보면서도 그를 만나면 만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는 감싸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작가를 내가 좋아하게 된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면서 확신이 생겼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덤덤히 쓰인 글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반 고흐의 처지와 내면을 구름 낀 날의 날씨로 비유한 점이 크게 도움 됐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해 열등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꿋꿋이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반 고흐는 매우 혼란스러웠을 테다. 더구나 그의 예술마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반 고흐는 평생을 외로워했다. 외로움과 상처를 예술로 승화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지쳐갔다. 그럼에도 죽는 순간까지 자신만의 예술을 놓지 않았던 내면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의 예술은 죽은 후에야 인정받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가 비유한 구름 낀 날처럼 내내 흐렸던 그의 삶이 참 안타까웠다. 그런 삶을 살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갔던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2.jpg 개인 소장 중인 전시회 굿즈 (포스터)


미술의 세계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샤갈의 전시회였다. 미술 지식은 제로인 데다 전시회 관람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샤갈의 작품에 금세 몰입했다. 메시지 파악도 못 하고 어떻게 감상하면 되는지 감도 잡을 수 없었지만, 그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었다. 어찌 보면 그때가 가장 순수하게 작품을 바라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샤갈의 전시를 다시 만났고, 그곳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샤갈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을 열어준 특별한 화가라는 이유만으로 샤갈을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만나면서 단순히 ‘처음’에만 집착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샤갈을 좋아하게 됐다.


마르크 샤갈은 눈 날리는 날의 날씨로 분류됐다. 부제는 ‘상처가 눈에 덮이고’였다. 샤갈은 비텝스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곳에서 아내 벨라 로젠펠트를 만났다. 고향을 떠나 미술 공부를 하던 시기에도 고향을 자주 방문했을 정도로 그의 고향을 향한 사랑은 매우 컸다. 더구나 그곳에 아내 그리고 딸과의 추억까지 있으니, 그에게 비텝스크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을 테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아내와 딸과 함께 비텝스크를 떠났고,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과 친구들은 학살당했고, 통제는 예술에도 퍼졌다. 샤갈은 혁명과 전쟁 속에서 살아 남았지만, 아내 벨라를 먼저 보내는 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샤갈의 그림은 늘 밝았으며, 작품마다 비텝스크의 모습이 등장했다.


과거를 미화하거나 애써 잊으려 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기억을 수용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시 숨 쉴 여지가 생긴다.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이듯이, 그 아래 묻힌 과거를 부정하지 않은 채 현재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바람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p.173


그에게는 상실감과 그리움이라는 상처가 있었다.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피한다고 해서 좋아질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상처를 마주하고, 예술로 표현했다. 상처의 대상을 작품에 그려 넣으면서 매우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그는 끝까지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미화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보았다. 그 덕에 오히려 늘 밝고, 평화로워 보이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마르크 샤갈은 예술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그 누구보다 우월한 사람이었다. 그 기운이 그림에 담겨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관람객을 압도하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에 내가 홀렸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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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관람하다 보면,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었다. 그 감정이 공감과 동질감이 되어 그림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의 트라우마부터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를 모두 담은 기록을 읽으면서 나도 솔직해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와 솔직한 감상평을 공유하며 진솔한 대화를 했다. 혼자 책을 읽지만, 서로 눈을 보며 대화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감정은 늘 한결같지 않았다. 날씨처럼 갑자기 변하고, 서서히 변하기도 했다. 늘 평화롭길 바랐지만, 현실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의 태도는 참 변덕스러웠다. 힘든 시기에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대다가도 갑자기 일어서곤 했다. 그럴 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또 힘든 일을 겪으면 다시 물에 빠졌다. 깨닫고 변화되었던 부분도 다시 잊어버리고 퇴보했다. 그러다가도 그분이 오신 것처럼 갑자기 잊었던 깨달음을 떠올려 다시 전진했다. 그런 내가 모순적이고,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그런 태도가 다시 보였다. 추우면 더울 때가 그립고, 더우면 추운 날씨를 그리워하는 인간의 심리처럼 내 감정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었다. 그토록 심하게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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