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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이 뚜렷한 아티스트들의 모임 - 컬러인뮤직페스티벌

색이 뚜렷한 아티스트들이 모이면, 무지개가 뜬다.

by Eloquence

(문화예술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초대권을 받아 관람 후 느낀 바를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사춘기 시절, 누군가의 팬이 되면서 한동안 좋아하는 하늘색을 두고도 펄레드에 더 눈길이 갔었다. 심지어 ‘이건 그냥 레드가 아니라 펄이 들어간 특별한 색’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잔잔한 펄이 들어간 빨간 풍선은 가까이에서 봐도 예쁘고, 멀리서 봐도 확 튀어서 존재감이 컸다. 음악에 맞춰 살랑대는 풍선은 펄로 인해 반짝였다. 펄레드라는 색은 기획사에서 무작위로 정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랜덤일까? 내가 좋아하는 그룹과 펄레드가 묘하게 어울리는 걸 보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다른 가수를 보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색으로 정해지는 걸 보니 단순히 아티스트의 이미지만 염두하고 정한 건 아닌 듯 했다. 그럼 무슨 기준으로 아티스트의 색이 정해지는 걸까? 오래된 의문이 이제야 풀렸다.


뮤직페스티벌마다 주제가 있는데, 얼마 전에 다녀온 ‘컬러인뮤직페스티벌’은 컬러가 주제였다. 컬뮤페를 향유하면서 아티스트의 고유 색은 가수의 이미지 하나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음악세계, 곡의 분위기, 아티스트의 기운을 모두 고려하여 선택한 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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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인뮤직페스티벌’이 열린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 도착했다. 영종도라는 섬에 있어서 낯선 여행지에 들어선 듯했다. 여느 뮤직페스티벌과 다른 느낌에 설렘이 증폭됐다.


관객석은 스카이블루와 그린존이 있었고, 그린존안에는 스탠딩존과 피크닉존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름처럼 무대는 컬러풀했다. 아티스트 또는 곡에 따라 조명과 영상에 연출된 색이 바뀌었다. 스탠딩 존에 서 있으면, 내가 있는 곳까지 그 색으로 물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토요일에는 잔나비, 크러쉬, 이소라, 규현, 이찬혁, 우즈, 권진아, 페퍼톤스, 송소희, 안신애가 출연했다. 춥고, 날씨가 안 좋은 상황이라 공연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모두 프로답게 완벽한 무대를 보여줬다.



핑크빛의 로맨틱한 기운을 가진 크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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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로 더욱 이름을 알린 크러쉬는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 남자다운 외모와 상반되는 로맨틱한 보이스와 감성은 반전 매력이었다. 날씨가 우중충했는데도 크러쉬가 나오는 순간 하늘은 핑크빛으로 바뀌는 듯했다. 실제로 강풍과 비가 잦아들고, 햇볕이 내리쬐어서 신기했다. 마치 주인공 남녀가 데이트하는 장면의 날씨 같았다.


비바람에 덜덜 떨면서 푸드존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크러쉬가 나온 순간 그의 노래가 얼어붙은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 같았다. 마침, 음식을 거의 다 먹었을 때라 서둘러 뒷정리하고 스탠딩존으로 달려갔다. 멀리서든, 가까이에서든 변함없는 크러쉬의 성량과 실력은 대단했다. 그의 노래를 실제로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던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내 주위로 벚꽃이 날리는 듯했다.



이찬혁 그 자체가 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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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의상과 여유가 넘치는 자태로 이찬혁이 등장했다. 악동뮤지션을 좋아하지만, 실험적인 음악을 보여주고 있는 그이기에 내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다. 무대의상부터 마이크를 잡는 폼 그리고 음악 세계까지 강렬한 매력이 새빨갛게 물든 무대와 찰떡이었다. 그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색이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찬혁’ 하면 레드가 떠오를 것 같다.


무엇보다 의아했던 점은 내가 그의 음악 세계에 스며들었다는 거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관찰만 하던 내가 몇 소절만에 신기함과 감탄의 눈길로 바라봤다. 정말 ‘와’ 입 모양을 한 채 넋 놓고 바라봤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 나는 완벽히 적응하여 리듬에 맞춰 어깨를 살랑였다.


독특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pop 분위기도 좋았지만, 새로운 시선이 느껴지는 가사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한 곡이 끝나면 철학책 하나를 읽은 듯, 생각과 시야가 확장됐다. 특히 멸종위기사랑과 파노라마의 가사는 심금을 울렸다.


이찬혁은 새로운 음악 세계를 연 아티스트였다. 몽환적이면서도 귀에 탁 꽂히는 멜로디, 짙은 농도가 느껴지는 음악 스타일, 사유할 거리가 풍부한 가사, 리듬을 가지고 노는 듯한 그의 몸짓에 나는 완전히 빠졌다. 그가 다시 보였다.



하늘빛의 맑은 음악을 보여준 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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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30대 중반인 사람에게 추억의 아이돌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2NE1, 소녀시대다. 나는 동방신기의 팬이었고, 동방신기와 친한 슈퍼주니어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남자친구의 친구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등장하자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내게 규현은 시니컬한 성격과 직설적인 화법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 팬들을 대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다정해서 놀랐다. 더구나 그의 음악까지 반전이었다. 부드럽고 편안했다. 목소리와 음악 스타일이 매우 맑았다. 맑은 하늘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과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였다. 왜 팬이 많은지 짐작이 갔다.



보라색처럼 우아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음악의 소유자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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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라디오이며, 이소라의 FM음악도시였다. 혼란하고 외롭고 답답했던 유년 시절을 어루만져 주었던 아티스트도 (동방신기 다음으로) 이소라였다. 당시에 밤마다 주파수를 맞추어 책상에 엎드린 채로 라디오를 듣다가 컴퓨터로도 들으며 시대의 변화를 함께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따스한 감성과 정이 느껴지는 dj 이소라를 좋아했다. 심야 라디오 그리고 포근한 분위기의 프로그램, 이소라 이 세 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이소라의 FM음악도시’ 프로그램의 팬이기도 했다. 아직도 이소라의 음악을 들으면 괜스레 몽글몽글해지고, 울컥한다.


이소라의 공연을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크리스마스에 콘서트를 관람했었고, 이번에는 뮤직페스티벌을 통해 그녀를 만났다. 이소라의 색이 워낙 뚜렷하고, 연륜이 느껴져서 재즈페스티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리송하면서도 궁금했었다. 그때 재즈페스티벌에는 갔었지만, 내가 참석한 날에 나오는 게 아니라서 내심 아쉬웠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 뮤직페스티벌에서 이소라를 만날 수 있었다. 직접 느껴보니, 이소라‘도’ 뮤직페스티벌과 참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우아하며, 삶과 인간의 깊이가 잘 묻어나는 색이 보라색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그리고 음악으로서도 연륜, 우아함, 깊이를 가진 이소라와 잘 어울리는 색이다. 인간 보라색이다.


그녀 특유의 인류애와 따스함, 여유, 깊이 그리고 우아한 분위기는 공연 내내 넘쳐흘렀다. 여리고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비해 단전에서 나오는 듯한 깊이 있는 음색과 실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졌다. 눈을 감고 관람하기도 하고,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노래에 귀 기울였는데 공연 내내 소름이 돋았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현장에는 고요함이 흘렀다.



세상이 초록 물결로 물드는 한여름 같은 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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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는 뮤직페스티벌의 단골 아티스트이고, 나는 단골 관객인 만큼 잔나비의 공연을 본 경험이 꽤 있다. 그런데도 질리지 않는다.


잔나비의 곡 중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처럼 그들은 초록을 거머쥔 밴드였다. 그들의 음악스타일은 생기 있고 톡톡 튀며, 진중하다. 이번 앨범의 곡들에는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졌다. 가사는 청춘 또는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어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다. 이번 뮤직페스티벌에서의 잔나비 공연을 보면서 음악 세계 뿐만아니라 그들에게서도 초록빛을 보았다.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물든 한여름의 풍경과 같았다. 뜨거운 햇살 같은 열정, 푸릇푸릇한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잔나비의 공연 직전부터 다시 한여름의 태풍처럼 바람이 불고, 장마처럼 비가 내렸다) 잔나비의 공연을 보고 나면, 생기가 돋고 힘이 샘솟는 것 같았는데 그 이유가 그들이 뿜어낸 기운 덕분이었다.


잔나비는 여전히 관객을 능숙하게 리드했다. 노래에 맞춰 앉았다가 일어나는 운동을 시키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관객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대담한 면도 그대로였다. 내가 잔나비를 처음 봤을 때 이후로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잔나비는 한결같았다. 변한 건 그때보다 올라간 인지도와 더 깊어진 음악과 가사밖에 없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뮤직페스티벌 같았던 컬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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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종도라는 장소에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로비를 드나들기까지 하니, 여행 온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공연을 보는 게 얼마나 특별한지 알기에 컬뮤페를 즐기는 내내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재입장과 파라다이스시티 로비를 드나들 수 있는 점은 큰 메리트였다. 푸드트럭으로 성에 차지 않을 때 호텔 내의 식당을 이용하기 좋았다. 강풍과 비를 피해 호텔 로비에 있는 디저트류를 먹기도 하고, 작은 전시회도 보며 몸을 녹였다.


공연장에 화장실이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관객 수가 많다 보니 부족했는데 호텔 로비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호텔을 왔다갔다 하면서 자연스레 파라다이스시티에 관심이 생겼고, 나와 일행은 다음에 해외여행을 하거나 영종도에 올 일이 있으면 이곳에 묵어봐야겠다고 말했다. 공연 향유와 호텔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마케팅으로써도 장소가 좋다고 생각했다.


뮤직페스티벌의 주제가 컬러인 만큼, 아티스트가 자신의 고유 색에 집중하여 공연한 것처럼 관객도 ‘나’다우면서 서로를 배려하며 공연을 향유했다. 동시에 여행 온 기분을 내며 뮤직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어서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트인사이트 : https://www.artinsight.co.kr/

원문보기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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