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수업을 듣고 과제물이 어렵고 기말은 내용이 많네
온라인강의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오프라인수업이 개설이 된다. 그 날은 회사에는 휴가를 내고 아이의 등하원은 남편에게 부탁하여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학습관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이것도 사실 한 학년에 3과목씩을 신청한 내게 원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 특별한 날에는 교과서와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배낭에 넣고 버스를 타고 나섰다. 이런 장면이 스스로도 너무 신선했다. 회사일을 하면서 통으로 하루에 9시간씩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지식을 그대로 듣는 일은 몇 번 없다. 해외 컨퍼런스를 가서 듣거나 하는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없다.
처음 듣던 날 놀랐던 것은, 그새 손가락 굳은 살이 사라져서 하루 내내 글자를 좀 썼다고 오른쪽 세번째 손가락의 마디가 아팠던 점. 생각보다 법학과 동기들은 나잇대가 있어서 '나이들어 공부하기 어렵다'라는 문장 자체를 머리에서 지워야할 것 같다는 생각. 분명히 여러 사정으로 잠을 길게 못잤는데도 듣는 내내 졸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놀라움. 모든 걸 떠나서 그냥 손가락이 매우 아팠다. 대학교 때는 고등학생 때 형성된 굳은살이 고통을 잘 삭감시켜주었던 것인지.
기억이 미화되어 과거라서 그런 것일 수 있지만, 과거의 나는. 그러니까 2010년 전에 써내었던 레포트들은 페이지수가 10장이든 15장이든 채워서 제출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회과학 혹은 인문학의 레포트를 제출할 때, 관련한 논의에 대한 정리와 자료조사, 그리고 자신의 의견까지 잘 배합하여 내는 건 꽤 수월했었다. 그리고 나서 오프라인 수업 이후 과제물 주제를 받았을 때, 대체로 A4 1장 혹은 3장 내외로 서술하라는 것을 보고 '뭐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 사이 내가 달라진 것인지 주제가 달라져 쉽사리 말을 못하는 것인지 한 줄 쓰는데 고충이 생겼다. 일단 한 줄을 쓰면서 그 내용이 신뢰할만한 내용인가에 대한 의문이 괴롭힌다. 말이 되는 문장인가, 문장 자체가 읽히기 쉬운가, 근거는 어디 있게 말하는 건가, 내가 본 원본글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로 베껴쓴 것은 아닌가, 불필요한 단어가 들어가있지는 않은가 하는 검열을 거치다보니 채 A4 한 장을 채우지도 못한 채 파일을 닫았다 열었다한 적이 많았다. 사견을 함부로 넣으면 안된다는 제약도 있지만, 직업병도 한몫했다.
교과서 내용만으로 혹은 강의 내용만으로는 도무지 분량을 채울 자신도 없고 그대로 베껴쓰기 싫다는 생각이 커서 관련 주제를 논문검색에서 찾아 여러개를 보면서 나머지 공부를 시작했었다. 그러다 걸리는 학위논문들은 분량이 너무나 너무해서 다 읽고 필요한 내용을 다시 이해하고 써보면서 한 단어 한 단어 채워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라고 주제를 6개씩 주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읽다보니 논문을 읽을 때 심적 부담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파일을 열고 당황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게 된 과제물 작성.
그렇게 작성을 해서 칼같이 분량을 지켜 내고 난 이후, 기말이 남아있었다.
중간시험이 있으면 기말때는 중간 이후의 내용에 대해 학습을 하면 되지만 중간시험이 없다보니 15강 전체 내용을 통으로 봐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과목이 6개. 심지어 봐야할 법률조항도 많고 당장 일도 많다보니. 암울해졌다. 특히나 원래는 새벽시간대에 홈트를 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 시간을 깎아서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앉아있는 시간이 길고 몸을 안 움직이다보니 바로 몸에서 반응이 왔다. 어지간히 공부하는 자세가 안 좋았나 보다.
안식휴가를 쓸게요. 딱 2주만.
3년 근속 시 1달의 휴가를 주는 제도가 있어, 이걸 활용하기로 했다. 이미 쓸 수 있는 건 작년부터였지만 쓰고 해외여행을 갈 상황도 (코로나19와 육아시기) 아니어서 그냥 묵혀두고 있던 휴가였는데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2주를 똑 짤라서 휴가제출을 하고 잠시 낮시간에 공부+발레+공부, 그리고 하원 이후 육아에 전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섯 과목 중 세 과목을 그 시기에 최대한 파악해두기로 정하고 시간을 보냈다. 휴가를 한 달이 아니라 그 절반으로 했던 이유는, 한 달이나 시간을 주기에는 스스로 쳐질 가능성도 있고, 한 달 씩이나 자리를 비우려면 인수인계 문서 작성을 하고 협업자에게 교육을 해야하는데, 당시 내가 맡은 과제를 그냥 잠시 홀딩해두고 쉴 수 있는 기간이어서 였다. 남이 쉬는 2주는 체감상 짧게 흘러가지만 한 달은 또 너무 길다보니. 또 혹시 모르지. 2학기때도 남은 2주를 써야할 수 있으니 아껴둬야했다.
그 사이 상법기초, 민법총칙, 채권총론을 빠르게 정리해가면서 나머지 과목은 살짝 미뤄두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멀티태스킹이 안되니까 사법 영역을 먼저 해두고 다른 걸 생각하자, 로.
그렇게 휴가를 털어서 공부를 하고 다소 안정을 찾고 난 이후 6월 시험을 두 차례에 걸쳐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