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8년 전 어느 날, '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올리는 콘텐츠로 밥벌이를 하는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야겠어!'라는 결심을 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준 '한 사람'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동굴을 찾고 있었을 때 나타난
8~9년 전 그때 당시 나는 동굴을 찾고 있었다. 게임 분야로 출발한 회사는 웹서비스 분야로 확장, 본격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야구단도 창단했으니, 전 국민이 아는 회사가 되었달까?
다니기 좋은 회사, 복지도 좋았던 그 회사를 '내 것', '내 브랜드'를 해보기로 하고 퇴사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지자 당혹스럽기조차 했다.
승승장구하는 소식만 전해오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만 영원히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린아이 육아라는 큰 덩어리 일이 있었지만, '내 일'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막연히 블로그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계획을 촘촘히 세우고 시작하는 편이었지만, 블로그는 시작해서 나쁠게 하등 없어 보였다. '기록의 힘은 세다' '기록은 오래간다'는 걸 유년시절 경험으로 톡톡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했는데,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블로그 이웃(=내 블로그를 구독하는 사람들)도 적었기 때문에 댓글도 거의 없었다. 허공에 말하고 허공에 유머를 날리고 헛헛한 웃음을 짓는 일. 이 일을 매일 지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당시 블로그에도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그때 당시 용어로 '파워블로거'들. 몇천, 만 명 이상의 이웃수를 보유하고 포스팅을 올리기 무섭게 많은 공감과 댓글이 달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 나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유모차에 태우고 집에 가는 길에 집 근처 카페에 들른다. 아이가 낮잠이라도 들면 그날은 횡재한 날이었다! 유모차에서 편안하게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포스팅을 했다.
숨어있던(?) 내 블로그를 구독해줄 이웃을 찾아 항해를 떠나기도 했다. "1일 50명의 이웃을 추가하겠어!" 결심하고 실행했던 날들이었다. 마치 이 카페를 떠나면 블로깅을 못하는 것처럼, 아이가 깨면 블로그가 닫히는 것처럼, 집에 가면 블로그에 접속을 못하는 것처럼. 그 짜릿한 한 시간을 매일매일 꽉꽉 채워 썼다.
그러다가 한 블로거를 알게 되었다. 벌써 이웃수가 5~6천 명은 되었다. 쌍둥이 어린 딸을 키우는 엄마인 그녀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단지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종종 자신의 말로 하체 사이즈는 꽉 찬 66, 곧 77을 향해 간다고 하는데, 아니 어디가 66이고 77이란 말이냐! 내 눈에는 한없이 단아하고 예쁘고 야무져 보였다.
그녀가 좋았던 건, 내 취향의(?) 외모와 내 취향의 인테리어, 홈카페 소품들을 셀렉하는 그녀의 안목에서부터였지만 정작 킬링 포인트(killing point)는 그녀의 털털하고 걸걸하기마저 한 유머 코드 때문이었다.
입맛이 없을 때 조차도 사그라들지 않는 '이 죽일 놈의 입맛'에 대한 묘사를 할 때라든지...세상 댄디하고 다정해 보이는 남편분을 두고 '우리의 전우애 변치 말자'라고 할 때라든지...
예쁘게 하고 나와서 브런치 카페에서 찍은 사진에 설명으로 '여러분, 저 지금 비상이에요 급 바지가 작아져서 후크하나 풀렀어요, 저 지금 웃어도 웃고 있는 게 아니에요'라고 과식을 tmi 표현할 때라든지...
(이런 묘사에서 같은 여자로, 엄마로, 얼마나 깔깔거리고 웃었던가!)
그러한 캐릭터를 난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랜선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호감이 갔다. 자꾸 블로그에 들어가 그녀의 글을, 일상을, 취향을 들여다보며 맞아, 맞아 나도 그랬었지- 하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포스팅이 뜸해지기라도 할 때면 궁금해서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님, 혹시 어디 아파요?" 며칠 뒤에 포스팅이 올라오면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었다.
그러다 그녀가 바잉 하는 옷과 소품을 사기 시작했다. 그녀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었으니까. 어떨 때는 그러기 위해 다른 소비를 줄이고 돈을 모으기도 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산 옷과 액세서리들은 두고두고 후회가 없었다. 이전에도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왔지만,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여도 세탁을 하면, 한철이 지나면 후져서 못 입게 되는 옷들이 많았다. 그러면 그 샵에서는 잘 안 사게 된다.
그런데 그녀의 상품에는 그런 점이 없었다. 해가 지나도 계속 꺼내 입기에 무리가 없었다. 나는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겠지. 그녀의 사업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생각을 했다. 소통을 하는 척하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빠지는 여타의 블로거들과 그녀는 다르다. 그녀의 소통은 찐이다. 겹겹이 덧칠해서 본질이 가려진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도... 그런 소통하는 블로거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점차 이웃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자신은 없었다. 내 모습 그대로 소통을 이어갈 자신. 그런데 '그 방법도 가능해요'라고 말해주는 한 발 앞서 나간 롤 모델을 본 것 같았다.
그녀를 지켜봐 온지 7~8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놓지 않았다. 플랫폼은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갔지만, 선을 넘은 듯 넘지 않은 듯 끈끈한(?) 소통은 7~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여러분, 제가 언제까지 옷을 만들고 여러분께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글을 남겼더니 한 분이, '**님 나중에 할머니들 경보할 때 신는, 왜 푹신푹신한 신발 있죠, 그런 것도 소개해줘요,
'우리가 더 나이가 들면 요실금 팬티 그런 것도 팔아주세요. 뭐든 오래오래 함께 해주세요'라고 해서 눈물 나는 줄 알았잖아요. 저 어디 가지 않을게요. 그냥 지금 이렇게 나이 들면 드는 대로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그녀의 말은 어느덧 내 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저 말이 내가 쓴 글에서 한 말인지, 그녀가 한 말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치열하게 콘텐츠를 만들고 쇼핑몰을 운영하고 강의를 하다가도 키득거리고 싶으면 그녀의 글과 사진을 보러 간다. 그렇게 3분 딱 쉬면 감성이 충전되는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내 콘텐츠가 내 플랫폼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래본다. '저도 엘슈가님 글을 보고 사진을 보고 영상을 보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자주 웃고 가끔 울었어요.’ ‘늘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던 날들에도 희망을 건져 올렸어요.'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엘슈가님, (그럼에도)사라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주어서 고맙다’ 말해주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 날들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콘텐츠 생산자로 소통하며 밥벌이를 해야겠어 라고 결심하게 해 준 그녀도, 나도, 이 판에서 참 즐겁게,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끝-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한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전 글 [오래가는 콘텐츠의 비밀 #07화]
를 먼저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https://brunch.co.kr/@elsugarlife/18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마음을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엘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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