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카페에서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

by 엘슈가

오늘은 제가 연재하고 있는 [오래가는 콘텐츠의 비밀] 일곱 번째 글을 올려 보려고 합니다. 지난 6화에서는 엄마사업가인 제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남들보다 느렸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오늘은 콘텐츠 생산자로서도 왜 남들보다 느리게 콘텐츠를 만들어 내곤 하는지 이야기 해보려고 해요.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콘텐츠 생산자로 9여 년을 지나 보니 결과물이 다를 뿐 사업과 콘텐츠가 상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하늘이 예뻤던 날, 나는 무엇을 잊었었나

날씨가 좋고 하늘이 예뻤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저녁때 지인이 집에 들리기로 해서 나는 동네 단골 정육점으로 소고기를 사러 가는 길이었다. 스파게티를 휘리릭 만들고 그 위에 채끝 등심을 지글지글 구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올리면 간단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한 끼 식사가 된다.


동네에 소문이 난 고깃집 고기를 끊어다 지인과 맛있는 식사를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코끝을 스치는 초여름의 공기에 기분이 한층 더 좋았던 오후로 기억한다.


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이 참 예뻤다. 이 하늘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입고 있던 면티셔츠 한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쓱쓱 닦는다. 이렇게만 해도 한층 선명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건 오랜 경험에서 알게된 작지만 알찬 꿀팁이었다.


먼저 구름 자체를 찍었다. 다음에는 구름에 걸린 오래되어 고풍스러워 보이는 빌라를 찍었다. 그 다음에는 좀 가까이 와서 아이보리색 벽을 초록색 담쟁이가 덮은 장면을 찍었다. 다시 좀 더 멀리로 가서 빌라와 하늘이 1:1이 되게 찍었다. 찍고보니 열장 정도를 찍은 것 같다. 프레임 속에 하늘은 (실제보다는 덜했지만)참 멋있었다.


그날 찍었던 하늘 구름 빌라 사진

이걸 내 sns 플랫폼 구독자 분들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길가에 앉아 피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늘 #예쁜하늘 #함께봐요 요지는 그것이었다, 공유하면서 나 또한 즐거웠다. 나또한 날씨가 좋아도 집안에만 있을때가 있다. 그럴때 아는 사람이 올린 바깥 사진이 반가웠던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그럴까...?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올린다. 피드를 올리고 좋아요 수가 얼마나 올라가나? 살짝 확인했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고 나는 에코백에 핸드폰을 안전하게 넣고 집으로 왔다. 이 외출의 목적은 지인에게 대접할 채끝 등심을 사오는 것이었다. 그 미션을 완료하고 왔어야 하는데, 사진 찍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그냥 돌아온 것이었다. 뭐 크게 잘못된 건 없었다. 해맑게 집으로 돌아온 내 자신이... 뭐랄까 좀 한심하기도 했다.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가방을 들었다. 방금 다녀왔던 길을 다시 가야 했다. 가는 길에 기분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발걸음은 터덜터덜했다. 물론 그 덕에 그날 밤 지인과 수다거리는 하나 더 늘었지만 아이고!


친구야, 꼭 안 그래도 되는데...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 중인 지금과 달리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무엇인지 몰랐던 2016년-2018년. 나는 한창 쇼핑몰 운영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정성으로 제품을 소싱하고 촬영을 하고 꼭 전달해야 할 내용을 담은 상세페이지를 구상, 제작해서 상품을 쇼핑몰에 올렸고 올리면 올리는대로 성과가 났다. 그 점이 재미 있었다.


조금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사진 촬영이었다. 전문 포터그래퍼와 스튜디오에서 착용샷 등을 촬영하기란 아이 키우는 엄마 사업가에게 녹록한 일만은 아니었다.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자면 할 수 있었지만 효율을 중시 여기고, 생활 속에 자연스러운 착용컷을 선호하는 운영자였던 나는 스튜디오에서 찍는 것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다. 일상도 일도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들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취향에서 나온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착용컷이 부족할 때가 종종 있었던 것. 동종업계 동료 블로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촬영을 해주곤 했지만 약간씩 부족한 컷들이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지인이나 친구들 약속이 있을 때 소품을 가져가거나 착용하고 가서 틈틈이 사진을 찍고 오는 것.


오해는 마시길! 사진을 찍기 위해 그들을 만난 건 정녕 아니었다. 이왕이면...! 하는 생각으로 일상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그저 틈이 있으면 찍었고 아니면 그냥 돌아온 적도 많았으니까. 그건 분명했다!


음식이 나올 때면, 접시들을 예쁘게 해 놓고 음식 사진을 일단 찍었다. 그러면 친구들이 말했다. '왜? 아~ sns에 올리려고? 찍어~찍어~' 헤어지기 전 화장실에 한번 다녀오곤 내 딴에는 꺼내기 조금 어려웠던 말을 꺼내기도 했다.


"00야, 나 이 머플러 착용한 사진 한번 찍어줄 수 있어?"

"나 사진 못 찍는데... 일단 찍어줄게, 이리 줘봐"


여간 친한 친구들이 아니었기에 친구들은 신경 써서 찍어주었다. 고마웠다. 한편 친구들의 이런 말에 가끔 마음이 상처를 입기도 했음을 이제와(?) 고백한다.


"엘아, 오늘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아항~ 쇼핑몰 사진 찍으려고?"


친구는 웃으며 네속을 다 알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좀 겸연쩍었다. 꼭 그건 아닌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웬지 모를 민망함이 들기도 했었다. 친구는 쇼핑몰을 운영하지 않았고 나는 운영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마음도 들었다. '나만 너무 아등바등 사는 건가?' '꼭 안 찍어도 되는데 괜히 말했나?' 돌아오며 이런 생각도 했다. ‘다음에 이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만남에만 집중하자! 일은 동료들이랑 하고!’ 무엇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성실 유전자'가 깊이 박힌 내 성향 덕이 컸다.


약속에 종종 늦었던 진짜 이유

친구들과의 모임만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애를 쓰면 좋은 비주얼과 내용의 콘텐츠를 그때그때 만들 수 있는데, 그걸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하늘, 구름, 여행지 풍경, 매일 한잔의 커피...핫한 카페에 갈때면 10분 먼저 도착해 간판부터 찍고 들어가 멋진 자리의 뷰를 찍어 두어야 든든했다.


이러한 것들로 나를 아는 사람들과 쉴틈, 여유, 멍 때리는 시간, 일상의 소소한 모먼트 등을 전할 수 있다면, 나눌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행복하기도 했다. 매번 만날 수 없으니까...sns로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조금만 품을 팔면 가능했고 특별히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라 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 찍고 글을 쓰는데 정신이 팔려서 내릴 지하철 역을 놓치기 일쑤였다는 점이다. 또 외출 준비하며 내린 커피가 너무 예뻐서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것이다. 또는 만날 사람에게 줄 선물을 챙기느라(미리 챙겨놓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그 시간에 가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해놓고 중요한 약속에 늦은 적이 있었다. 거래처, 사업 파트너와의 중요한 미팅에 늦게 나타나 상대방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선 철저한 편이었던 내가, 이런 면에선 허당으로 비쳤을 것도 같다. ‘아침에 내린 커피가 너무 예뻐서...그 사진을 찍느라 늦었어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나를 더 이상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민망함에 밥값을, 커피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 <


좋아서 하는 일도 가끔은

가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 글이, 영상이 뭐라고 이렇게 유난을 떨어, 떨길? 그냥 쇼핑몰 잘 운영하고 상품 잘 팔고 cs잘 하고 적당히 sns로 소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쉽게 쉽게 사진 찍고 보정해서 올리고 피드 올리고 그래도 크게 티 날 것 같지 않은데 이게 뭐라고 갈아 넣으면서 이렇게까지 하지? 이런다고 사람들이 알아줄까?


무슨 마음에선지 적당히는 하기 싫었다. 피드에 '내'가 보이길 바랬다. 같은 하늘이라도, 같은 커피 모먼트라도 엘님은 다르다고 느껴주길 바랬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마음은 전해지는지, 점점 더 내 사진과 글, 영상에 공감과 응원을 보내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나는 한차원 더 높은 고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콘텐츠를 하나 만들어 내는데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집에서 주방을 정리하면서 다음날 약속에서 만들어낼 사진과 피드 내용을 미리 구상해보곤 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그런게 즐거웠다. 그것이 내 일이요, 일상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오늘 외출하기 싫다... 친구와 가려고 미리 써치 해둔 신상 카페에 가면 나는 또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할 것이다. 그 카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어떤 대가를 바래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내 sns 플랫폼에 꼭 올리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좋아서 하는 일도 때론 버겁고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외출하기가 싫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때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그냥 아무 이야기거리도 안 되는 장소에서 만나고 싶기도 했다. 나도 쉬고 싶어서... 이것이 콘텐츠 생산자의 리얼 일상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분들이 계실까? 계셨으면 좋겠다!




그때 떠올랐던 '한사람'

그런데 문득 한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던 동기가 되었던 사람. 내가 인스타그램을 알게된 계기, 그리고 시작하게 해 준 사람.


그 사람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고 어떨 땐 깔깔거리며 웃었고 가끔 찡했다. 수많은 블로그를 만났고 읽었다. 그렇지만 이 블로거는 달랐다! '그래, 애 키우고 지지고 볶으며 사는 거 다 비슷하네. 그런 일상도 재미가 있네!'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살며시 미소가 지었었다. 그녀의 블로그 포스팅을 읽고 나면 웬지 힘이 났다. 뭔가 나도 시작하고 싶어졌다.


그녀가 포스팅이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오늘은 좀 지치는 날이네요 이런 날도 있죠-' 하면 나도 '그래 맞아 오늘 괜히 지치는 날이야'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퇴근 후 돌아와 캔맥주를 탁 따따서 예쁜잔에 또르르 따르면 나도 맥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저 맥주를 한잔 마시고 나면 낮에 느꼈던 갈증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오늘 칼럼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오래가는 콘텐츠의 비밀 #08화]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 마음을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엘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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